4. 잘 말할 수 있다.
"헐... 왜요?"
관심은 받고 싶은데, 앞에 나가서 발표도 잘하고 싶은데, 그게 참 쉽지가 않죠?
"전 원래 내성적이라서요. 말하는 게 힘들어요."
"남들 앞에만 서면 덜덜 떨려요."
그거 아세요? 어른들도 다르지 않아요. 친구들과 수다 떨 때는 목소리도 크고 하고 싶은 말을 마구 하지만 잘 모르는 사람들 앞이나 공적인 자리에서 '오늘의 소감'이 어떠냐는 질문만 받아도 심장의 펌프질이 목구멍까지 차오르는 것을 느껴야 하지요.
디베이트는 그 공포를 온몸으로 마주하는 자리예요. 자유토론 같으면 터질듯한 심장에게 '괜찮아~ 내 생각대로 조금만 말하면 돼~~ 조금만 참아~ 싫으면 말 안 해도 돼."라며 달래주면 그만입니다. 주제에 대한 자신의 평소 생각을 얘기하고 반대되는 주장에 대한 나의 느낌만을 밝히는 정도만 말해도 되죠. 디베이트에는 '입안, 반박, 요약, 마지막 초점'의 순서가 있고 각각 4분, 4분, 2분, 2분씩 시간도 정해져 있어요. 주어진 역할에 따른 시간은 온전히 발언하는 사람에게 맡겨지지요. 예를 들어 입안을 맡은 학생이 있다면 무슨 일이 있어도 자신의 순서에 앞으로 나가 주어진 4분에 걸쳐 발언을 해야 하는 거예요. 입안은 미리 준비라도 할 수 있지요. 이후의 순서들은 상대의 입안을 들어야만 준비할 수 있어서 고도의 집중력과 순발력을 동원해야 합니다. 가뜩이나 떨리는데, 준비한 원고를 읽는 것도 아니고 즉흥으로 말해야 한다는 것은 '멘붕'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런데도, "못하겠다.", "안 하겠다." 하는 친구를 본 적이 없어요. 신기하죠?
자신의 주장을 펼친다는 것은 생각만으로도 떨리는 일입니다. 하지만 떨린다고 거기서 멈춰버리면, 주저하면서 자신의 발언 기회를 발로 차 버린다면, 딱 거기까지인 사람에 머물러요. 어떻게든 자신의 역할에 충실하면서 주장을 '발화'하는 것. 즉, 입 밖으로 말해보는 것. 그 과정을 온전히 겪은 사람은 이전까지 경험하지 못한 만족감을 경험하게 됩니다. 그러고 나면 알게 돼요. 여태까지 발표만 하려고 하면 나대던 심장은, 부끄럽고 피하고 싶어서가 아니라 '잘하고 싶어서' 나댔다는 것을 말이죠. 친구들과의 수다가 아닌, '공식적인 말하기', '주제와 관련된 말하기'를 하고 나면 내가 뭔가 멋진 말을 한 것 같은 느낌도 받아요. 지적인 허세를 부리는 경험을 하게 되는 것이죠. 거기에 친구들의 "오~~"소리를 듣기라도 한다면 우쭐해진다는 것의 짜릿함까지 덤으로 얻게 돼요. '나 쫌 멋진걸?'이라고 생각하며 자신감까지 생기죠.
쉽지 않겠지만 앞에 나오게 되면 친구들이랑 쉬는 시간에 놀 때처럼 편하게 말하면 돼요. 목소리 크기는 친구 잡으러 갈 때 '거기 서~'하는 정도로 말이죠. 자신감이 생기면 입을 조금 크게 벌려 또박또박 말하는 연습도 해보고요, 그러다가 청중 한 명 한 명을 쳐다보면서 여유롭게 말하는 용기도 내보세요. 그러다 보면 어느 날 아나운서를 꿈꾸게 될지도 몰라요.
* 송코치 단상
개미 소리 정도의 데시벨로, 아무 말도 안 들린다며 웅성웅성거리는 친구들의 소리가 더 큰데도 준비한 말들을 끝까지 꾸역꾸역 말하던 아이가 있었습니다. 일단 나오기는 나왔는데 도저히 입이 안 떨어져 "선생님이 대신 읽어줄까?"라고 하니 그래 달라고 부탁하며 옆에 서 있던 아이도 있었습니다. 디베이트가 끝나고 나서 물어보면 하나같이 "너무 떨렸는데, 해보고 나니 자신감도 생기고, 좀 잘한 거 같아요."라고 답합니다. 신기한 일입니다. 남들에게는 아무 말도 안 들렸는데 도대체 무엇을 잘한 것 같고 어떤 부분에서 자신감이 생긴 걸까요?
지속적인 자신감은 한 번의 발화 경험으로 만들어지지는 않습니다. 디베이트가 거듭될수록 앞에 나가는 것만으로는, 말하는 데 자신이 생긴 것만으로는 한계가 있다는 것을 체감하게 됩니다. 조금 더 큰 관심을 받기 위해 필요한 것은 '실력', 그리고 실력을 쌓기 위한 '철저한 준비'뿐이라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떨리는 말하기의 경험. 디베이트를 통해 완성될 큰 그림의 첫 붓칠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