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년 전, 장사익이 공연 차 토론토에 왔다. 나는 고국에 있을 때 장사익이라는 가수를 들어 보지 못해, 구글에서 그를 찾아봐야 했다. 토론토는 한국의 대중 가수가 공연하러 오기 그리 쉽지 않은 곳이어서 밴쿠버나 뉴욕 공연을 온 김에 이곳도 들리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한국에서 오는 공연은 무조건 챙겨 보자’는 생각으로 별 기대 없이 공연을 보러 갔다. 노스욕에 있는 <토론토 아트센터>에서 열렸는데, 그의 첫인상은 서민적인 시골 노인이었다.
하얀 두루마기를 입은 그가 무대 가운데로 걸어 나오는데, 깊게 파인 주름과 삼일 즘 깎지 않은 수염이 영락없이 밭농사하다 나온 할아버지였다. 속으로 ‘아무리 바쁘지만, 수염이라도 좀 밀고 나오지’. 하지만, 나의 이런 남루한 생각은 첫 노래가 끝나며 바뀐다. 아, 이 모든 것이 콘셉트이었는데 내가 깝신거렸구나. 노래와 시골 노인은 하나였고, 12곡의 노래가 불려지는 동안 긴장을 늦출 수가 없었다. 서민의 애환이 담긴 모습으로 부르는 그의 목소리는 정과 한으로 표현되는 한민족의 정서를 노래했다. 노래라기보다는 응어리진 절규 같은 것을 가슴 깊은 곳에서 밀어내는 느낌이 들었다.
자작곡 ‘꽃구경’이라는 곡은 옛 풍습인 고려장에서 소재를 따왔다고 한다.
고려장을 치르려 노모를 등에 업고 산에 오르는 아들, 죽으러 가는 줄 알면서도 아들이 길 잃지 않도록 돌아갈 길에 솔잎을 뿌리는 어미의 마음, 가슴 찢어지는 후회를 하는 아들. 구슬픈 해금 소리가 애절함을 보탠다.
나는 당시 이 노래를 들으며 입원에 계신 어머니가 떠올라 눈시울이 뜨거워졌다. 언제인가 병원에 계셨던 어머니를 면회를 갔는데, 마침 침대 시트를 바꾸느라 간병인이 어머니를 안아서 옮기려 했다. 그 모습을 보고 “저, 제가 할게요”하며 어머니를 안았는데, 생각보다 너무 가뿐하게 들려 당황스러웠다. ‘그동안 이렇게 야위셨는데’ 무게를 가늠하지 못해 죄송하고 안타까웠다.
그의 음악은 대중가요이면서 국악 같기도 하고 재즈 비슷해 모호한 장르다. 장사익은 그러한 자신의 음악을 ‘현대 민요’라고 불리기를 원한다. 그의 소리는 구성지고 불규칙하고 무박으로 늘어졌다가 다시 휘몰아치며,
눈물을 눈물로 닦아 내야 할 정도로 슬프다. 그렇다고 단순히 슬프지 않고, 삶을 깊게 바라보며 힘든 세상살이를 고마워한다.
1949년에 충청남도 홍성에서 태어난 그는 상업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무작정 서울로 올라온다. 보험회사 직원을 시작으로 가구점, 독서실, 전자회사 영업 사원, 딸기 장수, 카센터 등 열댓 개의 직업을 거쳐 마흔다섯에 가수로 데뷔한다. 음악 공부는 제대로 한 적은 없지만, 국악 동호회에서 태평소와 대금 등 국악을 배웠다. 그때 국악패를 따라다니며 태평소도 불고 노래도 불렀다. 박자를 놓는 그의 소리는 그때 만들어졌다. 그를 대중 앞에 내세운 건 친구였던 피아니스트 임동창이다. 괴짜였던 임동창은 박자를 풀었다가 묵었다가 제 맘대로 하는 장사익을 꼬셔 무대로 밀어낸다. 1994년 신촌의 어느 소극장에서 처음 마이크를 잡고 다음 해에 ‘찔레꽃’을 발표해 대중에게 점차 알려진다.
장사익은 “폼 잡고 살아가는 사람들 뒤에 숨어 사는 아름다운 사람들이 많잖아요. 그렇게 눈물 쏟아낸 뒤 그냥 가사가, 노래가, 툭툭 튀어나왔죠. 마치 무당들이 접신하는 것 마냥요.”라며 ‘찔레꽃’의 탄생에 대해 이야기했다. 이 노래는 별다른 내용이 없다. 단순하고 깔끔해 뜻을 음미할 필요조차 없다. 이런 시를 들을 만한 노래로 만든 건 장사익의 뛰어난 가창력이다. 가만히 듣고 있으면 ‘나’를 보는 듯하고, ‘너’는 순박하고 슬프고 서러운 찔레꽃이다’하며 자꾸 최면을 건다.
장사익의 또 다른 명곡, ‘하늘 가는 길’은 노랫말이 참 슬프다. 이 노래는 죽음이 가까이 왔음을 깨우치게 한다. 지난해에는 유난히 주위 분들이 세상을 많이 떠났다. 아직 그들의 전화번호를 지우지 못하고 있다. 코비드 시대여서 마지막 가는 길을 함께하지 못한 서러움도 가슴에 남는다. 죽음은 산 자와 죽은 자를 구별하는 것이 아니라 또 하나의 시작이라 하지만, 떠난 이들을 생각하면 슬프고 그립고 애틋함은 어쩔 수 없다. 그래도 마음잡아 장사익의 '하늘 가는 길’을 들어 본다. 상여가 나갈 때 듣던 전통적인 가락을 그대로 살렸는데, 슬픈 가락 속에 묘한 흥이 묻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