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창식이 작곡한 '목련'
우리 집 뒤 뜰에 목련이 네 그루가 있다. 우리 가족이 이곳에 이사 온 것이 20여 년이 됐고, 이사 올 때 벌써 이들이 있었으니까 꽤 연식이 된 거다. 그런데 이 목련들이 잘 자라지 않는다. 아내가 투정하듯 “흙도 돋아 주고 거름도 주어야 하는데…”하며 잔소리를 여러 번 했지만, 흙 만지는 것에는 도통 취미가 없어 흘려듣다가, 며칠 전에 화단 가꾸려고 준비해 놓은 흙을 나무 밑에 뿌려 주었다.
다음날 아침, 어제 공들인 사역이 ‘얼마나 잘됐나?’ 궁금해 목련을 자세히 보니, 네 그루의 상태가 서로 다르다. 어제 흙을 돋아 주지 않았다면 지나쳤을 것이다. 이유는 모르겠는데, 남쪽 담장에 심은 것이 서쪽에 비해 훨씬 잘 자랐고 꽃 봉오리도 많다. 처음에는 크기가 비슷했는데, 이 작은 마당에서도 음양오행이 있는가 보다.
고국에서는 벌써 목련꽃이 폈을 시기인데, 여기 토론토는 5월 초가 넘어서야 꽃망울이 터졌다. 내가 살고 있는 리치먼드 힐(Richmond Hill)에는 중국인들이 많이 살고 있어서인지, 동네를 산책하다 보면 목련을 많이 볼 수 있다. 목련은 꽃이 크고 화려해 동양적인 아름다움을 지니고 있다. 하지만, 순간으로 피었다가 져서 눈여겨보지 않으면 ‘찰나’를 놓쳐, 지저분한 꽃잎만을 보게 된다.
목련을 소재로 한 여러 시와 노래가 많지만, 그중에서도 송창식이 작곡한 ‘목련’이라는 노래를 좋아한다. 1983년에 만든 이 곡은 당시 송창식의 다른 곡에 묻혀 그리 알려지지 않았다. 대중음악 평론가인 강헌이 그의 ‘목련’을 평한 글이 흥미롭다. “송창식은 ‘목련’이라는 간결한 소묘의 세계에 트로트를 끌어들여 ‘천의무봉’의 솜씨로 녹여냈다”라고 극찬한다.
‘천의무봉(天依無縫)이라는 말이 무슨 뜻인지 몰라 찾아보니, ‘하늘의 옷은 재봉선이 없다’라는 뜻이다. 결국 어느 곳에도 흠잡을 것이 없다고 칭송한 것이다. 하지만, 송창식의 ‘목련’을 다시 꼼꼼히 여러 번 들어 봐도, 평론가의 말뜻을 쉽게 이해하기 어려웠다. 나는 ‘산나물 맛’ 같은 것을 느꼈다. 젊었을 때는 별로 맛이 없어 좋아하지 않았던 고사리나 곰취, 참나물 같은 ‘쌉싸름 한 맛’ 말이다. 아마, 강헌은 송창식이 ‘목련’을 통해서 한국적 트로트를 현대화하려 한 것이라고 말하는 것일 게다.
어찌 되었던 송창식의 ‘목련’에 트로트가 녹아져 있다고 말하지만, 나는 ‘목련’에 불교 음악이 숨어 있는 게 아닐까 싶다. 트로트의 5 음계 2박자를 썼지만, 가사 때문인지 중이 염불 할 때 하는 타령 같은 가락이 있는 것 같다.
‘목련’의 가사에 봉원사라는 절이 나온다. 봉원사는 서울 서대문구 봉원동 안산 자락에 있다. 안산은 인왕산 옆에 있는 산으로 무악산이라고도 불린다. 이화여대 후문 건너편, 그러니까 연세대 세브란스병원에서 동쪽 아현터널 방향으로 약 1킬로 가다가 왼쪽 산기슭 쪽에 위치한다. 대학 다닐 때, 절로 올라가는 산책길이 좋아 학우들과 어울려 몇 번 갔던 기억이 있다. 풍경도 좋지만, 운이 좋아 콧바람 난 여학생들을 만나 수작 걸어 보는 상상을 하면서 말이다.
봉원사는 신라 말기에 지은 것으로 전해지는데, 임진왜란 때 소실되었다가 영조 때 다시 지은 천년이 넘는 고찰이다. 이 절은 불교 음악을 바탕으로 하는 영산재를 전승하고 보전해 유네스코 세계 무형문화유산으로 지정받은 전통 사찰이다. 영산재(靈山齋)는 사람이 죽은 지 49일째 되는 날에 절에서 올리는 재의 한 형태로 영원을 달래는 의식이다. 스님들이 해금, 북, 장구, 거문고 등의 악기에 맞춰 불교 성악곡인 범패(梵唄)를 노래하고 바라춤, 나비춤, 법고춤 등을 공연한다.
영산재는 야외에서 펼쳐지는 의식으로 일반 대중뿐 아니라 돌아가신 분들에게도 춤과 노래를 바치는 무형적인 예술이다. 이 영산재를 계승하고 있는 동국대학교 한국음악과 학과장인, 법현 스님은 “영산재는 ‘깨달음의 향연’이다. 너도 깨닫고 나도 깨닫고, 음악으로 춤으로 깨닫는데 목적이 있다. 깨달음을 통해 행복을 추구하는 세상이 극락이고, 극락이 곧 깨달음의 세계이다”라고 말한다.
그는 세계 3대 인명사전에 ‘세계의 정신 사상이나 예술을 이끌어 갈 차세대 리더’로 등재된 스님이다. 법현스님이 한국 음악계에 이룬 업적은 세계 최초로 각필(角筆) 악보를 발견한 것이다. 각필 악보는 끝이 예리한 도구로 경전 위에 음의 굴곡을 표기한 형태를 말한다. 그가 각필 악보를 발견하기 전까지 가장 오래된 악보는 세종대왕의 ‘정간보’였다. ‘정간보’는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악보로 음의 높이와 길이를 나타낸 것인데, 서양의 오선보도 이에 해당한다.
법현 스님이 세계 최초의 불교음악 악보를 발견한 것은 2001년이다. 악보의 역사를 15세기에서 8세기로 앞당긴 쾌거였다. 삼국시대에는 종이가 매우 귀한 물품이어서 경전 위에 먹으로 쓰거나 표시를 할 수 없었다. 대신 대나무 끝을 예리하게 깎아 글자 위에 네 귀퉁이 중 한 곳을 탁점을 찍거나 꾹꾹 눌러 길이를 표시했다. 탁점으로 우리말 사성(四聲: 평성, 상성, 거성, 입성)을 표시해 음의 높낮이를 나타내고, 음의 길이만큼 길게 혹은 짧게 꾹꾹 눌러 자국을 남겼다.
어찌하다 보니, 글이 ‘목련’에서 벗어나 ‘각필 악보’까지 가 버렸다. 송창식의 ‘목련’ 노래에 트로트와 불교 음악이 담겨 있다고 말하려 다, 그만 중심을 잃어버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