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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황현수 Sep 02. 2022

‘성모 마리아의 금색 꽃’, 매리골드(Marigold)



“저, … 고인의 가족 되시죠? 지금 이런 말씀을 드리는 것은 예의가 아니지만, 이민애 님께서 돌아가시기 전에 장기를 기증하셨습니다. 하지만, 가족분들의 동의가 필요합니다. 사실 우리에게는 시간이 얼마 없습니다. 고인은 장기 기증을 하셨지만, 그동안 암 투병을 하셔서 장기들이 거의 손상되었습니다. 하지만, 다행히 안구는 정상이어서 지금 필요로 하는 대기자들에게 이식할 수 있습니다. 안구는 6시간 내에 수술을 하여야만 재활이 가능합니다. 힘드시더라도 가족들이 서둘러 동의를 해 주시기 바랍니다.”라고 병원에서 전화한 자원 봉사자가 말했다.


전화를 끊고 남편은 아이들과 엄마의 장기 기증에 대해 의논했다. 먼저 큰 딸이 “엄마 뜻에 따라야지”라며, 남동생에게 ‘네 생각도 그렇지?’라는 눈빛으로 동의를 구했다. 그렇게 고인은 안구를 기증하게 됐고, 5시간 후 병원으로부터 “기증하신 안구는 수혜자에게 성공적으로 이식을 마쳤습니다. 덕분에 수혜자가 밝은 세상을 볼 수 있게 됐습니다.”라는 연락을 받는다.


돌아가신 분을 기억하고 추모하는 방법은 다양하다. 토론토에서는 고인이 즐겨 찾던 공원에 메모리얼 벤치를 기증하거나 나무를 심기도 한다.


벌써 1년이 된 일이다. 고인은 나뿐 아니라, 아내와도 고국에서 같은 회사에 근무한, 30년 지기 친구다. 지난해, 고작 60세를 넘기고는 갑자기 우리 곁을 떠나 안타까웠는데 아내가 “민애 씨 1주기를 맞아 꽃이라도 전해주었으면 좋겠다”라고 해서 그녀의 남편에게 전화를 했다. 그랬더니 “마침, 아내가 자주 다녔던 공원에 ‘메모리얼 벤치’를 하나 기증했다”고 한다. “아, 그러면 그 위치를 알려 주세요” 해서 장소를 받았다. 그리고 사우회와 지인들에게 알렸더니, “그런 기념 벤치가 있으면 저도 가서 추모하고 싶어요”하는 분들이 있어서 함께 갔다. 그 벤치에 모여 고인을 위한 간단한 연도와 추모를 하고 주위의 트레일을 걸었다.  


넓은 잔디밭과 호수가 보이는 곳에 메모리얼 벤치가 있어, 답답한 납골당이나 묘지를 방문하는 것보다 마음이 가볍고 기분도 좋았다. 고인은 평소에 항상 낮은 자세로 남에게 베풀며 살았는데, 마지막으로 안구까지 기증하고 세상을 떠났다. 그녀의 눈을 받은 사람이 이제 밝은 세상을 볼 수 있다니 이 또한 얼마나 고귀한 일인가?


 올봄에 코스트코로 꽃모종을 사러 갔다가 ‘한 해 동안 꾸준하게 피는 가성비 좋은 꽃이 없을까’해서 이것저것 고르다가 노란 꽃이 피어 있는 <매리골드(Marigold)>를 샀다. 한판에 $12.99이고 모종이 12개, 한 개에 $1 정도 꼴이어서 얼른 구매해 화분 네 개에 나눠 심었다. 노란색 꽃이 너무 눈에 띄어서 다른 화분 사이사이에 두었더니 봄, 여름 내내 꽃봉오리를 다퉈 피며 뽐내고 있다.


그런데 신기한 것이 다른 정원을 보면, 화분에 진딧물이나 벌레가 끼어서 골치 아프다고들 하는데, 우리 정원에서는 그런 일이 생기지 않는 것이다. 인터넷으로 여러 이유를 찾다가 그 원인 비슷한 것을 찾을 수 있었다. 매리골드의 향은 달콤하고 사랑스러운 냄새가 아닌, 강한 향이 난다. 이 향기는 곤충과 해충을 막아 주는 기능이 있다고 한다. 그래서 상징적인 꽃으로 행사장을 장식할 때 매리골드를 함께 장식해 해충의 접근을 막는다. 우연이었지만, 20여 개의 화분 사이에 이 매리골드를 둔 덕분에 정원의 침입 해충을 막은 셈이지 싶다.


매리골드는 고국에서 금잔화 또는 천수국, 만수국이라 불리는데, 국화과에 속하고 1년생 초다. 매리골드(Marigold)는 마리아(Marie)와 골드(gold)가 조합된 이름으로 ‘성모 마리아의 금색 꽃’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다. 서양에서 마리아는 매리골드뿐만 아니라 여성들의 이름에도 많이 쓰인다. 성모 마리아를 모태로 한 여자 이름에는 Marry, Marina, Marie, Mariette, Marianne, Marianna 등이 있다.


매리골드의 원산지는 멕시코이다. 멕시코에서 매리골드는 죽은 자의 날(Dia de los Muertos)에 없어서는 안 되는 꽃이다. 멕시코의 전통에 의하면 매리골드 꽃의 강한 향기는 죽은 자의 영혼을 가족이나 친구에게로 안내하는 역할을 한다는 믿음이 있다. 그리고 매리골드와 양초가 짝을 이룰 때 고인들의 영혼은 짧은 시간이지만 인생의 즐거움을 다시 누리게 된다고 한다.


따라서 매리골드는 멕시코에서 영혼과 같은 꽃으로 ‘헤어진 친구에게 보내는 마음’이라는 이별의 슬픔이 담겨 있다. 이 매리골드가 최근에 눈 건강에 도움을 주는 것으로 밝혀졌다. 매리골드에 눈에 좋은 루테인(Lutein)이 다량 함유되어 있어 눈 관리를 하는 사람들의 관심 대상이라 한다. 눈 노화로 점차 줄어드는 체내의 루테인 양을 회복해 준다고 하는데, 루테인은 빛을 받아들이는 중요한 부위인 황반에 보호막을 만들어 지키는 것이다.


매리골드(Marigold)는 마리아(Marie)와 골드(gold)가 조합된 이름으로 ‘성모 마리아의 금색 꽃’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다.


나도 나이가 들며 눈이 침침 해지고 신문이나 책을 읽는 게 불편해지기 시작했다. 게다가 스마트폰을 거의 끼고 사는 요즘에는 눈이 쉽게 피곤하고 안구가 건조해져 걱정이던 참에 ‘눈에 매리골드가 좋다’는 말에 귀가 번쩍 뜨였다. 매일 매리골드 꽃차 한잔을 마시면 좋다고 해서 “여보, 눈에 좋은 매리골드 차를 마셔 보려 한다”고 했더니, 선반에서 매리골드 차를 꺼내 보이며 “그동안 <팀 홀튼>에서 저녁때 커피 대신에 마셨던 국화차가 매리골드였는데, 여태 모르고 있었냐?”며 핀잔을 준다.


구수한 매리골드 차를 마시며 눈을 감으니, ‘매리’, ‘마리아’, ‘골드’, ‘황금꽃’, ‘안구기증’, ‘메모리얼 벤치’, ‘죽은 자의 날’ 등의 낱말이 허공을 빙빙 돌며 뭉쳤다가 헤쳐 풀기를 반복한다. 칼럼 마감 때면 생기는 일종의 글 쓰기 압박 같은 증상이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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