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새벽에 꾼, 꿈 이야기. 자동차에 타고 있던 나는 1차선에서 파란 불이 들어오기를 기다리던 중이었다. 마침내 옆 차선에는 경찰차가 있어 짐짓 긴장하며 있었는데, 반대편 차선에서 검은색 픽업트럭이 빨간 불을 무시하고 건너오는 거다. 옆에 있던 경찰은 바로 사이렌을 울렸고, 건너오던 차는 타이어에 흰 연기가 날 정도로 급 브레이크를 밟아, 내 자동차 옆을 스치며 멈춰 섰다. 다행히 큰 사고 없이 차의 왼쪽 꽁무니 쪽을 살짝 부딪쳤기에 ‘어~휴, 십년감수했네!’하며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그리고 신호등이 바뀌자 나는 차를 몰아 교차로를 건넜다. 뭐에 씌었는지 정신없이 한참을 가다가 “아, 차 사고가 났는데 그냥 왔네”하며 유턴해 다시 사고 현장으로 돌아갔다. 급하게 서둘러 가다가, ‘아, 이거 꿈인데 다시 갈 필요가 있나?’하며 부산을 떨다가 얼떨결에 꿈을 깼다.
밤새 ‘자다, 깨다’를 반복하더니 그만 개꿈을 꾼 것이다. 다음 주에 여행 가야 하는데 아직 준비도 못하고, 내일 모래가 칼럼 마감일인데 아직 주제도 못 정했으니 불안해서이지 싶다. ‘당분간 글을 못 쓸 것 같은데…’ 하는 걱정도 제대로 잠을 못 자는 이유다.
몇 주전에는 전 직장 후배한테서 이런 문자가 왔다. “형님, 요즘 꽃에 대해서 글 쓰시 나봐요?”라는 문자를 받고 쑥스럽고 부끄러웠다. ‘평소에 꽃에 대해 관심이 없던 사람이 이민 가서 변했나?’ 하는 말투가 숨어 있는 듯해서다. 그리고 어느 모임에서는 처음 인사를 나눈 사람이 “꽃에 대해 글 쓰는 분이시죠?”라며 하길래, ‘아, 이거 너무 아는 체하는 게 아닌데, 독자들은 무슨 <화초 도사> 즘으로 알겠구나’하는 생각도 들게 되었다.
사실 살면서 식물들은 언제나 항상 옆에 있었는데, 있는지도 모르고 없어도 없는지도 모르며 지낸 건 아닐까? 결혼하기 전에는 어머니가 키우던 화초들, 결혼 후에는 아내가 키웠던 화분이 집에 있었는데 말이다. 지금 생각해 보면 회사 사무실에도 작은 화초들이 있었는데, 누가 가져다 놓은 화분이고 누가 물을 주는지 관심이 전혀 없었다.
토론토로 이민 와서 부부가 함께 생계형 노동을 하다 보니, 화분에 물 주는 시간조차 틈이 없어 그나마 아내가 키웠던 화초도 가꾸지 못했다. 그러다가 가게를 접고 동네 산책 다니는 횟수가 늘어나면서 “저 집 화초들은 어쩌면 저렇게 예쁠까, 무슨 시간에 물 주고 관리하나?”하며 부러워하였다.
캐롤라이나 제라늄은 추운 겨울에도 자생하는데, 일반적으로 척박한 토양과 건조한 땅에서도 잘 자란다. 한국에서는 이질풀, 쥐손이풀이라 불린다.
생각해보면 다른 집 화초가 부러웠던 것은 이 동네로 이사 오면서부터다. 16년 전에 이 집으로 이사 왔을 때, 옆집에 유태계 싱글 아줌마가 살고 있었는데 그녀의 취미가 화초 가꾸기였다. 시간 날 때마다 정원에 나와 각종 아름다운 꽃과 야생풀들을 키웠다. 작은 식물원 수준이라 할 정도로 다양한 꽃들이 피고 지고 했다. 리치먼드 힐(Richmond Hill) 시티에서 정원 예쁘게 가꾸면 주는 상을 매년 받았고, 그래서 동네를 산책하는 사람들은 옆 집 정원을 그냥 지나치는 일이 없을 정도로 훌륭한 정원이었다. 그러다가 그녀가 이사를 가고 중국 할머니가 이사를 오며 옆 집 화초들도 시름시름 해진다. 그러더니, 급기야 뒷마당으로 들어가는 길에 피어 있던 야생풀을 모두 뜯어내고 시멘트 타일을 까는 공사를 한다며 “우리가 하는 김에 너 네도 같이 하자”고 한다. 우린 사용하는 길도 아니고, 자연스레 풀밭이 있는 것이 좋을 듯해서 “우리는 이대로 가 좋다”고 한 적이 있다.
당시 공사를 하면서 뜯어낸 야생화 풀들이 아까워, “이거 버릴 거면 우리가 가져다 가 심어도 되냐?”고 했더니 “가져가라”라고 해서 우리 마당에 심었다. 옆집에서는 천대받던 야생풀이 우리 집에 와서는 가장 명당(?)에 자리하게 된 거다. 벌써 10여 년이 된 일인데, 언젠가 생물 선생 출신인 아내의 친구가 보고 “어, 이거… 이질풀이네, 어디서 났어요?”해서 그때서야 풀이름이 이질풀이라는 것도 알았다. 그러다가 이번에 글을 쓰려고 인터넷을 찾아보니 이질풀도 수십 종류가 있는데, 우리 정원에 핀 것의 정확한 이름이 캐롤라이나 제라늄(Carolina geranium)이라고 한다.
캐롤라이나 제라늄은 추운 겨울에도 자생하는데, 일반적으로 척박한 토양과 건조한 땅에서도 잘 자란다.
줄기에 털이 빽빽하게 나 있으며 녹색과 분홍색을 띤다. 잎의 뒷면에 털이 있고 보통 5개의 손바닥 모양으로 갈라져 3~8cm까지 큰다. 5월부터 7월까지 꽃이 피는데, 5개의 옅은 분홍색 꽃이 모여 작은 덩어리를 만든다. 꽃 모양은 ‘황새 부리’ 비슷해, 길고 털이 많은 뾰족한 머리에 단단한 씨앗을 품고 있다. 씨앗은 긴 부리 모양의 구조를 가지고 있어 ‘두루미 주둥이(Cranesbill)’라는 별명을 가지고 있다.
캐롤라이나 제라늄 씨앗은 긴 부리 모양의 구조를 가지고 있어 ‘두루미 주둥이(Cranesbill)’라는 별명을 가지고 있다.
캐롤라이나 제라늄은 의약 및 미식 용도로 사용되지만 얕은 뿌리는 약초 치료에도 사용된다. 타닌이 많이 함유되어 있기 때문에 자연적으로 쓴맛이 나는데, 아메리카 원주민은 관절염, 인후염, 설사나 위장 문제, 상처 및 감염을 치료하는 데 사용했다고 한다.
사실 이 야생화를 심고 나서 제대로 관리도 안 했는데도 스스로 잘 자라 매년 꽃을 피우고 있으니, ‘효자’가 따로 없다. 이제 가을에 접어드니, 누런 잎들이 하나 둘 보이기 시작한다. 옛말에 나이 사십이 넘어야 길가에 풀꽃이 보인다는 말이 있다. 사십 이전에는 청춘 자체가 꽃이기 때문에 굳이 꽃을 찾지 않아도 그 열정만으로 꽃이라는 것이다.
육십이 지나고 보니 꽃을 대하는 태도도 보는 방식도 달라진다. 예전에는 사진이나 찍기 위해서나 쪼그려 앉았는데, 지금 꽃을 보면 마음이 먼저 주저앉는다. 잎과 꽃의 상처도 보이고 애틋한 마음도 생기는 것을 보면 확실히 황혼 길에 접어든 것이 틀림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