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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Eri Taeeun Kim Aug 27. 2023

디스토피아 ‘시녀 이야기’, 한국에 재현되나

더리포트 독점기고

1985년 출간된 마거릿 애트우드의 기념비적 SF소설 ‘시녀 이야기’의 인기는 끊이지 않는다. 다시 집 안에 갇혀버릴 수 있는 여성 심연의 두려움이 언제든지 사실이 될 수 있다는 것을 경고하고 있기 때문이다. 2017년 미국에서 드라마로 만들어져 시즌6까지 흥행하고 있다. 얼마 전 이스라엘 우파 연정이 성별 분리와 여성 배제를 내세우자, 다른 중동 국가들처럼 여권 후퇴에 직면한 여성들이 ‘시녀 이야기’ 속 복장을 하고 시위에 나서기도 했다. 1960~1970년대 이란은 서구와 나란히 미니스커트가 유행하던 나라였지만, 1979년 이슬람 혁명 후 여성에게 머리카락을 포함해 온몸을 가리도록 하는 복장 규정을 의무화했다. 도덕 경찰의 주 임무는 여성의 복장 단속이 됐다. 여권은 급속도로 추락했다.


현 정부는 ‘이대남’의 표를 끌어들이겠다는 목적으로 ‘일베’들의 주장을 받아들여 여성가족부 폐지를 공약했다. 차기 총선 결과에 따라 사라질 수도 있는 상태다. 여권의 위축은 곧바로 ‘인셀(incel) 이데올로기’에 빠진 젊은 남성들의 테러를 촉발했다. 서구에서는 여성 혐오 성향의 ‘비자발적 독신주의자(involuntary celibate, incel)’ 남성들이 벌이는 연쇄 증오범죄를 ‘테러리즘’으로 규정하는 추세다. 이런 가운데 여권 위축을 불러온 정부의 여러 규제는 집권 1년여 만에 전국을 테러의 공포 속으로 몰아넣었다. 이 칼럼을 쓰는 순간에도 강간, 폭행, 살인 등 무차별 흉악범죄와 이를 예고하는 온라인 글들의 수는 계속해서 올라가고 있다.


2016년 강남역 살인 사건이 일어났을 당시, 여성들은 길거리로 나와 추모 운동을 벌이며 생존을 갈망했지만, 아이러니하게도 도리어 두들겨 맞은 것은 ‘페미니즘’이었다. 사법당국은 젠더갈등을 부추긴다며 여성 혐오범죄를 부정했고, 현실을 왜곡할수록 문제해결에서는 멀어졌다. 코로나 시대를 거치며 한국 젊은 여성들의 자살률 급증과 성차별은 외신에 보도될 정도로 사회적 문제로 부상했다.


지난 1월 유엔 인권이사회는 제4차 국가별인권상황정기검토(UPR)에서 한국에 ‘여성 폭력·성폭력 예방, 성별 임금 격차 해소’ 등 여성 인권 증진을 포함한 총 263개의 인권 개선과제를 권고했다. 하지만 현 정부는 국제적 흐름에 역행해 여성 정책 연구기관과 지자체 담당 부서 등에서 ‘여성’을 지우고 있다. 학교 성교육은 혐오·순결중심주의로 퇴행했다. 서울시는 ‘페미니즘’이라는 단어를 쓰지 않도록 내부 단속에 나서기도 했다.


개별 정신이상자들의 우발 범죄로 치부해 버리기에는 사회적 공기가 지독히 흉흉해졌다. 여성혐오를 조장하는 공공연한 메시지들은 사회 불만에 시달리는 젊은 남성들에게 의식적, 무의식적으로 여성으로 대변되는 사회적 약자들을 공격하라는 신호가 되기도 한다. 한국의 치안율이 높다는 것은 남성에게만 해당하는 얘기라는 여성들의 목소리를 거세하자, 치안율이 점차 떨어지는 원인을 여경 채용 증가로 돌리는 일베 류의 온라인 글들이 치고 올라오기 시작했다.


급기야 세계 1위 저출생의 원인이 여성의 사회진출이라며 가축처럼 가둬놓고 애만 낳고 키우게 해야 한다는 범죄 같은 주장도 일베 류의 사이트에서 공감을 얻는 상황이다. 신림동 공원에서 대낮에 강간 살해를 당한 여교사에게 “왜 그 시간에 등산하냐”고 피해자를 탓하는 기막힌 댓글도 여전하다. 보다 못한 동료 교사들이 “학교로 출근하던 중 변을 당했다”며 순직 처리를 요구하고 나섰다.


한국은 유난히 강력범죄 피해자 대부분이 여성이고 여성 살해율이 높은 나라다. 가해자의 절대다수는 남성이다. 이미 여성 커뮤니티들에서는 길 가다가 남성들에게 이유 없이 봉변이나 희롱을 당했다는 사례 글들이 점점 늘어나고 있었다. 여성이 집 밖에 나서기를 두렵게 만들며 마침내 사회진출까지 저해하는 분위기가 조성되던 차였다.


인셀 이데올로기가 테러화하는 사회에서 남성도 안전하지 않다는 사실을 우리는 최근 연이어 일어난 묻지 마 범죄들에서 분명히 보았다. 마지막으로 프랑스 저널리스트 브누아트 그루의 말을 덧붙이고 싶다. “페미니즘은 아무도 죽이지 않았지만, 남성우월주의는 매일 사람을 죽이고 있다.”


김태은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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