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의 이름을 나직이 불러본다. 오늘도 구석에서 네가 먹던 영양제를 발견하고는 네가 없다는 사실을 다시한번 뼈저리게 느낀다. 내가 책 마감에 집중해보려는 것은 너를 잊기 위해서가 아니라, 슬픔을 잊기 위해서다. 이불을 뒤집어쓰고, 안정제를 삼키려다 그래야 달라지는 것이 없다는 이성적 사고를 일으켜 다시 일어나 앉는다.
내세를 믿지 않기에 영혼도 믿지 않는 나는 네가 내 앞에서 한 줌의 재가 되는 모습을 목격하고도, 그것이 지금도 현실같지가 않다. 단조로운 생활 속에 모든 것이 꿈결같이 지나간다. 그냥 그 삭막했던 풍경은 꿈 속의 한 장면이었던 양 실감이 나지 않는다.
개 한 마리의 죽음 때문에 이렇게 오래오래 울었다고 하기는, 인간 세상에서 좀 부끄러운 면이 있다. 하지만 넌 내 유일한 가족이었으니까. 그런 외로움을 통째로 이해하기 힘든 사람들이 더 많은 세상인 거 같으니까.
*
집이 이렇게 적막했던가. 네 작은 숨결이, 그 소소한 동작들이 만들어냈던 에너지가 그렇게 컸던가, 집안을 가득 채웠었던가. 날씬한 몸과 작은 발로 자박자박 발소리를 내며 사부작거리며 돌아다니던 너의 온기가 바로 생명이었다는걸 새삼 느낀다.
겨울이라 오가는 사람들과 차들이 줄어든 것은 알았지만, 이 집이 이렇게 조용하게 느껴진 것은 처음이다. 여기가 이렇게 적요한 공간이었던가. 너의 부재를 처절하게 느낀다. 때문에 몸집이 작은 네가 어딘가 좋아하는 구석에 숨어있으리라는 착각은 접어야한다.
처음엔 그냥 견뎌낼 수 있을 줄 알았지만, 너를 맞은 것도 그 빈 공간 때문이었고, 그리움 때문에 내 영혼 한구석이 말라가는 것을 느낀다. 왜 울기 시작하면 눈물은 그치지 않는 걸까.
너는 없는데 나는 아직 살아있고 그것이 부끄러워 무거운 몸을 움직거리며 모든 생명에게는 생로병사가 어김없다는 것을, 말도 아니고, 글도 아니고, 몸과 마음으로 느끼면서 오늘을 보냈다.
*
“애기야, 가자”라는 드라마 ‘파리의 연인’의 대사가 그토록 히트를 쳤던 건 너무 사랑스러운 존재에게는 ‘베이비’같은 만국공통어가 절로 흘러나온다는 걸 모두가 알았기 때문이다.
생전 처음 “해피 애기야”라는 호칭이 나도 모르게 우러나왔으니까. 진정 사랑을 하면 이런 단어들이 무의식에서 나오게 된다는 것을 처음 경험했다. 나는 사랑을 몰랐으니까. 그리고 너는 나의 영원한 ‘애기’라는 것도.
나는 너를 통해 동물도 나이가 먹을수록 눈빛이 깊어진다는 것을 알게됐다. 네 조그만 뇌가 사색이란 것을 할 수 있었을지, 그것이 시간이 흐름에 따른 자연스러운 노화의 현상인지는 모르겠다. 그냥 너의 주인인 나만이 느낄 수 있는 애정의 크기였달까. 너는 나를 사랑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그것이 그냥 의존이고, 먹이와 따뜻한 잠자리를 주는 이에 대한 습성 같은 것이라고 해도, 그것으로 나는 충분했다. 우리가 서로의 등을 맞대고 누워 외로움을 조금이나마 잊을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
네가 죽은 후 나는 죽음이 어떤 향을 풍기는지도 알게됐다. 내가 잠에서 깨기 전 이미 부패하기 시작한 너의 몸은 불쾌한 냄새를 잉태하고 있었다. 나는 이 악취가 거의 문을 닫아가는 나의 자궁이 이번이 마지막일지 모르는 생리를 하며 내는 냄새인지, 아니면 너의 냄새인지 한동안 헷갈렸다. 인터넷은 이제 많은 지식을 대중에게 퍼뜨렸다. 시신은 썩어가는 생리혈 냄새를 가진다. 검색창을 통해 수색견을 훈련 시킬 때 버려진 생리대를 이용한다는 것을 알았다.
그 냄새분자는 며칠동안 나를 계속 따라다녔다. 피할 수 없는 스토커처럼.
*
마음이 무너지지 않도록, 단단히 먹어야 한다는 것은 이럴 때 쓰는 말일지도. 마음을 부여잡아도 몸의 어딘가에 균열이 간 듯 통증이 이는 것을 막을 수는 없다. 그래도, 네가 없어도 나는 먹고, 싸고, 자고, 생체활동을 지속해 나간다.
개는 우리에게 자연을 대표하는 존재로 다가왔다. 우리는 개를 통해 동물도 사람처럼 느끼고 궁리하고 감정이 있다는 것을 배웠다. 말 만 못할 뿐, 다 안다는 것을. 그래서 자연에 대한 이해를 좀 더 넓혔다. 해피는 인간이 아끼고 사랑해야 할 것들이 더 많음을 일깨워 주고 갔다.
*
평균수명을 꽉 채우고 갔으니 아쉬움은 없는거라고, 언젠가는 맞이할 이별이라는걸 머리는 언제나 알고 있지않았냐고 자문한다. 그러나 준비를 했다고 슬픔이 오지않는 것도 아니다.
이 고통도 점차 더뎌지겠지. 나는 아직 너의 옷과 목걸이, 목줄들을 한군데 모아 싸놓고 버리지 못했다. 목줄을 들면 당연히 제 것인 줄 알고 검은머리를 들이미는 너의 영리한 눈동자, 너의 작은 옷들을 손(앞발)을 내밀어 입어줄 육체가 없다는 것 때문에 나는 종종 눈물을 흘리겠지.
이 슬픔도 언제가는 점점 옅어져가겠지. 눈물도 말라가겠지. 이번 생에서 겪었던 많은 일들처럼.
나에게만 보이던 호소력있던 눈빛 무언가를 요구하고 있는 것이다. 나이를 먹어도 언제나 어린아이처럼 맑은 눈동자가 개가 가지는 순수함이다.
나의 아기였던 유일한 해피야.
너의 장례를 나의 손으로 나홀로 치렀으니 나는 이제 완전한 어른이 된 거라고 할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