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편. 해변의 여인
나 혼자 동남아 삼국기 (태국-캄보디아-라오스)
4편. 해변의 여인
경로 (총 31일/2015년 3월 2일 저녁 비행기로 떠나 4월 1일 밤 비행기로 돌아옴)
태국▶캄보디아▶라오스▶태국
인천 공항 - 방콕 수완나폼 공항 (뱅기) - 카오산로드 (택시) - 캄보디아 국경 뽀이펫 (카지노 버스) - 씨엠립 (택시) - 씨아누크빌 (심야버스) - 라오스 비엔티엔 (프놈펜에서 뱅기) - 방비엥 (버스) - 루앙프라방 (밴) - 루앙남타 (버스) - 라오스 국경 훼이싸이 (로컬버스) - 태국 국경 치앙콩 (국경버스) - 치앙라이 (로컬버스) - 치앙마이 (버스) - 방콕 (심야버스) - 수완나폼 공항 (지하철) - 인천
이게 슬리핑 버스이긴 한데...그런데...
맨 뒷좌석 바로 앞이라 그런지 다른 앞자리들에 비해 기장이 짧은 거야. 그래도 어쩌겠어. 나야 그런 상황에 순응하는 소심한 어른이지만, 같이 가는 이 30대의 까칠한 대구 아가씨(앞으로 J양으로 부르겠음)는 벌써 분노 게이지가 올라가고 있더라구.
운전사하고 표 받는 애들한테 따지러 가니 나만 룰루랄라 할 수 없어서 같이 따졌지.
다른 빈자리도 많은데 옮기면 안 되느냐. 우리 자리만 왜 짧은 거냐. 동양인이라고 무시하는 거냐.
(아 동양인이라고 무시하냐는 건 그냥 생각만)
결국 자리를 못 바꾸고 그냥 출발했어. 가다 보니 중간중간 두어 군데 더 들르더라구. 결국은 자리는 꽉 차긴 차더라.
그나저나 이 까칠한 J양은 옆에서 모든 걸 포기하고 반쯤 누워서 자려고 하는데, 나도 얘처럼 편안하게 자다가 잘못해서 치한취급 받으면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드니까 이게 영 불편해.
그리고 나이 차이도 10살밖에 안 나는구만, 죽어도 아저씨라네. 나도 '이 아줌마야!' 라고 할 수도 없고.
자기는 다리도 편한대로 이랬다 저랬다 하지만 난 통로 쪽으로 다리를 빼놓고 한 자세로 자려니 이게 잠이 오겠냐고!
뭐 지금 생각하면 매너손...이 아닌 매너발이긴 한데 아무튼 도로는 비포장도로인데다 계속 신경 쓰다 보니 거의 자는 둥 마는 둥 했지.
시끄러운 소리에 눈을 떴는데 버스에서 내리래. 새벽 4시 반 정도 됐는데 여기는 프놈펜이고 다른 버스로 갈아타야 된다고 하더라구. 길거리에서 다들 비몽사몽에 널브러져 있었지. 30분쯤 지나서 온 다른 버스에 탔는데 이건 좌석지정도 없고 그냥 일반 버스야.
근데 오히려 이 버스 타고 잘 잔 거 같아. 실컷 자다 깨다를 반복하다보니 드디어 씨아눅빌에 도착했어.
시간은 오전 11시. 총 12시간 소요.
J양은 미리 예약해둔 숙소가 있지만 난 숙소를 구해야 하잖아.
1달러라도 아껴보겠다고 그 더운데 괜히 1시간씩 돌아다녔어. 결국 두 번째 본 집에서 묵을 것을.
다음날 같은 숙소를 잡기로 하고 일단 밥 먹고 해변가 탐색을 시작했지. 뭐 해변가가 여러 군데 있지만 동네는 작아. 한적한 80년대 시골 해변가 느낌이랄까?
노을 지는 소카 해변은 마치 영화나 다큐의 한 장면 같았어. 해변에서 놀고 있는 꼬마숙녀에게 다가가서 사진을 같이찍고 스키틀즈를 한 봉지 주니까 막 도망가. 너무 귀여워서 따라갔더니 엄마, 아빠랑 산책 나온 거였어. 내가 먹는걸 보여줘서 안심시키고 엄마한테 전해줬더니 그제서야 먹더라구.
행복해 보이는 가족과 인사하고 세렌디피티 해변으로 옮겼어.
어둠이 깔린 해변가를 따라 걸으니 모래가 너무 푹신푹신해. 옆으로는 영업을 시작한 가게들이 불빛을 밝히며 우리를 유혹하고 비치의자가 끝도 없이 펼쳐져 있어.
다 똑같은 거 같지만 그중 한 가게 비치의자에 자리를 잡고 앉으니 어느새 종업원이 옆에 와서 주문을 받아. J양은 술을 못 마시니 쥬스, 난 생맥주 한잔.
맥주 한잔하면서 편안하게 반쯤 누워서 파도소리를 듣고 있으니 진짜 기분은 끝내줘.
수학을 가르친다는 까칠한 J양의 얘기를 들어가면서 맥주는 어느새 두 잔째.
오늘은 장시간 이동에 피곤한지라 일찌감치 자고 내일 같이 숙소를 구하기로 했지.
씨아누크빌 바닷가에 누워 감상하기
https://youtu.be/1MaB1TN4yNQ?list=PLNp48vdGYpZk447CKL-n6tZEEC2XD0Ur5
다음날, 미리 봐 뒀던 숙소는 아니지만 나름 저렴하고 괜찮은 도미토리로 옮겼어. 1박당 5달러니까 괜찮지. J양은 호치민으로 가기 전 코롱섬으로 가서 몇 박 더 한다고 하는데, 난 어떻게 해야 할지.
베트남은 계획에 없고, 원래 태국 꼬창으로 넘어갈까 했지만 이동도 만만치 않고 스노클링에도 큰 관심이 없었거든.
근데 라오스 팍세로 넘어갔던 P군과 K양이 내일 비엔티엔으로 출발한다는 소식을 들었지. 흠 그렇다면 나도 그쪽으로 합류해볼까?
부랴부랴 프놈펜에서 비엔티엔으로 가는 항공편을 가까스로 구하고서야 오늘은 바닷물에 몸을 담그기로 했어.
오랜 흥정 끝에 비치의자 둘과 튜브 하나를 빌려서 교대로 바다에 입수. 아직 시즌이 아니라 그런지 사람도 많지 않고 너무 좋더라구. 바닷물에 누워서 하늘을 바라보니 세상 근심 걱정은 사라지고...까진 아니고 그냥 몇 시간 동안 아무 생각 없이 아이처럼 놀았던 거 같아.
들어오면서 사 먹었던 망고 크레페도 꿀맛이야.
근데 열흘 넘게 쪼리만 신고 다녀서 그런지 발등과 맞닿는 부분이 계속 마찰을 일으키면서 양쪽 발 위에 100원짜리 동전만 한 물집이 크게 생겼는데, 씻다가 그게 한쪽이 터졌어.
소화제, 밴드, 이런 것만 챙겨왔지 연고 하나 없어서 어떻게 해야되나 했는데, J양이 면봉에 연고를 잔뜩 묻혀서 갖다 주더라구. 까칠하기만 한 줄 알았더니 이런 자상한 여자라뉘.
저녁에는 숙소 1층에 있는 바에서 맥주 한잔 하는데 자기는 음료수 마시면서 같이 있어주는 친절함까지 발휘. 고마워 J양.
다음날 오후 비행기라 난 아침에 J양과 작별인사를 하고 프놈펜으로 출발했어. 시내에서 쌀국수 하나 사 먹고 공항으로 갔는데, 그 조그마한 공항에 사람은 드럽게 많네.
겨우 티켓팅하고 안 되는 와이파이 조금씩 잡아가며 동배 카페에 들어갔더니 동행 문제로 한참 쪽지 주고받았던 한 친구가 자기 비엔티엔에 왔는데 숙소가 하나 남는다며 혹시 필요하면 쓰라고 하더군.
그래서 만나기로 약속을 잡고 비행기를 탔지.
도착해서 유심부터 하나 사서 장착하고, 스타렉스 아저씨와 흥정 끝에 7달러 주고 남푸거리로 출발.
5년 전에 와본 동네라 그런지 역시 뭔가 자연스러워.
아무튼 그 친구와 만나기로 한 조그마한 사원 앞을 어슬렁대는데 시간이 지나도 보이지가 않는 거야.
다급한 마음에 카톡을 계속 날렸지. 자기는 지금 어디인데 난 어디냐 라고 되묻더라고. 자기가 지금 오토바이를 타고 있으니 금방 가겠다고 하는데...
5편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