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운 미의 도시
아름다운 미의 도시 (후에, 다낭, 호이안)
버스에서 내려 숙소를 찾아 걸어가다가 대충 끼니를 때우고 들어가기로 했다.
문을 연 가게가 많지 않아 대충 아무데나 들어가서 옆 손님이 먹고 있던, 조금은 달라 보이는 것을 주문했다.
바로 '분보 후에' 라는 이름을 가진 쌀국수인데, 아침 7시에 너덜너덜해진 몸상태 때문인가, 아니면 우리가 허기가 졌었나, 맛이 너무 좋아 아무말이나 막 내뱉고 본다.
"이게 바로 그 게살! 응? 어?"
"국물이 진짜. 어휴. 이건 뭐 응?"
그동안의 다른 도시와 달리 후에는 꽤나 조용하고 한적한 느낌이다. 아니, 앞으로 다닐 도시 통틀어서도 그런 것 같다.
무이네의 따분함이 있긴 하지만 성격이 좀 다른듯하다.
아무튼 밥 먹고 내일 일일투어를 신청한 뒤 일단 걸어서 왕궁까지 가보기로 했다. 괜한 짓이었다.
하노이 때와 달리 본격적으로 더워지기 시작한데다 생각보다 거리가 꽤 되었다.
다행히도 일일투어 때에는 보트와 버스를 이용해서 이동했다. 만원이 채 안 되는 가격으로 하루 종일 데리고 다녀주고 밥까지 주니 고마울 뿐이다. (다만 왕궁 입장료는 별도이니 참고)
어쩌다 보니 숙소 앞에 있는 식당 겸 술집에 세번이나 가게됐는데 거기서 일을 하고 있는 20살의 아가씨 "미"를 만났다.
그다지 이쁜편은 아니었지만 수수하고 싹싹했다. 후배는 잘해보라고 떠밀었지만 어디 그게 말이 될 소리인가.
아버지와 딸의 나이 차이인데다 나에게는 그럴만한 용기가 없다. 더더군다나 결혼할 마음도 별로 없다.
뭐 그래도 이 친구와 잘 된다면 어떻게 살아가게 될까? 라고 잠깐이나마 상상해보는 즐거움은 누려보았다.
절대 이 친구 때문이 아니고 다시 베트남을 가게된다면 이 곳 후에에서 오랫동안 머무르고 싶다. 북적대지 않고 편안하게 쉴수있는 도시이기 때문이다. 다시 한번 더 말해두지만 이 어린 친구때문이 절대 아니다. 데헷.
2박만하고 다낭으로 떠나는길이 무척 아쉬웠지만(?), 훗날을 기약하며 버스에 올랐다.
26일의 일정이 정해져 있었기에 다낭은 1박만으로 통과하기로 했다. 미케비치와 구시가지를 다 둘러보기에는 3~4박도 모자라 보였기에 다른 도시에 더 투자하기로 결정했다.
물어물어 택시 타고 도착한 현지인들이 찾는다는 로컬 바베큐집은 더할 나위 없이 훌륭했다.
물론 목욕탕 의자 같은데 앉아서 뜨거운 화로를 옆에 두고 직접 구워먹어야 하니 저녁시간임에도 불구하고 땀이 비 오듯 쏟아지는건 견뎌야한다.
고기류와 구워먹을 수 있는 음식들이 50종도 넘어 보였고, 1인분에 2~3천원정도로 무척 저렴했다.
둘이서 신나게 시켜서 배불리 먹고 맥주도 실컷 마셨는데도 45만동이라니, 하노이에서 당한 바가지의 억울함이 풀리는 순간이었다.
다음날 바로 찾아간 호이안은 구시가지에서 꽤나 떨어진데다 잘못 설정된 구글지도 덕분에 한참을 헤맸다.
하지만 숙소 상태도 좋았고, 저렴한 가격에도 불구하고 수영장도 있었으며, 조식도 먹을 수 있는 영광을 누렸다.
모든 것은 순조로웠고 동네는 참 예뻐보였다.
그러나!
밥 때문에 문제가 생겼다. 나는 이왕 먹는거 조금더 저렴하면서도 맛있는 걸 먹기위해 가게를 고르는 게 습관화되어 있었고, 후배녀석은 아무데서나 먹지 뭘 그렇게 따지느냐라는 거였다. (물론 술을 마실때도 마찬가지)
서로 말을 안 했고, 그냥 하염없이 구시가지로 걸었다. 결국 이상한곳에서 맛없는 점심을 비싸게 주고 먹는 참사가 벌어졌다.
난 왜 화를 내는지, 화가 났으면서도 왜 화가 안났다고 하는건지, 도대체 이유를 알 수 없었지만,
저녁에 맥주 한잔하면서 형으로서 일단 사과를 했다. 그리고 그 이유를 들어보고 싶었다.
그 동안 내가 먹자는대로, 가자는대로, 고르는대로 맞춰왔는데 본인이 생각하기에 너무 쓸데없는 데에 시간과 체력을 낭비하는것 같았다고 한다. 생각해보니 너무 내생각만 한 게 아닌가 싶었다. 물론 내 나름대로의 이유도 당연히 있지만, 거의 한달을 같이 다니는 여행에서 별다른 상의없이 내 스타일대로 맞추라고 은근 강요한 꼴이 됐다.
혼자하는 여행이 아니니 상대방에 대한 배려가 조금은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호이안에서의 2박은 나름 즐거웠지만, 구시가지를 들어가기 위해 구매해야 하는 티켓을 제시하는 부분이나, 음식점이나 술집에서의 홀대는 유쾌한 기억은 아니었다.
(워낙 한국사람들이 티켓구매없이 입장해서 집중단속의 표적이 되었다고 하니 문제가 되는 부분이지만, 술집에서 좋은자리는 앉지 못하게 하거나 다른 자리로 유도하는 경우가 있었다)
우리는 예쁜 것에 열광하는 여자아이들이 아니다.
호이안이 꽤나 예쁜 동네이고, 예쁜 것들을 파는 가게도 많지만, 우리의 관심사는 아니었다.
물론 후배녀석 말대로 동네자체는 마음에 들었지만, 즐기는 방식이 달랐던 것 같다.
우리는 길거리를 어슬렁대다 적당한 가게에 들어가서 쌀국수나 완탕을 먹었고, 나와서는 당연히 그렇듯 카페쓰어다를 마시면서 다음여행에 대한 얘기를 하기는 커녕, 그냥 멍때리기 일쑤였다.
자전거를 빌려서 괜히 동네를 몇시간씩 돌아다녔고, 저녁때에는 술마시러 열심히 돌아다녔다.
어찌됐던 이제는 냐짱으로 떠난다. 여기서 수영장에 잠깐 몸을 담그긴 했지만 물놀이에 대한 갈증이 최고조로 치닫고 있었다. 물론 수영을 둘 다 잘하는 편은 아니지만, 어디 수영 못한다고 물놀이를 싫어하랴!
'이제 냐짱에서 제대로 놀아보자!' 라는 기대 속에 또 한 번 장거리 슬리핑버스에 올라탔다.
냐짱에서는 어떤일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