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까운 사람이 암에 걸렸다면
작년 4월. 엄마가 폐암 4기라고 진단받았다. 밤마다 온갖 병원의 여러 선생님들이 해 주는 강의도 듣고 검색도 해 보며 알게 된 것들 중에 이런 건 알고 계시면 좋을 것 같다는 내용들을 남겨두려고 한다.
암의 기수 표현
암은 1기부터 4기까지 있다. 그리고 말기가 있다. 1기는 전이 되지 않은 상태 (수술로 그 녀석만 제거하면 되는 상태), 4기는 멀리 있는 장기로 전이가 되어 특정 위치의 암을 제거하는 것이 큰 의미가 없는 상태이다. 2기, 3기는 그 중간 상태이다.
암 판정을 받고 병원에서 수술을 하자고 한다면, 완치를 기대해볼 수 있는 상태로, 조기에 잘 발견된 감사한 상황이다. (수술 자체가 원래 안되는 림프종 같은 경우는 예외이다)
수술이 의미가 없는 4기의 경우 항암치료를 하게 되는데, 항암 치료는 완치라기보다는 살아 있는 시간을 더 늘리는 노력이다.
A 라는 방법으로 치료를 하다가 암이 커지면 거기서 중단을 한다. (암세포가 치료제를 속이는 방법을 찾아낸 것이다.) 이걸 내성이 생긴다고 표현한다. 모든 치료제는 언젠가는 내성이 오게된다. 그럼 방법을 B 로 바꿔보고, 또 내성이 오면 C 로 바꿔보고...
이렇게 하다가 더 이상 방법이 없는 상태를 말기라고 한다. 그래서 4기는 말기가 아니다. 4기는 여러가지 항암치료를 해 볼 수 있는 단계이고, 상황에 따라서, 5년 이상 살 수 있는 확률이 더 높은 경우도 많다.
항암의 종류
일반적으로 너무너무 힘들다고들 하는 항암은 화학항암이다. (세포독성 항암이라고도 한다.) 이 쪽도 많은 발전이 있어서 머리카락이 별로 빠지지 않는 경우들도 있고, 부작용이 생각보다는 짧게 지나가기도 한다. 하지만 기본적으로 매우매우 힘든 과정이다.
세포독성항암에 비해서 부작용이 훨씬 적고 치료효과도 더 높을 것으로 기대하는 항암이 표적치료이다. 세포독성항암은 암세포를 공격하긴 하지만, 정상세포 또한 너무 많이 공격하는 문제가 있다. 표적항암은 암세포를 표적하여 공격하기 때문에 부작용이 적다.
표적을 하는 방법은 유전자 돌연변이를 찾는 방법이다. 암세포의 유전자 검사를 통해서 특정한 유전자 돌연변이를 발견하게 되면, 그 돌연변이를 찾아서 공격하도록 설계가 되어 있다. 즉, 표적항암은 무조건 할 수 있는 게 아니고, 특정한 유전자 돌연변이가 있어야만 한다. 가령 폐암의 경우, EGFR 돌연변이나 ALK 돌연변이가 있으면 (보험이 되는) 표적항암제를 사용할 수 있다. 많은 사람이 가진 돌연변이일수록 기회가 많이 있다. (표적항암제는 주로 매일 먹는 알약이다. 세포독성항암은 주기적으로 두어시간 동안 주사를 맞는다.)
이와 다른 종류로 면역 항암이 있다. 암세포는 자신을 정상세포인척 속여서, 몸안의 면역 체계가 공격을 못 하게 하는데, 면역 항암은 암세포의 민낯을 드러내게 하여 몸안의 면역체계가 암세포를 공격할 수 있도록 유도하는 방법이다. 이건 세포독성항암이나 표적항암과 보통 같이 한다. (면역항암이 효과가 있고 없고는 그냥 확률인 것 같다.)
조직 검사
암세포가 발견되면 전체 스캔을 해서 암이 다른 곳에 더 있는지 확인한다. 암세포도 종류가 있어서, 검사를 해 보면, 전이가 된 것인지 여부를 대강 알 수 있다고 한다. 아무튼 전체 스캔을 하는 검사를 하고, 보통 두주후에 만나자고 한다.
이 때 병원에서는 표적치료가 가능한지 확인하기 위한 유전자 검사를 한다. (좀 더 정확히는 보험이 되는 표적치료에 해당하는 유전자 돌연변이가 있는지만 먼저 검사한다) 이를 통해 치료 계획을 세우는데, 돌연변이를 발견못한 경우는 NGS 검사라고 하는 더 자세한 유전자 검사를 한다. 이건 시간이 한달 정도 걸리기 때문에 보통 화학항암을 시작하고 함께 진행한다.
NGS 검사를 통해, 보험은 되지 않지만 효과가 임상시험통해 입증된 표적치료제나, 혹은 아직 임상시험 중인 치료제에 해당하는 돌연변이가 있는지 확인할 수 있다.
진통제
진통제는 2가지 종류가 있다. 천천히 약효가 나타나고 일정 시간 유지되도록 설계된 진통제, 그리고 곧바로 약효가 나타나는 속효성 진통제. 일정 시간 유지되는 진통제를 통증 유무에 무관하게 먹어야 전체적인 통증관리가 잘 된다고 한다. 그러다가 갑자기 너무 아프면 속효성 진통제를 먹는다.
약 챙겨주는 것도 쉽지 않다. 진지하게 시간되면 자동으로 열리고 그 안에서 약을 꺼내 먹지 않으면 알람이 울리고 보호자에게도 알려주는 그런 걸 개발할까라는 생각을 꽤나 했었다...
임상시험
어떤 약을 의사가 처방을 하는 단계가 되려면 안전성과 유효성을 충분히 입증하여 허가를 받아야 하는데, 입증하는 과정이 임상시험이다. (물론 임상시험도 기관에서 철저하게 관리한다.)
임상시험은 1상, 2상, 3상이라는 단계들이 있다. 1상은 안전한지를 보는 단계다. 2상은 효과가 있는지를 보는 단계다. 3상은 비교단계인데, 반은 가짜약을 주고, 나머지 반은 진짜약을 줘서 진짜약을 준 쪽이 더 효과가 있는지 보는 단계다. 뒤로 갈수록 더 입증이 된 단계라고 볼 수 있다.
임상시험에 참여하게 되면 효과가 있는 한 (다시 말하지만, 항암에서 효과가 있다 = 암이 커지지 않았다 이다) 약을 계속 무료로 쓸 수 있고 병원갈 때마다 교통비도 받는다.
임상시험은 도박이다. 지금와서 생각해봐도 임상시험에 참여하는 건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 하지만, 모든 병원이 그런지 모르겠는데, 다니던 병원에서 임상시험하는 병원으로 옮긴 후에, 제대로된 보살핌을 받지 못했다. 이 의사만 나쁜 의사인지, 원래 임상시험이 그런건지 모르겠다. 이 나쁜 의사는 폐에 있는 암 크기가 줄고 있다며, 왜 아프다는 건지 모르겠다고, 우울증약을 처방받아서 먹어보라고 권유했었다. 나중에 영상의학과의 CT 결과를 직접 떼어와서 읽어보니, 전이된 암은 크기도 안 줄고 대사가 오히려 활발해지고 있다고 처음부터 적혀 있었는데... 폐암 사이즈만 보고 다른 건 제대로 보지도 않았던 것 같다.
임상시험이 4달쯤 지났을 때부터 상태가 급격히 안 좋아져서 걷기가 힘들어졌고 인지능력도 많이 저하가 됐다. 임상시험하던 나쁜 의사한테 말했더니 "왜 그런지 모르겠다" 고 했다.
엄마는 임상시험 5달째 중단하고, 원래 다니던 병원에 응급실을 통해 다시 입원했다. 원래 담당하던 의사 선생님은 내성이 생각보다 너무 빨리 왔음에 안타까워 하며, 내성은 올 수 있지만, 상반신을 못 가누고 인지능력이 저하가 되는 건 설명할 수 없다며, 신경과에 바로 협진을 요청하셨다. (원래 다니던 병원은 협진이 정말 잘 됐었다.) 뇌에 암이 전이된 건 아니고, 뇌수두증 같다고 했는데, 치료를 해 보기 전에 다른 상황들이 급격히 안 좋아지면서 얼마전에 하늘나라로 가셨다. 그래도 우리 엄마를 환자분이라고 부르지 않고 "어머니" 라고 불러주던 따뜻한 병원 임종실에서 편안하게 잘 가셨다...
방사선 치료가 잘 되어 진통제 없이도 지팡이를 짚고 하루 5천보가 가능할 때가 있었다. 그 땐 지팡이 없이 걸을 수만 있으면 행복할 것 같았다.
화장실에서 자꾸 넘어져서 노심초사하던 때가 있었다. 그 땐 밤에 화장실만 안 가면 행복할 것 같았다.
휠체어에 앉을 수 있던 때가 있었다. 그 땐 보행기를 짚고 화장실만 갈 수 있어도 행복할 것 같았다.
전혀 움직일 수 없이 침대에 누워 있게 된 후, 그제서야 깨달은 게 있다.
그냥 조건없이 지금 행복해야 하는구나...
5년 생존율이 높아졌다고 하지만, 여전히 4기 항암은 살아가는 날을 더 늘리는 게 본질이고, 바로 오늘이 가장 컨디션이 좋은 날일 수 있다. 그래서 "이 병이 나으면 행복해야지" 라고 환자와 환자 보호자들이 모두 매달리는 건 좋은 선택이 아닌 것 같다. 그냥, 지금, 조건없이... 행복하기 위해 최선을 다하면 좋을 것 같다. 그 마음을 나누고자 인터넷 검색하는 시간이라도 조금 줄여주고 싶은 마음에, 주저리주저리 글을 썼다.
지금, 행복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