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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카누 Aug 13. 2020

기차역에는 수많은 사연이 있다.

오늘 당신은 어떤 사연이 있으신가요?

나는 1주일에 2~3번은 꼭 기차를 탄다.

지금도 기차역 플랫폼에 서 있다.

갑자기 어딘가에서 '으아아앙~' 찢어지는 소리를 들었다.

눈길이 멎은 곳에는 갓 열 살을 넘은 듯한 중증 장애인 어린이와 그 어머니가 서 있었다.

어디를 가는 길일까?

몸이 불편한 아들을 휠체어에 싣고 가는 길이 순탄치 않을 텐데...

열차 내에서 아들이 저렇게 소리를 지른다면 어머니가 많이 당황스러우실 텐데...

언제부터인지 모르지만 장애인 아들을 돌보기가 쉽지 않으셨을 텐데...

어려운 발걸음을 하여 두 모자는 어디로 가는 걸까?

어떤 사연이 있는 걸까?


기차역에는 수많은 사연이 있다.

군수교육학교에서 근무하는 20대 건장한 군인.

쫙 붙는 정장에, 샘소나이트 가방을 멘 30대 직장인.

비지땀을 흘리며 연신 손수건을 훔치는 40대 뚱뚱한 외국인.

용과 호랑이 무늬가 근사하게(?) 그려진 옷을 입은 노랑머리 40대 아저씨.

30년은 족히 된듯한 예스러운 양복을 깔끔하게 걸치신 80대 할아버지.

한의원 가방에, 보자기까지 바리바리 싸들고 있는 80대 할머니.

100L는 되어 보이는 캐리어를 끌고 가는 50대 아주머니.

까만색 정장을 손에 든 발랄한 20대 아가씨.

교복 입은 10대 여학생.

각자가 자신의 사연을 가지고 기차역에 서 있다.


세상에는 '희로애락 애오욕(喜怒哀樂愛惡慾)',

즉 기쁨, 노여움, 슬픔, 즐거움, 사랑, 미움, 욕심이라는 7가지 감정이 있다고 한다.

요즘 나는 기쁨, 즐거움, 사랑보다는 노여움, 슬픔, 미움이 더 많은 것 같다.

그럼에도 내가 하루를 버티고 사는 이유는

노여움, 슬픔, 미움 속에서 간간히 나를 '힐링'시켜주는 기쁨, 즐거움, 사랑이 있기 때문인 듯하다.


오늘 나의 사연은 '직장생활에 치여, 상사에 치여, 부하직원에 치여 힘듦, 지침'이다.

후배가 만들어 온 기획안을 보면 답답하다.

어디서부터 수습해야 할지, 어떻게 수습해야 할지, 뭐부터 가르쳐야 할지. 화가 난다.

우리 부서 일도 아닌 거 같은데, 자기가 할 것도 아니면서.

이 일 저 일 떠안고 오는 부장이 나를 부르는 소리가 참 밉다.

별 일도 아닌데 사사건건 화만 내고, 짜증만 내는 부장과 오늘도 수 번을 부딪혔다.

화나고, 짜증 나고, 더러워도 또다시 내일 출근을 할 수밖에 없는 나를 보면 슬프다.


하지만...

오랜만에 퇴근 후에 만난 오랜 친구와 소주 한 잔에 노여움, 슬픔, 미움은 씻어 넘긴다.

소주 몇 잔 후에 맞는 즐거움은 어디에 비할까?

소주 몇 잔 즐긴 후에 집에 오면 나를 반겨주는 아름다운 아내와 귀여운 아이들이 있다.

하루 종일 뭐했는지 조잘대는 아이들을 보면 기쁘고,

지친 남편의 어깨를 만져주는 아내에게 참으로 감사하고 사랑 뿜뿜이다.


이렇듯 평범한 직장인의 하루 사연에도 희노애락애오욕이 모두 다 있다.

내가 살면서 딱 하나의 목표가 있다면

항상은 아니지만 삶의 대다수의 나날에서

노여움, 슬픔, 미움보다 기쁨과 즐거움, 사랑이 더 많았으면 좋겠다.

49:51이라도 견딜만할 것 같다.


오늘 당신은 어떤 사연을 가지고 하루를 마무리하였나요?

내일 나는 또 어떤 사연을 만나게 될까요?

저의 오늘은 훌쩍 기차를 타고 파란 바다를 만나고 싶은 날이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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