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일 전
이주 전부터 몸에 변화를 감지한 아내는 임신 테스트기를 사달라고 했다. 주말에 근처 약국에서 가서 테스트기를 하나 사와 아내에게 건넸다. 아내는 ‘해보긴 해봐야겠지?’라고 말하며 화장실로 갔다. 초조하게 기다렸다. 아내가 말을 꺼내기 전까지 숨죽이고 있었다. 아내는 조용히 테스터기를 내게 보였다. 두 줄이 새겨졌다. 아내는 임신했다.
2015년 봄, 학기에 1,200만 원이나 드는 학비를 감당하며 대학원 2년 과정을 마무리할 무렵, 아내를 처음 만나 연애했다. 가진 건 없어도 잠재력만큼은 누구보다도 크다는 자신감으로 충만했던 시기, 바쁜 시간을 쪼개 영화를 보고 좋은 레스토랑에서 식사도 즐겼다. 밤에 통화를 하지 않고서는 잠도 잘 오지 않았다. 하루 일과를 공유하고 우리에게 펼쳐질 미래를 이야기했다. 우리는 진심으로 서로를 위했다.
3개월 정도 연애하고 맞이한 초 여름 어느 날, 여느 때처럼 회사에서 일을 하고 있었다. 싱그러운 봄이 가꾼 자리에 어느덧 뜨거워진 바람이 불고 있었다. 싱숭생숭한 마음을 둘 곳 없어 어디로든 떠나고 싶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을 때 전화 한 통을 받았다. “나... 나 임신했어..” 기쁨과 환희, 걱정과 불안이 교차했다. 혼전임신이다. 며칠을 두고 고민을 하기도 했지만 이미 답은 정해져 있었다. 우리는 3개월 후 결혼했고, 그로부터 4개월이 지나 딸아이가 태어났다.
우리는 사회 초년생과 다름없는 상태였다. 아무런 준비와 계획 없이 결혼을 하고 아이를 출산하기까지 험난한 길을 헤쳐나가야 했다. 결혼식이 임박해오면서 다툼은 심해졌고 결혼을 할지 말지에 관해서도 진지한 논의를 몇 번이나 했는지 모른다. 본가와 갈등도 심했다. 결혼을 하고 아이를 키우려면 어쩔 수 없이 집에 손을 벌려야 했다. 변변찮은 살림에 많은 도움을 받지 못할 걸 알면서도 막무가내로 행동했다. 철이 없었던 크기만큼 부모님에게 상처를 줬다.
모아놓은 돈도 없이 대출을 전부 끌어다 집을 마련했다. 가전제품과 가구는 모두 카드 할부로 구매했다. 차도 선수금 없이 전액 대출로 샀다. 결혼 후 1년 동안 빚과 투쟁하는데 모든 에너지를 소모하여야 했다. 생활비를 주기는커녕 카드 값을 메우는 데 받은 월급을 하나도 남김없이 바쳐야 했다. 지역에서 운영하는 여성센터에 매월 만원을 내면 아이 장난감을 대여할 수 있었다. 단 돈 만원을 내면서 손을 떨며 주저하던 아내 모습은 지금도 잊을 수가 없다.
결혼을 하고 나서 각자 위치에서 악착같이 일을 했고 지긋지긋한 돈 걱정에서 어느 정도 해방될 때까지 1년이라는 시간을 감내해야 했다. 연애를 할 때, 처음 아이를 가졌다는 말을 듣고서 온몸에 엄청난 전율이 일었고 곧이어 감당할 수 없는 걱정과 부담이 온몸을 짓눌렀다. 첫 임신 소식은 완벽한 축복은 아니었다. 아이를 볼 때마다 미안했다. 그만큼 그 어느 자식보다도 잘해주려 애썼다.
첫아이가 태어난 날 일기에 나는 이렇게 적었다.
“감동적인 하루였다. 가슴속 깊은 곳에서부터 눈물이 쏟아졌다. 1/30 9:46 우리 아이가 태어났다. 고생한 아내와 우리 아기. 우리 가족을 위해 무엇이든지 다 해내리라.”
딱히 둘째 계획을 하지 않았다. 어떤 촉이라도 있었던 것일까? 첫째 아이가 지금보다 더 어렸을 때 사용했던 유모차, 영어책, 장난감, 옷가지를 몇 번이나 처분하려고 했다가 마음을 고쳐먹었었다. 아이는 그렇게 우리에게 왔다. 둘째 임신은 첫째와 달랐다. 모든 사람들에게 더할 나위 없는 축하를 받았다. 혼전임신이라는 뭔가 당당하지 못한 상황도 아니었고 경제력도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좋아졌다. 아무것도 모른 채 육아를 시작할 때보다 마음의 여유도 커졌다.
한 가지 걱정은 남아있다. 기러기 아빠 예정자라는 사실. 일주일이 지나면 아내와 딸을 보내고 혼자 한국에 남는다는 현실을 극복해야 한다. 아내가 임신했다는 사실은 이주 계획에도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다. 첫째와는 다른 의료체계와 낯선 환경에서 열 달을 보내야 한다. 경제적 부담도 문제다. 생각보다도 훨씬 더 돈 걱정을 해야 할지 모른다. 우리나라보다 비싼 물가와 의료비용을 감당해내야 한다. 의료 보험을 받지 못하면 수천만 원이 들지도 모르는 일이다.
돈뿐만 아니라 임신 초기 필요한 것들을 아내 스스로 챙겨야 한다는 것이 더 큰 걱정거리다. 장모님이 같이 출국을 하므로 부담을 조금 덜긴 했으나 곁에 있어주지 못하므로 모든 것을 스스로 감당해야 할 텐데 뾰족한 수가 없다. 지금까지 그래 왔듯이 일단 헤쳐나가는 것 말고는 계획이나 대책이란 게 있을 리 만무하다. 머나먼 타지에서 홀로 견뎌야 할 시간을 생각하니 슬픔이 차오른다.
묵묵히 버텨왔기에 앞으로 잘 해낼 거라며 다독이는 척, 삶의 무게를 다시 한번 아내에게 전가하는 건 아닌가 하는 생각을 지울 수 없다. 둘째 아이의 임신 소식은 충만함과 동시에 무거움으로 다가온다. 늦은 저녁 아내와 한 침대에 누워있을 때 해맑은 표정으로 나를 바라봐주는 모습을 보면 마치 죄인이라도 된 것처럼 숨어버리고 싶었다.
걱정에 잠겨 멍하니 있는 내게 아내는 말한다. 정말 소중한 시간에 아기가 찾아와 줘서 무척 고맙다고. 그러니 우리 지금까지 해온 것처럼 잘했으면 좋겠다고. 딸아이에게 엄마 배에 아기가 있다고 말해줬다. 이름을 지어보라고 하니 수줍어한다. 아내가 임신하자 또 다른 행복이 펼쳐졌다. 아내를 돌보지 못하는 마음은 쉬이 떨쳐지지 않겠지만 지금 이 순간 빛은 온전히 우리 가족을 비추고 있는 듯한 기분이 든다.
아내는 임신했다. 이주 준비로 바쁜 나날들을 보내왔는데 엉겁결에 찾아온 둘째 아기 소식은 가족 모두를 들뜨게 만들었다. 기쁘고 행복하다. 일주일 동안 임신한 아내와 다섯 살 딸아이, 그리고 뱃속 아기와 소중한 추억을 쌓아야 한다. ‘지금’을 놓치고 평생 후회를 하며 살아갈 ‘미래’가 자신이 없다. 먼 훗날 정말 기쁨이 충만한 하루하루였었다고 아내와 함께 두 아이에게 이 순간을 전하고 싶다.
나는 이제 결혼한 지 10년이 되었다. 나는 내가 세상에서 가장 사랑하는 존재를 위해서만 사는 것, 그 존재와 함께 사는 것이 어떤 것인지 알고 있다. 나는 나 자신이 대단히 축복받은 사람이라고, 어떤 언어로도 표현할 수 없을 만큼 축복받은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676
당연히 우리는 항상 함께였다. 함께한다는 것은 우리에게 혼자 있을 때만큼 자유로운 동시에 같이 있을 때만큼 즐겁다는 것을 의미한다. 우리는 하루 종일 이야기를 나누는 것 같다. 서로 이야기를 주고받는 것은 생각을 더 생생하게 만들어서 소리로 표현한 것일 뿐이다. 나는 마음속의 모든 생각을 그에게 털어놓았고 그 역시 모든 생각을 전부 내게 털어놓았다. 우리의 성격은 꼭 맞았다. 그 결과 완벽한 조화가 이루어졌다. 677
- 샬럿 브론테, 제인 에어 (하), 열린책들
(페이지는 전자책 기준으로 표기하였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