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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반영 Apr 21. 2024

콩애가

#콩애가 #일산 #하얀 순두부 #솥밥



모처럼 찾은 본가는 달라진 식탁 문화로 몹시 낯설었다. 채식을 선언한 엄마와 아빠는 육식이라면 환장하는 딸의 '차지 않는 배고픔'을 걱정하며 이따금 언제 사두었는지 모를, 그러면서도 냉동고 한편을 버젓이 차지하고 있는 삼겹살과 등갈비를 내어 주었다. 그런 날을 제외한 대부분의 식사 메뉴는 정성 들여 채 썬 각종 야채를 또 다른 야채나 곱창김에 싸 먹는 식이었다. 잔뜩 먹어도 채워지지 않는 허기짐이 몇 날 며칠 동안 계속되었다.


집에는 하루가 멀다 하고 손님들이 찾아왔다. 엄마의 지인들이 대부분이었지만 어느새 아빠와도 친구가 된 그들 사이에서 오히려 딸인 내가 이방인이 된 기분이었다. 앞선 약속이 늦어지고 뒤따른 약속이 부지런을 떨어 모르는 사람들이 한 공간에 앉게 되는 날도 종종 있었다. 보이지 않는 규칙이라도 존재하는 걸까? 모두가 본래부터 알고 지낸 사이인 양 이질감 없이 대화를 주고받는다. 그러는 사이 또다시 이방인이 되는 것은 내 몫이다. 


점심(혹은 때에 따라 저녁) 먹고 가세요, 하면 손사래 치며 아니에요. 괜찮아요. 집에 가서 먹을게요, 할 법도 한데 어느 누구도 사양을 않는다. 이럴 때 남녀노소 구분 없이, 채식이든 육식이든, 그 외 어떤 주의자의 취향도 타지 않는 메뉴가 있으니, 바로 '두부' 되시겠다. 손님들 틈에 묻혀 따라나가는 것이 번거로워 그냥 혼자 먹을까 생각도 여러 번 했지만, 시나브로 '콩애가'에 길들여져 본가를 떠나서도 그리움의 대상이 되지 않았겠는가.


하얀 순두부(1만 원)를 주문하고 기본밥을 솥밥(3천 원 추가)으로 변경하면 세상 그렇게 든든할 수가 없다. 입안에서 찰지게 터지는 밥알을 부드럽고 고소한 두부와 함께 음미하는 순간, 스스로 이방인처럼 여겼던 낯선 마음이 삭제된다. 주변을 겉돌던 마음도 좋아하는 누군가/무언가가 생기면 사르르 녹아내리는 법. 그 즉시 내가 세상의 중심이다. 그리고 더 큰 행운 하나. 여전히 주변을 겉도는 이방인(밑반찬)들도 하나같이 너무나 맛있다는 것! 멸치 볶음은 최소 3번은 리필할 각오를 하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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