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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너굴이 Mar 25. 2024

좌변기는 외국인, 재래식은 대만인

낯설어요... 변기에 쪼그려 앉다니... 

3월 하순으로 접어들더니 기온이 (체감상) 급격히 올라, 어젯밤은 땀이 나서 잠을 설칠 정도가 되었다. 사람들이 대만은 여름 아니면 겨울이라더니, 벌써 여름이 오는 것인가 싶다 (아직 3월인데!). 오늘은 아침 6-7시에 벌써 23-24도를 기록하길래 일찌감치 학교 도서관으로 나왔다. 아직 하루를 시작하지도 않았는데 벌써부터 느껴지는 뜨듯 미지근한 공기가 훅 밀려 들어온다. 대만의 '겨울' 조차 춥다고 느낀다는 싱가포르 출신 내 친구 왈, 이런 (아)열대성 고온다습한 기후는 피부에 좋지만 머리카락에는 쥐약이라나. 반대로 밴쿠버 기후는 머리결에는 좋지만 피부에 최악이랬다. 이곳의 요즘 날씨가 피부에 좋은지는 절대 모르겠고 머리카락에 쥐약인 건 잘 알겠다. 묘하게 머리카락이 잘 엉키고 떡이 빨리 진다 싶은데 (매일 씻습니다 ㅠ), 날씨, 네 탓이로구나. 심지어 단골 카페 고양이들 털에도 기름이 껴서 떡이 졌다고 느껴지는데 사람 털인들 오죽할까. 왜 이런 날씨가 피부에 좋다는 지도 전혀 모르겠다. 아마 밴쿠버 겨울같이 건조하지 않아서 주름이 덜 생긴다는 뜻이겠지? 하지만 이런 아열대성 기후에서 내 피부는 매일같이 유전을 발굴하고 또 발굴하기에, 피부가 좋다는 느낌을 전혀 받을 수가 없다. 으악.





1/ 화장실이... 달라요!!!

 

믿기 어렵겠지만 대만의 화장실은 10칸 중 쪼그려 앉는 변기(*쭈굴 변기라 부르겠다)가 7-8개, 나머지가 양변기인 구조가 대부분이다. 카페나 식당 같이 화장실을 1-2칸 구비하는 경우는 대체로 양변기이지만 학교나 공원, 지하철 역, 공관 등 화장실칸이 여러 곳인 경우에는 쭈굴 변기가 압도적으로 많다. 그래도 각 칸마다 문짝에 양변기 모양과 쭈굴 변기 모양을 붙여두어 들어가는 사람으로 하여금 본인이 어떤 것을 선택하고 있고 앞으로 펼쳐질 미래가 무엇인지는 알 수 있게 해 준다. 


학교 도서관에서 아무 생각 없이 화장실 문을 열었다가 있어야 할 양변기는 없고 바닥에 웅덩이 모양으로 잘 빚어져 있는 쭈굴 변기를 보았다. 실로 놀라서 '우엌'이라는 이상한 소릴 내며 문짝을 냅다 후려쳤다. 쭈굴 변기를 처음 본 것도 아닌데 오랜만에 보았더니 인상이 강렬했던 모양이다. 


딱 한 칸 있는 양변기를 차지하고 잠시 과거로 시간여행을 떠났다. 나도 아주 어릴 땐 학교나 외갓집 화장실에서 쪼그리고 앉아서 일을 해결했었던 기억이 나는데, 이제 와서 유난이다 싶었다. 하지만 문득 떠오르는 물음표 하나. 5-6살짜리 아이의 다리 근육이 지금 내 다리 근육보다 더 강력했단 말인가...?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나는 더 이상 쭈굴 변기 위에 엉거주춤 떠서 일정 시간 동안 버티고, 단순히 버티는 것뿐 아니라 더 중요한 일을 처리할 자신이 없다. 양변기는 뭐 엉덩이가 서늘한 느낌을 받긴 하지만 어찌 되었든 동그랗게 나를 지지해주지 않나. 하지만 내 두 다리 외에는 기댈 곳 없는 상태에서 엉덩이를 딥 스퀏보다 더 큰 각도로 내리고, 거기서 버티며 다음 과제를 수행하고, 그리고 바닥을 딛고 있는 두 발바닥에 힘을 줘야만 다시 올라올 수 있는 상황은 분명, 매일같이 인간을 단련시키는 과정이리라. 자기 몸뚱아리 말고는 이 혹독한 세상에서 믿을 것 하나 없다는 뭐 그런 가르침 아닐까. 그래, 인간은 원래 홀로 고독했다. 


적응의 시간을 거쳐 이제는 화장실 들어가기 전 각 칸의 문짝부터 스캔한다. 나는 내 선택에 대해 의심을 한 적도 없고 늘 확고했다 - 내가 갈 곳은 양변기. 그러다 보니 발견한 것 하나. 양변기를 사용하는 사람들은 주로 외국인이었고 쭈굴 변기칸으로 평온한 표정을 유지하며 들어가는 사람들은 대만인일 것이라는 나름의 관찰값이 생겼다. 물론 나 같은 동양 여자는 생김새로 볼 때 외국인인지 대만인인지 구분할 길이 없다. 하지만, 금발과 벽안의 외국인들이 바닥에 놓인 도자기 변기 표시 앞에서 한번 움찔하고, 조용히 그렇지만 단호하게 양변기를 찾아 떠나는 그 발걸음을 보건대 내 관찰결과가 아주 틀리진 않은 것 같다. 


며칠 전에는 아주 좋지 못한 광경을 보고야 말았다. 역시 쭈굴 변기 칸이었는데 문이 아주 살짝 열려 있었다. 안타깝게도 누군가가 조준에 크게 실패하여 공동체에게 못 볼 꼴을 선사하고만 그 장면을...... 아악. 



2/ 남을 잘 돕는 사람이 되겠습니다


지난번에도 밝혔지만 나는 대만사람들에게 미안할 정도로 중국어를 잘 못한다. 비록 한국에 있을 때부터 중국어를 배우며 인연을 유지하려고 노력했지만, 실력이 향상될만하면 이동을 한다거나 다른 중요한 시험이 있다거나 등등의 '방해요소'가 있었기에 중국어는 늘 뒷전이었고, 그러다 보니 자연스레 실력은 늘 제자리였다. 


그런데 대만에서 체류할 일이 생기고 말았다. 

이제 와서 예전에 배웠던 중국어 책을 뒤적여봐야, 실생활에 도움이 되는 경우는 5% 남짓. 한국에서 나고 자랐지만 영미권에서 공부든 직장 생활이든 시작하신 분들은 어느 정도 공감하리라 생각한다. 그렇게 열심히 토익, 토플, 심지어 GRE까지 했는데, 또 스피킹이 중요하대서 그렇게 회화에 신경 썼지만 실전에서 마주치는 당황스러운 장면을 피해 갈 순 없단 사실을. 


나만해도 뉴욕에서 처음 "for here or to go"를 뱀처럼 말하는 원어민을 만나 최소 한 번은 당황했던 것 같고, "how's it going"을 묻는 친구에게 진짜 내 상황을 알려줘야 하는 줄 알고 그날 있었던 일을 줄줄 브리핑한 적도 있다 (간단히 good 이라고만 하면 되는 거였다. 어차피 진짜 궁금해서 묻는 게 아니기에...). 식당에서 서버가 "still or sparkling"으로 훅 치고 들어오는 걸 처음 겪은 날은, '뭐, 나 아직 여기 있냐고 어쩌냐고'를 속으로 자문하며 어버버 한 적도 있다. 영어 회화와 관련된 웃픈 에피소드는 정말 도라에몽 주머니처럼 꺼내도 꺼내도 끝이 없을 테다. 


중국어도 회화의 장벽이 어마무시하긴 마찬가지였다. 영어에 비해서 현저히 떨어지는 수준이지만, 한자를 읽을 줄 안다는 것 하나만 믿고 '어떻게든 되겠지'라고 생각하는 객기를 보였다 (실제로 종종 어떻게든 될 거라고 생각하고 산다...). 다행히 번체자라 대충 뜻은 알 수 있지만 문제는 리스닝과 스피킹이 힘들다는 것. 온갖 아는 단어를 총 동원해 봤자, 중국어 수업시간에 배운 것들이 큰 도움이 안 되었다. 사람을 처음 만났을 때 "안녕하세요. 제 이름은 너굴이입니다. 성은 '너'이고 이름은 '굴이'입니다. 만나 뵙게 되어서 매우 반갑습니다, " "당신은 건강하십니까?" "오늘의 기상예보를 보니 비가 올 예정이라고 하는군요." 따위의 말을 할 일이 뭐 얼마나 되겠나. 일단 식당을 가면 "몇 명이냐", "아무 데나 앉아라", "계산은 나중에 해라, " 등등의 말을 알아듣는 것이 급선무였고, 마트에서는 "봉지 줄까?" "적립하니?" "전자 영수증 있니?" "종이영수증 줄까?" 등의 말이 쏟아지는데, 이런 건 중국어 교과서에 없었다. 


구정 연휴 직전에 대만에 도착했더니 학교뿐 아니라 온 나라가 문을 닫은 통에, 숙소 열쇠도 남의 손을 거쳐 받아야 했다. 인터넷 연결이 말썽일 때, 그리고 실수로 열쇠를 숙소에 놓고 나와버렸을 때도 염치 불구하고 현지인에게 도움을 요청해야 했었다. 내 어버버 중국어로는 문제 해결에 도움이 1도 안 될 것이기에, 친절하게 도와준 현지인이 아니었다면 나는 오늘 이 글을 쓰고 있지도 못했을 것이다. 순간 밴쿠버에서 마주쳤던 숱한 한국 방문학자들이 떠올랐다. 현지인의 도움으로 열쇠수리공을 불러 숙소 문을 따던 날, 짝꿍에게 카톡을 날렸다. "이제 방문학자들한테 더 잘해주자." 


열에 하나는 한국에서 하듯이 '내가 교수 입네' 하고 여기서도 대접받길 바라거나 학생을 비서처럼 부리려는 사람이 있었기에 (내가 자기 학생도 아닌데), 삼세번 지켜보고 그런 뉘앙스가 보이면 거리를 뒀었다. 자기가 알고 있던 거의 모든 방문학자들에게 아낌없는 도움을 실천하는 짝꿍을 보며, 친절을 베풀 가치가 있는 사람에게 베풀라고 훈수둔 적도 있다 (아마 해당 교수의 태도가 마음에 안 들었던 것 같다). 이런 사고방식이 깔려 있는 나였으니, 숱하게 지나간 사람들 중 한 명은 내게서 좀 더 살가운 도움을 바랐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대부분은 정말로 타지의 시스템도 잘 모르고 말도 잘 통하지 않아 어렵게 도움을 요청했던 것이리라. 현지에 살고 있는 우리에게는 별 일 아니지만 막 새로운 도시에 정착한 사람들에게는 모든 것이 낯설었을 것이다. 


굳이 겪지 않고도 상대편의 입장에서 생각해 볼 정도로 마음에 여유가 생기면 좋겠는데, 아직은 수련이 더 필요한가 보다. 



3/ 팁이 없으니 너무 좋네요...! 


대만에도 우버와 우버이츠가 있어서 캐나다에서 쓰던 앱 그대로 아주 잘 쓰고 있다. 

다른 부분은 잘 모르겠는데, 우버이츠 하나만큼은 한국인의 배달정신 못지않게 신속 정확한 배달을 자랑한다. 반경 5km 이내의 식당에서 음식을 주문하면 거의 20분 내로 배달이 완료된다. 나를 떨게 만드는 무수히 많은 오토바이들이 이 신속정확 배달의 주역들이리라. 


대만도 생활비 및 물가가 그렇게 싸지는 않다고 들었다. 특히 저임금은 꽤나 심각한(?) 문제라고 현지인들이 말하는 것을 종종 들었다. 그도 그럴 것이, 2022년 대만의 1인당 소득이 2002년 이후 처음으로 한국을 추월했다는 기사가 나기도 했지만, 대만의 임금 소득은 한국의 70% 정도인 것으로 나타났다. KOTRA의 자료를 보면, 2021년 기준 한국의 평균 소득이 월 333만 원일 때, 대만의 평균 소득은 약 229만 원인 것이다. 같은 해 중위 소득을 기준으로 하면 한국은 월 250만 원인데 대만은 월 173만 원 정도에 그친다 (https://dream.kotra.or.kr/kotranews/cms/news/actionKotraBoardDetail.do?SITE_NO=3&MENU_ID=100&CONTENTS_NO=1&bbsGbn=322&bbsSn=322&pNttSn=212648#:~:text=%ED%95%9C%EA%B5%AD%EA%B3%BC%20%EB%8C%80%EB%A7%8C%EC%9D%98%20%ED%86%B5%EA%B3%84,%EC%97%90%20%ED%95%B4%EB%8B%B9%ED%95%98%EB%8A%94%20%EC%88%98%EC%B9%98%EB%8B%A4.). 연봉으로 따지면 2022년 대만 연봉의 중앙값은 51만 8000 대만달러 (한화 2,227만 원)이며, 한화로 연봉 1505만-1720만 원 구간에 가장 많은 근로자가 분포되어있다고 한다. 


물론 식비는 밴쿠버나 서울의 그것에 비해 훨씬 싸다. 대만 도착 첫날 우버이츠를 통해 주문한 음식의 가격은 200 대만달러 (CAD 8-9불 정도). 외식비 자체는 밴쿠버의 절반 정도라고 느꼈지만, 팁이 없으니 식당에서든 배달음식이든 밴쿠버의 3-40%에 준하는 금액이라고 생각하여 음식을 대하는 마음이 만석꾼과 같아졌다. 하지만 이 가격을 들은 현지 친구의 말로는 한 끼 식사로 그 정도면 꽤 비싼 편에 속한다고 했다. 이곳도 파스타와 버거 종류는 가격대가 약간 높게 형성되어 있는데, 1인당 400 대만달러 (CAD 15-16불 정도) 정도면 충분히 즐길 수 있다. 그렇다고 양이 적은 것도 아니고 각종 곁다리 음식이 푸짐하게 나오는 편이다. 일반 밥집에서 싸게 먹으면 100-150 대만달러 (CAD 4-6불 정도), 우육면은 200 대만달러 미만 (CAD 8불 미만), 버블티는 50-70 대만달러 (CAD 2-3불 정도) 정도이니 외식비 자체를 놓고 보면 비싸지 않다. 


하지만 '비싸지 않다'는 말은 물가가 연일 고공행진하고 외식이라도 한 번 할라치면 2인 가구 7-80불은 생각해야 하는 밴쿠버에서 온 나 같은 사람이나 호기롭게 할 수 있는 말이지, 현지인들은 크게 공감하지 못하는 말이라고 들었다. 내가 지내는 곳이야 학교 숙소이기 때문에 월세가 싸지만 (건물 상태를 보면 비싸게 받을 수 없을 것 같긴 하다), 대만 중심부의 아파트는 한화 7-80만 원짜리 월세가 흔하다고 한다. 한 달 월급이 170만 원 남짓인데 100만 원 가까운 돈을 월세로 내고 나면 식비와 기타 비용에 여유를 갖기 힘들 것 같다. 실제로 현지 학생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내가 지금 서울이나 밴쿠버에 있나, 싶을 정도로 똑같은 이야기를 들려준다. "부모님 도움 없이 어떻게 집을 사고 먹고살 수 있을지 잘 모르겠어요." 


음...

그 문제에 대해서는 나도 뾰족한 수가 없으니 어떤 해결책이 있으리라 생각하지 않기로 했다. 

남아있는 시간 동안 '저렴한' 외식비와 세금 없는 공산품, 그리고 신속정확한 우버이츠의 장점이나 맘껏 누리다 가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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