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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우 Nov 01. 2024

1. 허약체질 엄마, 자연분만 도전! 결과는?

허약체질 엄마지만 아이만 키우고 싶지 않아

“어머, 이렇게 여리여리한데, 애가 둘이에요?”


애가 둘이 있다고 하면 가장 많이 듣는 반응이다. 여리여리라 말하지만 그 속에 숨은 뜻이 내가 아이 둘을 키우기에는 약해 보인다는 임을 모를 리 있겠는가. 딱 보자마자 이런 이야기가 나올 정도로 여리여리 아니, 허약 체질인 사람이 그게 바로 나다.   

  



내가 초등학교 저학년이었던 1990년대 초는 명절이 되면 지금처럼 다양한 고속도로도 없었을뿐더러 무조건 고향에 가야 한다는 풍습에 도로가 마비되던 때였다. 우리 집은 자동차도 따로 없었기 때문에 어린 나이에 꽤 멀게 느껴졌던 고속버스 터미널까지 먼저 이동하고, 거기에서부터 10시간도 넘게 차를 타고 가야 했다. 나중에 자동차가 생기고 난 후에는 터미널까지 이동은 안 해도 됐지만, 아빠 혼자 운전하며 졸릴 때마다 자면서 내려가다 보니 24시간을 넘겨서 도착하는 날도 있었다.


이동이 오래 걸리면 지루했던 것은 둘째치고 나는 집에 돌아와서 열이 펄펄 나서 누워 있어야 했다. 그런데 이상했다. 함께 갔던 동생은 멀쩡하고 늘 나 혼자만 아팠다. ‘왜 나만 아프지?’ 똑같이 오랫동안 차를 타고 시골에 다녀왔는데, 나는 아파서 누워있고 동생은 팔팔한 게 반복되니 이상하다고 어렴풋이 생각했다.      


고2 겨울방학에는 친구들과 집중해서 공부해 보겠다며 학교 자습 대신 친구들과 원룸을 빌려 합숙을 했다. 그전까지는 공부에 마음을 못 잡고 방황을 하다가 친한 친구들 덕분에 다시 용기를 얻고 공부에 전념해야겠다고 마음을 먹은 터라 각오가 상당했다. 친구들과 합숙 시간표를 짰고, 공부하고 밥 먹고 저녁에는 함께 잠깐 운동하는 시간까지 넣어 나름대로 체계적인 시간표를 짜고는 우리 계획은 완벽하다며 자화자찬을 했다. 그렇게 친구들과 24시간을 함께하니, 처음 의도대로 서로가 서로에게 자극이 되어 하루 종일 공부하는 환경이 자연스럽게 조성됐다.


그동안 엉덩이를 의자에 붙이고 공부하는 습관이 아쉬웠던 내가 순수 공부 시간이 13-15시간이 되기까지 해서 합숙을 한 보람을 느꼈다. 고 2까지 방황하며 공부에서 손을 놨던 터라 마음이 급했다.


 하지만 그때나 지금이나 누구에게나 공평했던 것은 시간이었고, 공평하지 않은 것은 바로 각자의 체력이었다. 분명 친구들과 똑같은 시간에 자고 똑같은 시간에 일어나서 밥 먹고 운동까지 같이 했는데, 이번에도 나만 몸이 아픈 것이다. 도저히 함께 공부할 수 있는 상태가 아니라 나만 따로 원래 집으로 가서 며칠 요양을 하고 온 후 다시 합류했다. 이때를 계기로 비로소 명확하게 깨달았다. 나는 다른 사람과 똑같이 하면 탈이 나는 몸을 가졌음을.      




남다른 허약체질인 것을 알았기 때문에 무슨 운동이든 끈을 놓지 않으려고 노력했다. 언제부턴가 로망이었던 검도를 대학교 동아리로 선택한 것도 허약체질을 조금이라도 극복해보고 싶은 그런 마음에서였다.


내 인생에서 체력 절정기였던 검도를 하던 시기를 지나, 초등 교사라는 직업을 갖게 되고서도 검도를 지속하고 싶었지만 여건이 되지 않아 이런저런 운동을 얕게 시도했다. 남편과 연애하던 시절에는 한참 로드 자전거를 타고 있던 때라 함께 제주도 자전거 일주했던 게 우리 연애의 가장 특별하고 소중했던 순간이었다. 이렇게 체력을 극복해 보고자 꾸준히 노력을 해오며 지내다가 남편과 결혼을 했다.      


유별난 자연주의 엄마의 영향을 받아 자라왔기 때문에 아이만큼은 꼭 자연분만으로 낳고 싶었다.


임신 39주 차 무렵부터 아이가 내려오길 바라며 짐볼을 열심히 했고,13층인 집을 오를 때는 무거운 만삭의 몸에도 엘리베이터 대신 계단을 선택했다. 예정일 전날에는 만 보 넘게 산책을 하기도 했다. 몸을 많이 쓰면 아이가 내려올 줄 알았는데, 예정일에서 5일이 지나도 아이가 나올 생각을 안 했다. 병원에서는 40주 차 5일에 유도분만을 권유했다. 유도분만 후기를 검색해 보니 초산 유도분만은 대게 실패로 많이 끝나는 경우가 많았다. 수많은 실패 후기에 마음이 불안했지만 내 모든 힘을 내서 성공하고 보란 듯이 후기를 남기리라 다짐하며 집을 나섰다.      


아침 7시에 병원에 입실해서 8시부터 촉진제를 맞으며 본격적인 유도분만 과정이 시작됐다. 조금씩 촉진제를 증량하다가 오전 11시에 자궁문이 1cm 열렸다. 배가 싸하게 아픈 느낌이 불쾌하고 참을 수 없을 것 같았지만 내가 꿈꿔왔던 자연분만의 길이 이제 시작되었구나 싶어서 내심 기뻤다. 분만실 내에서 걷기 운동도 하고, 다시 촉진제를 투여해서 드디어 오후 3시가 넘어 양수가 터고 자궁문이 5cm나 열렸다. 이제 연두가 내려오기만 하면 낳을 수 있다고 했다. 오후 6시가 지나도 여전히 연두 머리가 안 내려와서 수술 권유를 받기 시작했다. 저녁 7시에 다시 연두가 힘들어한다며 수술해 보자고 하셨다. 무통 주사 기운도 안 듣기 시작했지만 조금만 더 해보겠다고 했다. 계속되는 수술 권유에도 힘주기를 반복하며 버티다가 9시가 넘자 내 몸에서 열이 나기 시작했다. 열이 나니 힘을 줄 수 없었고 심지어 아이는 태변을 먹은 지 몇 시간이 지난 터라 이제 더 이상 지체할 수 없었다. 나의 자연분만의 꿈은 그렇게 깨졌고 수술을 결정했다. 아픔을 느낄 건 다 느끼고 기력도 다 빠졌는데 수술까지 해야 한다니. 그래도 나로서는 최선을 다 했기 때문에 그때가 돼서야 비로소 수술을 받아들일 수 있었다.      


걸어갈 힘이 없어서 휠체어를 타고 수술실로 이동했다. 그 짧은 수술실로 가는 길에 병실을 되돌아보는데 이 날 하루 있었던 일이 마치 1주일이 더 넘었던 것처럼 길게 느껴졌다. 순간 임신했을 때 봤던 인터스텔라 영화가 떠올랐다. 나는 인터스텔라 세계에 갇혀 현실 세계를 몰래 엿보고 있다가 이제야 다시 현실 세계로 돌아온 듯했다. 마취를 했기 때문에 아픔은 느껴지지 않았지만 수술하던 순간 쓱싹거리며 내 살을 가르던 그 느낌은 아이를 낳은 지 몇 년이 지난 지금도 여전히 생생하게 기억난다. 둘째 앵두를 낳을 때는 이런 감각이 없었던 것을 보면 이 때는 긴박하게 응급 수술을 하느라 마취가 완벽하게 되지 않았기 때문인 듯싶다.


그렇게 나의 육아는 출산부터 벽을 크게 느꼈고, 나와 아이의 저조한 몸 상태로 인한 지난한 여정이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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