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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우 Nov 08. 2024

특이한 신혼생활의 시작

허약체질인 엄마지만 아이만 키우고 싶지는 않아 

"엄마랑 아빠 내려갈게." 


아빠가 퇴직을 하자마자 할머니, 할아버지, 외할머니 이 세분을 모시기 위해 돌연간 부모님 두 분이 같이 고향으로 내려가셨다. 그것도 저 먼 해남땅. 부모님과 함께 4명이 살던 집에 갑자기 동생과 둘만 남아서 살게 되었다.


밥과 빨래 집안 살림을 다 책임지는 게 쉽지 않았지만 적응할 즈음 녹을 만나 연애를 했다. 녹과 결혼하기로 했을 때 신혼집을 어디로 할지 결정해야 했다. 부모님 집이 있는데 굳이 신혼집을 따로 알아보지 말고 동생과 함께 사는 건 어떨까 싶었다. 녹도 이 생각에 동의해서 친정 부모님께 이 생각을 전하니 내가 결혼하면 혼자 이 집에서 살아갈 동생이 걱정이었던 친정엄마는 잘 생각했다며 너무 기뻐했다.


동생은 타인인 형부와 같이 살아야 하니 좀 불편할 수도 있었겠지만 이 집에 혼자 남겨지지 않아도 된다는 사실에 형부와의 기묘한 동거를 동의했다. 시부모님은 처음에는 친정에 사는 게 진짜로 괜찮을지 잠시 우려했던 것 같지만 우리의 결정에 동의했다.


그렇게 동생과 둘이 살던 집에 녹이 들어와서 사는 특이한 신혼생활이 시작됐다.      

 



결혼 소식을 알리며 이런 식으로 신혼 살이를 할 거라 얘기하니 우려의 말들을 들었다. 나를 염려했던 한 동료는 자기가 아는 사람이 나처럼 친동생과 함께 한 집에서 신혼생활을 하다가 아이를 한참을 갖지 못하다가 동생이 독립하고 나서야 아이를 가졌다며 다시 잘 생각해 보라고 했다. 또 다른 동료는 "남자가 땡잡았네."라고 말하며 결혼할 때 받아낼 수 있는 것들(?)을 받지 못하는 나의 어리석음을 탓하는 동시에, 비슷한 시기에 결혼했던 직장 후배가 강남에 집이 있는 집안에 결혼을 하니 시집을 잘 간다고 하며 대놓고 나를 후배와 비교하기도 했었다.      


우리가 이렇게 동생과 세 명이서 한 집에 사는 신혼을 생활을 한다고 했을 때, 남들은 가타부타했지만 정작 나랑 녹은 이 문제로 고민했던 적이 전혀 없었다. 우리가 살고 있는 부모님 명의의 집은 부모님이 평생 모은 돈으로 정착한 곳이기 때문에 평수가 꽤 커서 어른 세 명이 함께 살기에 충분했고, 이곳에 이사왔을 때 불만스러웠던 안방과 작은 방이 멀리 떨어진 구조 또한 이 집에서 남편과 나 그리고 동생이 함께 살면서도 서로의 사생활을 지키기에 적합했다. 함께 살려고 생각하고 바라보니, 아귀가 딱딱 맞아떨어지기 시작했던 순간들이었다.  


신혼 초에는 녹이 퇴근하고 오면 함께 할 시간이 많았다. 녹의 취미 생활인 테니스를 같이 해볼까 하고 함께 레슨도 받기 시작했다. 하지만 너무 여유가 있던 곳이라 결국 녹은 다른 바쁜 지점으로 발령이 났고 야근이 조금씩 늘어나기 시작했다. 점점 녹과는 평일에 얼굴 보기가 힘들었다. 그럴 때 함께 사는 동생이 있기에 서로의 말벗이 되어주고 식사 메이트가 되었다. 아마 동생이 없었으면 신혼인데 야근하며 얼굴 보기 힘든 녹에게 바가지를 긁지 않았을까. 녹은 야근하며 늦게 들어오는 날이면 늘 내 동생이 같이 있으니 다행이라며 그 당시 즐겨보던 티비프로의 표현을 빌어 "압도적으로 감사합니다."라며 동생에게 고마움을 표현하곤 했다.     




직장 동료의 우려와는 달리 그리 오래지 않아 신혼 8개월 차에 첫째인 연두가 뱃속에 찾아왔다. 연두가 찾아오고 임신 초기에는 피 비침이 있어서 남편과 함께 받던 테니스 레슨을 곧바로 그만뒀다. 무리하지 말고 되도록 누워있으라는 의사 선생님의 말에 퇴근하고 오면 무리하지 않기 위해 누워서 뒹굴거렸다. 


운동을 전혀 못하니 답답했다. 평소에도 우울의 동굴에 자주 빠지던 나를 친정 엄마와 녹은 걱정했다. 임신 초기에는 연두가 잘못될까 봐 출근 외에는 절대 외부 약속을 잡지 않았다. 그렇게 집과 일터만 오가며 아이를 위해 안정을 지키려 노력하는 단조로운 삶에 외롭고 지칠 때 함께 사는 동생이 말벗이 되어주었다. 부모님 집에 동생과 함께 산다고 결정했을 때, 순전히 혼자 남겨질 동생이 걱정돼서였지 나의 외로움을 채워줄 거라 기대해서는 아니었지만 동생과 함께 산 덕분에 나는 혼자만의 동굴에 빠지지 않을 수 있었다.      


녹과 나 그리고 동생의 기묘한 동거는 우리 셋에게 모두 윈윈이었다. 야근하는 남편은 자주 얼굴을 못 보는 부인에게 미안함을 덜 수 있었고, 혼자 살면서 식사와 청소, 관리비와 생활비를 홀로 담당해야 했을 동생은 그런 부담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마지막으로 나는 내가 가장 사랑하는 두 사람과 동시에 살아갈 수 있는 행운과 남편 말고도 이야기를 나눌 존재가 있다는 것은 엄청나게 큰 힘이 되어주었으니, 내가 가장 큰 혜택을 받은 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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