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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ngelina C Jan 23. 2017

승무원의 반려동물

주인님 기다리다 몸에서 사리 나오겠어




하루종일 누군가를 기다려본 적이 있는가.

나는 예전에 아주 멍청한 연애를 할 시절에 그 사람을 붙잡아 보겠다고 하루종일 집 앞에서 기다린 적이 있었다. 그것도 영하로 내려가는 추운 날씨에.

미쳤지 내가. 지금은 어림도 없는 일이다.





혼자 사는 항공사 승무원들은 대개 고양이를 키운다고 알고 있다. 가족과 함께 사는 경우는 강아지를 키우기도 하지만 혼자 사는 승무원이 강아지를 키우는건 흔치 않은 일이다.

그 흔치 않은 일을 내가 해내고 있다.






나는 부산에서 나고 자라 초중고 대학까지 부산에서 다녔다. 대학 졸업 후에나 타지생활을 조금씩 하기 시작했고 서른이 되기 전에 발령을 받아 서울로 오면서 독립을 했다. 독립하면서 나도 로망을 실현해보고자 나름 간접조명에 침대 침구 하나하나 신경써서 매치하고 꽃병도 놓고 와인도 갖다 놓았다. 이 공간은 오롯이 나만의 것이라고 생각했다.

이 곳에 누군가를 들여 동거(?)를 할거라곤 꿈에도 몰랐다.





강아지를 키우고 싶다는 생각은 가끔 했지만 부모님의 건강상 이유와 용기의 부재로 늘 포기했고 지나가는 강아지 혹은 지인의 강아지를 보고 만지는 것으로 만족했다. 고양이카페를 종종 데이트코스로 가기도 했었고.





근데. 그.런.데.

강아지 분양샵을 어쩌다가 들리게 되었는데 갑자기 이상하게 강아지가 키우고 싶어졌고 이상하게 진지한 고민을 시작했다.

한 달을 고민하고 생각하고 공부했다.

엄마는 지금도 혼자 있을 콩이 걱정에 천벌받을 x이라며 나를 질책하지만 그때까지만 해도 9시출근에 6시퇴근인 DMZ트레인 승무를 할 때여서 괜찮을 거라고 생각했다.

내 마지막 로망. 반려동물을 키우기로 결심한다.




지금은 없어진 꽤 시설좋고 깔끔했던 그 샵을 하루가 멀다하고 드나들면서 내 마음에 쏙 드는 아이를 찾으려고 고르고 또 골랐다. 견종을 바꿔가며 보기도 하고 성별을 바꿔가며 보기도 했다.

한 달을 그렇게 보기만 하던 어느 날,

나는 운명의 상대를 만났다.




그의 눈동자를 본 순간
나는 숨이 멎는 것 같았다




남자이야기였으면 정말 정말 좋겠으나 내 힐링의 존재, 콩이 이야기다.

안아봐야 아이를 제대로 확인할 수 있다며 점원은 확신이 드는 두 아이를 꺼내 나에게 차례로 안겨주었다. 첫번째 암컷이었던 애프리콧 푸들은 내 무릎 위에서 정신없이 꼬물거리고 산만했는데 두번째 안겼던 콩이는 나에게 오자마자 콩같은 눈망울로 나를 올려다봤다. 느낌이 뽝 왔다. 이 아이다.

배냇미용 후 뻗은 4개월 콩이




처음 키우는 강아지에 내 생활패턴은 심하게 요동치기 시작했고 그나 나나 서로 적응하기에 바빴다. 콩이는 내가 집에 들어서자마자 꾸웨엑 울어댔고 난 어르고 달래며 엉망이 된 방을 치우느라 두시간을 허비하곤 했다.




한 번도 아프지도 않고 중성화수술도 거뜬히 이겨내는 이 작은 생물이 신기하기도 하고 그만큼 내가 신경써서 보살핀 덕분이기도 하니 뿌듯하기도 하다. 하지만 콩이를 생각하면 미안한 마음이 제일 크다. 엄마 말대로 난 천벌받을 x인지도 모른다.





아침에 출근해서 저녁에 퇴근하는 그 흔한 스케쥴이었다면 내가 이렇게 고민하지도 않았을거다.

관광열차 순환근무를 시작한 작년 4월부터 용산지사 KTX 근무를 하는 지금까지, 짧으면 하루 9시간 길면 1박2일 즉 24시간, 콩이는 집에서 오매불망 엄마인 나를 기다린다. 정말 못 할 짓이다.

엄마 가디마여 나랑 놀자 가디마 가디마 ㅠㅡㅠ




이 아이의 지루함과 기다림을 달래보고자 거금을 들여 각종 장난감과 일명 코담요라고 하는 스너플매트도 구입했지만 그 때뿐. 내가 집에 있는 동안은 살 붙이고 먹고 자고 하려고 쉴새없이 뽀뽀하고 낑낑거리는 콩이를 보고 있자면 안쓰럽기까지 하다. 나가지말고 자기랑 있어달라고 갖은 애교를 부리고 있는 것 같다.

엄마!! 산책!! 빨리 빨리!!(개신남)





요즘 내 최대의 고민은 어떻게 하면 콩이가 덜 힘들까 그 방법을 찾는 것이다. 어쨌든 책임져야 하는 반려동물이자 내 가족이니 나도 최선을 다 해야한다. 얼마전엔 콩이를 데리고 전주로 1박2일 여행도 다녀왔다. 더 많은 곳을 데려가지 못해 미안할 따름이다.





요즘 일이 너무 힘들어 퇴사를 생각하다가도 콩이 사료값 생각에 어쩔 수 없이라도 회사를 붙들고 있어야겠다는 생각을 하게되니 효자아닌가.

내새끼 콩이, 아프지 말고 앞으로 오래도록 같이 했으면 좋겠다. 나도 최대한 콩이가 좋아할 만한 일들을 찾아서 해줘야겠다.








그런 의미에서

오늘은 퇴근하고 눈밭에서 미친듯이 구르도록 해줘야지.

목욕은 나의 몫.

눈밭을 뛰어다니는 한 마리의 고라니같은 콩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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