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고 힘들어, 아이고 힘들어. 내가 또 미쳤지."
느지막이 일어나 방을 나서니 어머니 앓는 소리가 들렸어. 나는 '오늘도 한바탕 하셨구먼' 하고 뒷베란다로 나갔지. 내가 어머니를 보고 낄낄 웃자 어머니도 아이고 아이고 하며 웃으셨어. 오늘 오후 비 온다는 소식에 새벽부터 화분놀이를 하셨다고.
"저기, 알로카시아 있지. 남근 엄마랑 상기 엄마 주려고 화분 두 개에 분갈이해둔 거야. 비 맞히고 뿌리 잘 내리게 해서 보내야지. 가서도 잘 살라고 두꺼운 화분에 담았다."
알로카시아는 오래전에 선물로 받은 거야. 집에서 많이 아끼던 친구인데 다른 집으로 보낸다니 슬쩍 섭섭한 마음도 들더라. 그래서 '그럼 우리 집 알로카시아는요' 하고 물었지.
"우리 집 거는 앞베란다 큰 화분에 있지. 볼래?"
어머니 따라 앞베란다로 갔어.
"저기 보이지, 파란 화분. 화분 하나에 셋이 같이 있으면 다들 잘 자라기는 힘드니 이렇게 분갈이를 해줘야 돼."
'그러네요' 하고 고개를 끄덕였어. 반려동물도 새끼를 낳으면 다른 집으로 분양 보내곤 하니까 비슷한 일이려나 생각했어. 하여간 나는 꼭 이렇게 괜한 욕심을 부리곤 하더라.
이건 로즈마리, 이건 올리브 나무. 그렇게 어머니 옆에 서서 앞베란다에 터 잡은 식물들의 익숙한 사연들을 줄줄이 듣다가, 어머니 명령으로 나지막한 화분에 담긴 미나리를 안고 다시 뒷베란다로 갔어. 그리고 겨울을 잘 견뎌낸 화분들 사이에 놓아두었지.
"화분들 좀 줄여야지. 이제 진짜 힘들어서 못해."
어머니가 다른 사연이 또 많은 뒷베란다 친구들을 흐뭇하게 둘러보며 말하셨어. 매번 하시는 말씀이니까 나도 그냥 웃었지. 이제 집 앞 언덕길 오르는 것도 힘들다 하시면서 어째 화분놀이 할 때만큼은 천하장사가 되시는지 몰라. 즐거운 일이야.
봄비 기다리는 알로카시아들을 바라보다가 저 친구들 분양 보내고 나면 화분이 부족해지겠다 싶더라. 그래서 '화분 두꺼운 걸로 몇 개 더 사드릴까요' 했더니 어머니가 손사래를 치셨어.
"빈 화분 있으면 또 채우려 든다."
나는 '그러네요' 하고 다시 고개를 끄덕였어. 그러다 출근을 했지.
슬슬 비가 오려나 봐. 건너 집 마당에 벚꽃이 흐드러지게 피었더라. 우리 집 계단에는 빨간 패랭이꽃이 아담하게 피었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