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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자헌 Apr 07. 2024

오래된 유행

  따릉이 타고 이화동 주변을 맴돌았어. 집에서 빈둥리다 빨래 널어두고 다시 누우려는데 문득 영민이 생각이 나더라. '저녁이나 먹자' 카톡남기고 무작정 집을 나 걸었지. 그런데 답문이 없기에 혜화로터리에서 따릉이를 빌렸어. 일단 이화동으로 천천히 가보고 그래도 답이 없으면 경복궁이나 다른 동네로 가보자 생각하면서.

  오늘 날씨가 참 좋더라. 대학로도 적당히 붐볐어. 나들이 나온 사람들 구경하면서 느릿느릿 타다 보니 학림다방 지나 금방 이화사거리였어. 영민이는 바쁜가 싶더라고. 그래도 혹시나 하는 마음에 어디 멀리 가지는 않게 되더라. 

  그거 말했었나. 우리 누나 남자친구한테도 영민이라는 친구가 있대. 그 둘도 학창 시절부터 주욱 붙어 다닌 동네 친구라더라. 그 나랑 비슷하니까 누나가 종종 나한테 영민이 안부를 물어보곤 해. 아마 남자친구한테 '영민이', '영민이' 하는 이야기를 자주 들으니까 그러겠지.

  며칠 전에는 누나가 깔깔 웃으면서 사진 하나를 보여줬는데 누나 남자친구의 앳된 시절 모습이었어. 친구들하고 놀이공원 같은 데서 무리 지어 찍은 사진인데 스무 살 넘어 한창 멋 부리기 시작할 때 같았어. '이게 남자친구고 이게 그 영민 오빠야.'하고 누나가 짚어줬는데 표정에 다들 장난기가 가득이라 웃기더라. 그리고 그 당시 멋 부린 모습들이 요즘 길거리에서 유행한다 싶은 패션이랑 비슷해서 또 웃겼어. 펑퍼짐한 바지에 주렁주렁한 액세서리들, 누나 남자친구는 머리도 누렇게 염색했더라. 패션은 돌고 돈다더니 정말 그렇구나 했어. 그리고 누나도 나도 이제 그 의미를 체감하는 나이가 되었네 었고.

  결국 이화사거리에서부터 크게 한 바퀴를 돌았어. 동대문에 다다라서 그냥 4호선을 타고 누나 학원 근처로 마중을 가볼까 했. 한데 횡단보도에 서서 러보 종로의 오래된 건물들, 그 뒤로 붉게 노을 진 모습이 곱더라. 래서 다시 종로 방향으로 틀어 느릿느릿 전거를 탔. 

  거리에는 어르신들이 많았어. 주홍빛 양복을 멋지게 차려입으신 할아버지도 눈에 들었는데 마침 누군가와 반갑게 인사하고 계시기에 좋았어. 저분들 기억 속에는 이 거리가 한창 번화했던 시절도 있겠지. 요즘 말로 온갖 힙한 카페나 식당들이 많지 않았을까. 새로운 유행을 사람들로 바글바글 했을 거고.

  이제 거리에서 붐비는 데라고는 하나같이 복권 명당이었어. 사람들이 줄을 서 있기에 어딘가 하고 보면 복권집인 거야. 다들 그간의 당첨 이력이 화려하더라고. 복권 명당도 몰려 있다는 게 재밌더라. 거리에 당첨을 좇는 사람들이 많아지니 명당도 많아진 게 아닐까 싶어. 을 사는 것도 유행이라면 유행일까. 별다를 게 없 걸 알면서도 남들 따라 마셔보려 줄을 서는, 새로 생긴 카페의 커피 맛 같은 걸까. 알 수 없네. 그 맛을 제대로 이해하려면 아마 조금 더 세월을 보내야 할 거야.

  슬슬 허기가 느껴지기에 종로5가역 앞에서 따릉이를 반납했. 근처에 오래된 듯한 순두부이 보여 들어갔지. 순두부 종류가 스무 개 가까이 되더라. 최근에는 차돌박이 순두부가 새로 나온 모양이었. 고민하다가 그냥 제일 오래된 메뉴로 보이는 해물순두부를 시켰어. 돌솥밥이 나오는 집이라 좋았어.

  영민이는 저녁 늦게 만났어. 회사에서 급한 일이 생겨 처리하고 왔. 영민이는 이제 대표라는 이름이 익숙해 보이더라. 카페에 앉아 그간 살아온 이야기를 한참 나눴어. 간간이 오래된 농담을 던지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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