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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자헌 Apr 03. 2024

화분

  "아이고 힘들어, 아이고 힘들어. 내가 미쳤지."

  느지막이 일어나 방을 나서니 어머니 앓는 소리가 들렸어. 나는 '오늘도 한바탕 하셨구먼' 하고 뒷베란다로 나갔지. 내가 어머니를 보고 낄낄 웃자 어머니도 아이고 아이고 하며 웃으셨어. 오늘 오후 비 온다는 소식에 새벽부터 화분놀이를 하셨다고.

  "저기, 알로카시아 있지. 남근 엄마랑 상기 엄마 주려고 화분 두 개에 분갈이해둔 거야. 비 맞히고 리 잘 내리게 해서 보내야지. 가서도 잘 살라고 두꺼운 화분에 담았다."

  알로카시아는 오래전에 선물로 받은 거야. 집에서 많이 아끼던 친구인데 다른 집으로 보낸다니 슬쩍 섭섭한 마음도 들더라. 그래서 '그럼 우리 집 알로카시아는요' 하고 물었지.

  "우리 집 거는 베란다 큰 화분에 있지. 볼래?"

  어머니 따라 앞베란다로 갔어.

  "저기 보이지, 파란 화분. 화분 하나에 셋이 같이 있으면 다들 잘 자라기 힘드니 이렇게 분갈이를 해줘야 돼."

  '그네요' 하고 고개를 끄덕였어. 반려동물도 새끼를 낳으면 다른 집으로 분양 보내곤 하니까 비슷한 일이려나 생각했어. 하여간 나는 꼭 이렇게 괜한 욕심을 부리곤 하더라.

  이건 로즈리, 이건 올리브 나무. 그렇게 어머니 옆에 서서 앞베란다에 터 잡은 식물들의 익숙한 사연들을 줄줄이 듣다가, 어머니 명령으로 나지막한 화분에 담긴 미나리를 안고 다시 뒷베란다로 갔어. 그리고 겨울을 잘 견뎌낸 화분들 사이에 놓아두었.

  "화분들 좀 줄여야지. 이제 진짜 힘들어서 못해."

  어머니가 다른 사연 또 많은 뒷베란다 친구들을 흐뭇하게 둘러보며 말하셨어. 매번 하시는 말씀이니까 나도 그냥 웃었지. 이제 집 앞 언덕길 오르는 것도 힘들다 하시면서 어째 화분놀이  때만큼은 천하장사가 되시는지 몰라. 즐거운 일이야.

  봄비 기다리는 알로카시아들을 라보다저 친구들 분양 보내고 나면 화분이 부족해지겠다 싶라. 그래서 '화분 두꺼운 걸로 몇 개 더 사드릴까요' 했더니 어머니가 손사래를 치셨어.

  "빈 화분 있으면 또 채우려 든다."

  나는 '그러네' 하고 시 고개를 끄덕였어. 그러다 출근을 했지.

  슬슬 비가 오려나 봐. 건너 집 마당에 벚꽃이 흐드러지게 피었더라. 우리 집 계단에는 빨간 패랭이꽃이 아담하게 피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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