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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성원 Dec 03. 2020

Give me a chocolate!

성인이 무슨 초콜릿이야!

어렴풋한 기억 속 몇 안 되는 선명한 장면이 있다. 때는 미취학 시절이던 199n년 선거철이었다. 엄마 껌딱지였던 나는 그날도 엄마한테 꼭 매달려 동네의 고깃집으로 향했다. 고깃집의 가장 큰 방으로 들어가니 동네 아줌마들이 모두 모여 있었다. 나야 고기를 먹을 수 있어서 좋았을 뿐 그 자리가 어떤 자리인지는 몰랐다. 그저 뒤늦게 나타난 중년의 아저씨가 “맛있게 드셨냐” 물어 인사만 꾸벅한 것이 전부다. 그 방에 있었던 사람 중에 가장 어렸던 내게 중년의 아저씨는 “엄마 따라왔구나~ 아저씨가 사탕 사줄까?”라고 물었다. 그리고 난 대답했다.

“사탕 말고 초콜릿이요...”


엄마는 만류했지만 아저씨는 그 길로 내 손을 붙들고 슈퍼로 향했다. 그리고 머뭇거리는 내 손에 가지각색의 초콜릿을 쥐어주었다. 크레용 모양과 바둑알 모양, 우산 모양 등 여섯 살의 내가 먹고 싶었던 모든 초콜릿이었다. 엄마는 하루에 한 개 이상 사주지 않는 초콜릿을 봉투 가득 받아 들었다. 물론 그 시절의 난 당연히 투표권도 없었지만 초콜릿을 사준 아저씨는 아마도 가장 손쉽게 유권자 한 명을 포섭했을 것이다. 이 이야기는 2n년이 흐른 지금도 “쟤가 저렇게 초콜릿을 좋아하더라”며 나오는 우리 집 유머다. 이렇듯 처음 본 국회의원 후보 아저씨에게 사탕이 아닌 초콜릿을 사달라고 정확히 말했을 만큼, 난 정말 초콜릿을 사랑한다.


가나초콜릿을 가장 사랑했던 내게 ‘카카오 56% 다크 초콜릿’의 등장은 그야말로 센세이셔널했다. 고등학생 때 반 친구 하나는 조그마한 약통을 들고 와 동글동글한 검정 덩어리를 나눠주었다. 배 아플 때 먹는 한약 같은 생김새였지만 입에 넣는 순간 별천지가 펼쳐지는 맛이었다. 다크 초콜릿을 처음 맛 본 나는 그 길로 매점으로 달려가 드림카카오를 샀다. 초콜릿 하나에 3천 원쯤, 열여덟의 내게는 다소 비싼 값이었지만 문제집을 사고 남는 우수리를 모아 늘 드림카카오를 샀다. 플라스틱 통에서 초콜릿이 춤추며 나는 달그락달그락 영롱한 소리. 이 소리를 들으면 마치 파블로프의 개처럼 자연히 다크 초콜릿 맛을 떠올린다.


사실 이제는 취향이란 것이 생겨 다크 초콜릿을 예전만큼 먹지는 않는다. 하지만 여행이라도 떠날라치면 면세점에서 화장품도 시계도 아닌 초콜릿부터 주워 담는 30대로 살고 있다. 초콜릿 값으로 10만 원씩 쓰면서 말이다. 덧붙여 초콜릿과 치과는 불가분의 관계라서 초콜릿 값과 함께 치과치료비용도 꼬박꼬박 부담해야 한다. 초콜릿을 끊으면 치과도 덜 갈 테지만 도무지 그럴 수 없다. 이 부드럽고 달콤한 초콜릿을 어떻게 끊을까.


하루에 하나만 먹을 수 있다. 어드벤트 초콜릿!

2020년 12월은 선물 받은 ‘어드벤트 초콜릿’으로 하루하루 설레고 있다. 크리스마스까지 하루에 하나씩 초콜릿을 기대하며 포장을 뜯는 설렘. 여섯 살의 나라면 한 번에 다 뜯어먹었겠지만 규칙을 준수한다. 난 성인이니까! 하지만 초콜릿을 뜯을 생각에 빨라지는 퇴근길 걸음까지는 막을 수 없다. 난 초콜릿을 사랑하고, 초콜릿을 사기 위해 돈을 벌고, 제 발로 치과도 갈 수 있는 성인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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