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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호빵씨 Feb 24. 2017

#76터키-곳곳마다 다른 매력이

-파묵칼레

터키라면 이스탄불과 카파도키아지~라며 터키에 도착했을 때 내게 주어진 시간은 보름 남짓이었다. 이제는 여행의 막바지라 어딘가를 열심히 돌아다닐 생각이 없을 때여서 여기서 어딜 더 움직여야 하는가 싶은 마음이 크게 작용하고 있었다. 

그래도 전부터 꿈꿔왔던 카파도키아만 (아주 잠깐) 들렀다 다시 이스탄불로 돌아와야겠다고 다짐하고 있을 때였다. 버스표 알아보러 들렀던 여행사에서 직원이 물었다.  

“터키엔 얼마나 머무르나요?”

2주 정도라고 대답하자 그러면 여기도 여기도 이렇게 많이 갈 수 있는데 왜 겨우 카파도키아만 가느냐며 터키는 구석구석이 다 다른 매력을 가지고 있다고 추천했다. 직원의 추천에 따라 1~2일에 한번씩 도시를 옮겨 가며 터키 일주를 하기에는 이스탄불에서의 게으름이 일상화 돼 불가능하게 느껴졌다. 하지만 '구석구석이 다 다른 매력을 갖고 있다'는 말에 또 귀가 팔랑거린 나는 급기야 여행사에 굴러다니는 한국어 가이드북을 뒤적거리며 갈 곳을 찾기 시작했다. 

처음 가려고 했던 곳에서 딱 한군데 정도만 더 가자, 하며 찾아낸 후보지는 트로이의 목마를 볼 수 있다는 차낙칼레, 바닷가 근처라는 안탈랴 등. 모든 여행지는 다 끌렸지만, 그것이 마지막 한 도시라고 생각하니 쉽게 결정을 내릴 수는 없었다. 

그렇게 책장을 넘기던 나는 눈을 혹하게 하는 사진을 발견했다.  

석회층으로 구성돼 눈이 내린 것처럼 새하얗다는 파묵칼레의 사진이었다.  

푸른하늘과 그 앞에 펼쳐진 목화솜같은 절벽, 그 안에 흐르고 있는 온천수. 사진만으로 포근하고 따뜻해 보였다. 최근에 많이 걷기 시작해 다시 아파오기 시작하는 다리를 온천수에 담그고 좀 쉬어볼까, 하며 카파도키아 다음 목적지는 파묵칼레로 정했다. 



다시 야간버스를 타고, 새벽같이 도착한 파묵칼레는 사진속의 포근함과 따뜻함과는 거리가 조금 있었다. 

여전히 어두운 새벽의 파묵칼레는 쌀쌀하고 흐렸다. 아마도 이 시즌에는 관광객이 많지 않은지 이곳에 도착한 사람은 나 포함 동양인 세명이 전체였다. 너무 이른 시간이었는지 불을 밝힌 곳은 여행사밖에 없었다. 이곳에서 숙소를 얻으려면, 관광을 하려면, 혹은 아침이라도 먹으려면 물어볼 곳은 이곳밖에 없었다.

 

야간버스 안에서 피곤에 쩔어 '말시키지 마세요'의 포스를 뿜어내고 있는 내게, 굉장히 긍정적이고 사교적인 성격을 가지고 있는 듯한 청년이 말을 걸었다. 영어로, 하지만 뚜렷한 한국인의 억양으로. 대학 졸업반이고 취직도 결정돼 출근하기 전 터키에 여행왔다는 이 친구는 역시나 한국인답게 사전정보가 충실했다. 여기선 이 회사 버스를 타는 것이 좋고 이곳에서는 어디로 가면 좋단다. 대단하다, 이 사람을 놓치면 안 되겠다 싶어, 얼굴에 묻어있는 피곤기를 지우고 최대한 사교적인 미소를 지으며 그의 이야기를 경청했다. 

나머지 한 명은 일본인 아가씨였는데 이 친구는 나와 비슷할 정도로 무계획이었다. 이 친구도 어느새 청년의 이야기에 동참해 나와 함께 고개를 끄덕거리며 경청하고 있었다. 

이곳에서 하루 이틀 보내고 이스탄불에 가려던 나는 어느새 청년의 인도에 따라 에페스에 가는 표를 예매했다. 그리고는 뭔가 꼼꼼히 숙소를 따지며 찾고있는 청년을 뒤로 한 채 여행사 아저씨에게 물었다.

-여기 싼 숙소 있어요?

-음, 여기에 있는데요. 하룻밤에 이정도

-오! 좋다 나 거기 갈래요. 

말이 채 끝나지도 않았는데 가격만 듣고 결정해 버리자 '너 정말 재미있구나.'하며 허허 웃었다. 그렇게 아무 생각 없이 아저씨를 따라 숙소로 향했는데 그 뒤에 시간차를 두고 청년도 일본인 친구도 따라왔다. 

이 때도 느낀거지만 나는 야간이동수단을 타고 이동해 피곤에 쩔면 상호구짓을 하고 돌아다니는데 그래도 특별히 사기당하지 않고 꽤 저렴한 숙소에도 들어가는 걸 보면 이 사람들이 보기에도 얘는 등쳐먹고 싶지 않을 만큼 불쌍해 보인다든지, 아니면 세상은 꽤 살만한 곳인지 한 것 같다. 

이날 도착한 셋이 다 같은 숙소에 묵게 된 김에 파묵칼레 관광을 함께 다니기로 했다. 근처 구멍가게에서 점심으로 먹을 빵을 사들고 아침 일찍 석회층으로 향했다.   

석회층은, 역시나 추웠다. 그리고 날이 흐려 사진속에서만큼 하얗게 반짝반짝 빛나지 않았다. 하지만 곧 온천수에 발을 담글 수 있다!

이 공원은 히에라폴리스가 있는 위쪽과 우리가 묵은 마을에서부터 이어지는 아래쪽에 문이 있었다. 아래쪽에는 연못같은 것도 있었고 나름 볼거리가 있는 편인데, 내가 원하는 혼천수에 발을 담그기 위해서는 하얀 석회층 절벽을 타고 올라가야 했다. 뭐, 절벽을 올라가는 것까지는 그리 힘든 길이 아니었다. 

그러나 문제는 이것이었다. 

이곳은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도 지정됐다는데 그렇기 때문에 자연보호를 위해 하얀 절벽부분을 올라갈 때는 맨발로 올라가야 한단다. 위쪽에는 층마다 온천수가 고여있지만 아랫부분에는 온천수 없이 그냥 하얀 석회층이었다. 

너무 이른 시간이어서였을까, 분명 관광지인 것 같긴 한데 사람은 아무도 없었고, 온천수가 흐르지 않는 아랫부분엔 한겨울의 냉기가 올라왔다. 

그도 그럴것이 그때는 이미 12월 중순이었던 것.  

사진상으론 솜 같은 촉감으로 폭신거릴 것 같은 바닥은 당연히 돌이다보니 딱딱했고, 물이 흐르는 곳은 미끌거렸다. 차갑고 딱딱하고 미끄러운 바닥을 맨발로 기어올라 겨우 꼭대기에 올랐다.  

이곳에 올라오자 따뜻한 물이 흘러 살 것 같았다.  

아직 관광객들이 몰릴 시간은 아닌지 한적한 온천에 발을 담그고 놀다 이제 이만하면 볼 건 다봤다 싶어 숙소에 들어가 잠이나 좀 자볼까 하고 있는데 청년이 말했다. 여행준비하며 사진에서 봤는데 이곳에 노을이 질 때쯤이면 물과 석회층에 붉은 빛이 반사돼 그렇게 예쁠 수가 없단다.  

물론 나도 사진을 보긴 봤는데 그 사진상의 석회층은 이렇게 우중충하지 않았음, 이란 생각은 들었지만 또 한편으로 혹한 나머지 둘. 그럼 노을까지 보고 내려갈까?하게 됐다.  

그러나 그때 시간은 오전 열한시 반이었다. 새벽에 도착해 숙소를 잡고 아홉시 조금 넘어 숙소에서 걸어 5분 거리인 이곳에 왔으니 오전을 넘지 않았다. 다시 숙소에 돌아갔다 오자니 입장료를 다시 한 번 내야하는 것이 싫었고 특별히 여기선 볼만한 것도 없다는 정보를 준 청년의 말에 따라 우리는 그냥 해가 질 때까지 이곳에서 놀기로 했다.  

그렇게 결론을 내리고 살짝 배가 고파와 식당을 찾으러 가는데 저 멀리 동양인 청년 하나가 보였다. 그리고 뭔가 우리에게 말을 붙이고 싶지만 수줍어하고 있었다. 이 친구 역시 한국인. 우리보다 더 일찍 이곳에 올라 할 일이 없어 그냥 앉아있었다고 했다. 사람은 점점 늘어나 식당을 찾는데, 이 곳 비싸다.  

밑에 관광객 대상 식당이 보통 로컬식당보다 1.5배 비싸다고 가정한다면 여기는 그 식당의 2~3배 가격. 이런 가격으론 밥을 먹을 수 없다며 분개하여 떨쳐 일어났지만 우리는 해질 때까지 이곳에 있어야 했다. 시간이 지나며 배가 급격히 고파진 나머지 셋에게 점심으로 먹으려 샀던 빵을 내밀었다. 괜찮다면 나눠먹자고. 그리고 뭔가 가방에 먹을게 더 있었던데 싶어 가방을 뒤졌다.  


그런 가방에서 나온 것은 크림치즈 반통, (유리병에 든)복숭아잼, 버터, 버스에서 나눠준 것을 포함한 과자 네봉지, 1리터들이 복숭아주스, 물 한 통, 에크맥 두 덩어리.  

나는 가방 안에서 오병이어의 기적이라도 만들어낼 참이었던 걸까.      

적당히 나눠먹고 이번엔 위쪽을 보러 올라갔다.  

우리가 있는 파묵칼레 안에는 터키 안의 로마시대 유적인 히에라폴리스와, 이 유적의 흔적이 나뒹구는 곳에 온천물이 흘러 관광객들이 로마시대 기둥 옆으로 수영을 한다는 유적 온천이 있었다.   

계절이 계절이니만큼 실외 온천엔 사람이 거의 없었고, 수영복도, 온천을 할 마음도 챙겨오지 않았던 넷은 하릴없이 선베드를 차지하고 누워 근처를 배회하는 직원과 수다를 떨었다.  

선베드에 누워있는 것도 질릴 때쯤이면 히에라폴리스를 구경갔다.  

유적에 대해 잘 모르는 내가 봤을 때도 예전에 유럽여행 갔을 때 이태리에서 봤었던 듯한 유적이 나뒹굴고 있었다. 콜로세움도, 조각들도 그 때 봤던 로마의 유적들과 비슷했다. 그 문화권 아래 있었으니 당연한 건가.   

아무 생각없이, 아무 지식없이 온 터키에서 유적들을 보며 이곳은 옛날에 로마와 기독교의 영향 아래 있기도, 이슬람의 영향아래 있기도, 그리고 한 나라에 아시아와 유럽이 섞여있고, 두 개의 거셌던 문화가 아직도 덜그럭거리며 혼재하고 있는 곳이구나 라는 걸 느꼈다. 아마 여행사 직원이 말했던 구석구석이 다 다른 매력이라는 것은 이런 걸 말하는게 아닐까 싶었다. 각각 다른 문화에 종속되지 않고 그 나름대로의 색깔을 지켜나가는 모습. 

학교다닐 때 오스만 투르크니 하는 것들을 배웠던 것 같은데, 세계사는 배우자마자 포기하는 바람에 한줌에 쥐기에도 모자랄 것 같은 빈약한 세계사 상식이 이날따라 아쉬웠다. 좀 더 알았더라면 더 즐길 수 있었을텐데 말이다.  



그렇게 한나절을 잘 놀고 해가 질 무렵쯤 다시 석회층으로 돌아갔다. 아침엔 없던 사람들이 몰려들어 제법 북적북적했다. 하지만 쨍하니 푸른 하늘과 푸른 빛이 반사하는 석회층을 놓치게 했던 우리의 구름낀 날씨는 역시 노을만이라도 예쁘게 보여줄리 없었다.   

못다한 파묵칼레의 멋진 풍경은 나중에 블로그나 여행책자 같은데서 보면서 만족하기로 하고 다시 발 시려운 석회층을 타내려와 숙소에 도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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