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페스
카파도키아도, 파묵칼레도 구경한 뒤 이제 더이상의 미련은 없다며 이스탄불로 돌아가야겠다고 다짐하던 때였다. 아무도 말리지 못할 것처럼 단호하게 이스탄불을 외쳐댔지만, 사실 그건 그리 굳건한 결의는 아니었던 듯 싶었다. 파묵칼레에서 만났던 사람들을 따라 얼떨결에 에페스에 가게 된 것이다. 함께 가자고 아주 살짝 제안했을 뿐인데 말이다.
연 며칠간의 과도한 이동에 질린 나는 에페스를 가는 버스 내내 이곳의 날씨가 맑다면 무조건 하루를 자고가겠다며 몇 번을 다짐했지만 그건 역시 나도 나 자신을 잘 모르는 결정이었다. 막상 날 맑은 에페스에 도착하자마자 버스정류장에서 이스탄불로 돌아가는 밤버스표를 사고 있었다.
며칠간 나와 함께 있었다면 질리도록 들었을 그 한문장
얼른 이스탄불로 돌아가야 해
를 읊조리며 말이다.
밤에 출발하는 버스표를 사고나니 에페스에서 남은 시간은 한나절 정도였다. 내가 따라왔던 사람들은 그 정도면 에페소의 유적을 구경하는데 충분한 시간이라고 말했다. 별 기대없이 사람들을 따라왔던 터라 아무 계획도 기대도 없었다. 그저 사람들을 따라 유적지로 향했다. 운이 좋아 멋진 걸 구경하면 좋고, 그렇지 않더라도 이제 밤이면 이스탄불로 돌아가니 상관없었다.
아무 생각없이 버스를 타고 유적지로 향하는 왼쪽 옆으로 커다란 한글간판이 보였다. ‘에베소’라고 적힌 한식당.
‘와, 한글이다!’라며 간판을 읽고 나서야 알아챘다. 에페스는 에베소, 그러니까 에베소 교회가 있던, 그 교회에 보내는 편지가 에베소서라고 신약성경의 한 부분을 차지하는 그곳이란 걸.
함께 가는 사람들에게 ‘이거 알았어요? 에페스는 에베소서의 그 에베소였어요.’라고 호들갑을 떨다 스스로의 무지함이 부끄러워 입을 다물었다.
전에 까미노를 걸을 때 만났던 신학생에게 난 이 길을 걷고 그리스(그땐 갈 생각이 있었다)와 이집트, 터키에 간다니 신학생의 첫마디는 ‘혹시, 성지순례하세요?’였다.
별 생각없이 ‘아니요. 그냥 옛날부터 가고 싶었던 데.’라고 했는데 예수피난교회가 있는 올드카이로니 카파도키아며 에페스에 와보니 왜 그런 말을 했는지 알겠다.
박해를 피해 피신한 아기예수가 머물던 교회에서, 로마의 박해를 피해 숨은 기독교인들의 흔적, 예수의 제자 야고보의 전도여행을 따른 순례길에, 에베소까지. 여기에 이집트에서 모세가 십계명을 받았다는 시나이산에 갔다가 근처 예루살렘까지 갔다면 완전 이건 기독교 성지순례 코스였다.
성지순례의 목적은 전혀 없었으나 어쨌든 에페스 유적에 도착했다. 내가 알고있는 에페스 관련 아는 것은 에베소서가 전부이니 그 기억을 되짚어 생각해보면, 에베소서는 사도 바울이 에베소에 있는 교회에 편지를 보낸 것을 엮은 부분이었다. 번화하고 향락에 쩔어있는 도시 에베소에 사도바울이 교회를 세웠고, 그곳에서 2년간 신앙생활을 하다 나중에 옥중에서도 에베소의 사람들에게 편지를 보내 사치와 향락에 빠지지 말고 하나님을 믿고 열심히 신앙생활을 할 것을 권유하는 글이었다.
에베소서를 보면서도 알 수 있들이, 이곳은 옛날옛날 꽤 발전된 도시였다고 한다. 아고라와 도서관, 콜로세움, 학교 등 우리가 들어봤던 웬만한 발전된 시설은 다 갖추고 번성한 도시였으나, 그만 지진으로 도시 전체가 망가져 버렸다고 한다.
도착한 유적지는 옛날의 번성했던 규모를 짐작하듯 시야 끝까지 무너진 돌무더기들이 잔뜩 널려있었다.
원래 이곳까지 올 생각이 없었기에 아무런 정보없는 나와, 나와 별 다를 바 없는 동행은 눈 앞에 가득한 돌무더기들 앞에서 뭘봐야 하나 멘붕에 빠졌다.엄청난 정보를 가지고 우리를 이곳으로 이끌었던 또 한명의 동행은 에페스에서 꼭 들러야할 곳이 있다며 혼자 어디론가 가버렸기 때문이었다. 입장권을 살 때 같이 줬던 팸플릿을 봤지만 거대한 유적을 16절 종이 한 장에 요약해놓은 정보는 부족해도 너무 부족했다.
게다가 이곳은 거대한 도시가 있었던 곳이며, 그 도시가 완전히 무너졌던 곳. 무너진 돌더미들을 기둥 몇 개 복구해놓고 여긴 아고라, 여긴 도서관 하는 식으로 해둔 것. 기둥만 보고 이게 뭔지, 어떤 의미가 있는지 알 리가 없잖은가.
하릴없이 그냥 무너진 돌더미와 그 돌더미를 시멘트로 붙여놓은 곳을 걷고 있는데 피부병 걸려 한쪽 몸통의 털이 완전히 벗겨진 고양이 한 마리가 일정한 간격을 두고 따라왔다. 불쌍한 얼굴을 하고 야옹거리길래 그날도 역시 가득 채워져있는 배낭을 열어 빵을 던져줬다.
그것이,
공포의 시작일 줄은 몰랐다. 사람이 던져주는 빵조각을 받아먹은 고양이는 계속해서 우리를 따라왔다. 불쌍하기도 해서 계속 던져주고 있는데 그게 어느샌가 고양이 무리에 소문이 퍼졌는지 수십마리의 고양이떼가 유적 뒤에 숨어 우리를 따라오고 있었던 것이었다.
고양이는 좋아하지만 떼로 있는 짐승들은 무서워하는 나는 살짝 후회를 하기 시작했다. 그러며 일단 있는 빵을 뜯어 던져주는데 다른 고양이 한 마리가 이 빵을 얻어먹으려 달려들었다. 그러자 아까 슈렉고양이의 눈으로 간절하게 바라보던 그 피부병 걸린 녀석이 하악대며 얘와 싸움을 시작하는 것이었다. 이 동네의 서열상 피부병고양이가 일인자였는지, 나머지 수십마리는 빵 한조각 얻어 먹지 못하면서 계속 우리를 따라다녔다.
왠지 이 빵이 다 떨어지면 이들이 나를 잡아먹는 것은 아닐까, 나는 왜 이들에게 빵을 던져줬던 것일까. 벌벌 떨며, 그렇지만 겉으로는 태연한 척하며 빵조각을 던지는 내 앞에 한무리의 단체관광객이 보였다.
‘됐어. 저기에 자연스럽게 섞이면 돼요.’라며 인파에 숨었는데, 어라 이 단체 관광객들은 한국인 가이드를 따라다니는 한국인 관광객이었다. 고양이 떼의 추격도 피하고 덤으로 유적설명도 들을 수 있었다.
그러나 곧 이들의 관람방향은 우리와 반대였다는 걸 알고 뒤로 물러났지만.
우리가 단체관광객을 뒤로 하고 떠나려는 무렵 누군가의 한마디가 귀에 들어왔다.
어머, 저기 고양이 좀 봐. 귀엽다.
네, 우리도 처음엔 귀여움으로 시작된 관계였더랬죠. 그래도 고양이 덕분에 잠깐의 가이드 귀동냥으로 많은 정보를 얻었다.
예를 들어 이곳은 공중화장실이었다든지, 근처에 지나가다 서있는 비석에 새겨진 문양이 이 근처의 병원을 의미한다든지 하는 것들.
그리고 이 돌에 새겨진 발은 인류 최초의 광고판이라는 것. 이 돌은 홍등가의 광고판으로 이 발보다 큰(=성인 남자) 사람만 받아주겠다는 뜻이라고 한다.
‘흠, 웬만큼 큰 남자가 아니면 못 가겠네’하며 보고 있는데 동행하던 친구(남자)가 이 정도로 작은 발이면 누구나 갈 수 있겠단다.
“아닌데, 커보이는데요? 발 대봐요.”
라고 하자 직접 신발을 벗고 발을 대보는 이 친구. 하지만 역시 작았다. 이 친구 옛날 에페스에 살았더라면 강제로 홍등가 아가씨는 구경도 못했겠군.
그렇게 폐장시간까지 유적을 둘러보다 다시 길을 나섰다.
이제 완전히 겨울인지 해는 금방 져버렸고, 도심이 아닌 이곳엔 가로등이 별로 없었다.
아까 버스타고 올 때 길을 보니 큰길로 나가 직선으로 걷기만 하면 된다며, 별로 멀지 않았다며, 버스기다리기 귀찮아 길을 잃지 않고 걸어갈 수 있다고 주장하는 나를 따라 컴컴한 길을 되짚어 다시 버스터미널에 도착했다.
버스 안에서 하룻밤을 보내면 다시 이스탄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