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스탄불
또 한번의 야간이동을 하고 드디어 이스탄불에 돌아왔다. 돌아왔다고 해도 물론 반겨주는 사람은 없었고, 미니버스로 블루모스크 앞까지 데려다 준다고 했던 버스터미널의 안내와는 달리 버스 아저씨는 거기까지 안 간다며 중간에 트램 돌아다니는데 내려줘 갈아타고 와야했지만 그래도 기분이 좋았다.
이른 새벽, 마치 고향에라도 돌아왔다는 기분으로 트램을 갈아타고 졸린 눈을 비비며 전에 묵었던 호스텔로 향했다.
털레털레 들어서자 리셉션에 있던 청년이 지난번에 묵었던 사람 아니냐며 다시 돌아온 걸 환영한다고 반겨줬다. 이 호스텔은 얼리체크인이 안 돼 배낭만 맡겨두고 다시 나갈 생각이었는데 도미토리에 짐을 넣어주며 들어가서 자란다. 이 곳도 정이 통하는 곳이었군. 그렇다면 터키인의 정을 이용해 이 날 아침 조식도 챙겨먹어야겠다며 잘못된 응용을 하는 나였다. (보통의 호스텔 체크인은 오후부터고, 조식이 제공되는 경우는 다음날 아침부터 적용됨)
도미토리에 올라가 문을 여는데, 잠시 내가 자리를 비운 사이에 이스탄불엔 뭔 일이 있었던 걸까. 가기 전엔 텅텅 비어서 나 포함해서 둘 혹은 셋 밖에 없던 8인 도미토리에 사람이 꽉 차있었다. 다른 곳에 다녀오는 5일 정도동안 이스탄불은 여행 성수기 같은 걸로 접어들은 모양이었다.
뭐가 됐든 졸려서 눈 앞에 아무 것도 보이지 않았던 나는, 이불을 뒤집어 쓰고 있는 사람들 무리 속에서 빈 침대를 하나 찾아내 올라가 누웠다. 그리고 잠시만 누워있어야지 하다 잠을 자고 일어나 조식도 챙겨먹고 느지막히 호스텔을 나왔다.
그 날의 목적지는 탁심광장이 있는 신시가지였다. 터키의 도심은 갈라타다리를 사이에 두고 블루모스크와 아야소피아 성당이 있는 구시가지와 탁심광장이 있는 신시가지로 나뉘었다. 유적과 모스크가 밀집해 있는 구시가지와 쇼핑과 각종 놀 곳들이 즐비한 신시가지는 그 색이 달랐고 방문객들은 각각 자신의 취향에 따라 선호하는 곳이 달랐다.
내 나름대로의 터키관광 계획은 카파도키아에 가기 전에는 구시가지을 보고, 돌아와서는 신시가지에서 계속 놀려는 것이었다. 그러려면 신시가지에도 호스텔을 잡을 수 있었으나, 굳이 또 낯선 곳으로 가고 싶지 않아 구시가지에 위치한 전에 묵었던 구시가지 호스텔에 들어간 것이었다.
어쨌든, 이 날 나는 신시가지를 구경하고 괜찮은 빵집, 혹은 케이크를 파는 카페를 물색해두고 사람들이 극찬했던 돌마바흐체 궁전에도 한 번 가볼까 하는 것이 일정의 전부였다. 신시가지로 넘어가는 갈라타다리 앞까지는 수없이 왔다갔다 했기 때문에 지도 한 번 안 펴고 마치 주민처럼 유유히 걷기 시작했다.
며칠을 그 앞에 왔지만 한 번도 건넌 적 없던 갈라타 다리와, 그 난간에 붙어서 낚시하는 사람들을 지나쳐 다리를 건넜다.
다리를 건너자 길의 느낌이 달라졌다. 구시가지가 관광객들로 북적인다면 여기는 생활하는 사람들이 북적인다는 느낌. 좁은 길에 들어찬 사람들에 휩쓸려 가다보니 나는 언덕으로 오르는 골목길을 걷고 있었다.
악기상같은 곳도, 작은 구제 옷가게 같은 곳도 지나쳐 골목을 뺑뺑 돌아 별로 갈 생각은 없었지만 그래도 여기저기 이스탄불 기념품에 한자리쯤은 차지하고 있는 갈라타타워에 도착했다.
‘탑이라면 올라가봐야지’란 라푼젤적 본능을 가지고 있는 나 지만 입장료가 생각보다 비싸 머뭇거리고 있는데 그 옆에 터키어로 뭐라뭐라 쓴 반도 안되는 가격이 붙어있었다. 직원에게 저건 뭐냐고 물었더니 터키인은 저 가격으로 적용받는다고. 어쩐지 그 부분에서 빈정이 상해버린 나는 갈라타타워 관람을 포기하고 나왔다.
그렇게 걷다보니 신시가지에 도착했나보다. 명동같기도, 람블라스 거리 같기도, 각 국가에서 봤던 도심의 모습같기도 한 도심의 초입.
여기 성당이 있었다.
터키에서 성당이라니, 하는 마음으로 안에 들어갔다.
길거리에 히잡 쓴 아가씨들이 돌아다니는데 그 한귀퉁이엔 성당이 있고, 그 안엔 크리스마스 맞이 구유까지 장식해 놓다니.
확실히 이런 풍경은 터키니까 볼 수 있는 것이란 생각이 들었다.
성당을 나와보니 양 옆으론 카페와 다국적 기업의 매장들이 늘어서있었다. 그 사이로는 트램이 지나쳐갔다. 쇼핑의 목적이 아니라면 굳이 이곳에 올 필요가 없었다는 생각이 스쳐지나갔다. 그냥 구시가지에서 봤던 거나 또 보며 유유자적 돌아다닐걸.
도심을 지나쳐 사람들을 헤치고 걷다보니 탁심광장이라는 곳을 지나쳤다. 탁심광장은 이곳에서 대규모의 반정부시위가 열리는 등 이스탄불 시민에게는 광장 이상의 의미를 가지고 있는 듯 싶었지만, 특별히 그 안에서 무슨 행사를 하고 있지 않는 이상 스쳐가는 여행객에게는 그닥 감흥이 없었다.
그리고 내겐 시간도 아직 많았다.
광장을 스쳐 지나가 천천히 바닷가 근처로 내려왔다. 궁전을 구경하고 돌아가야지 하며 살짝 걷기엔 먼거리다 싶은 궁전까지 걸어갔는데 이곳은 생뚱맞게 목요일이 휴관이란다. 하필이면 이 날은 목요일이었다.
이봐, 세계적으로 박물관, 미술관, 유적 같은 것들은 ‘월’요일에 휴관하는 거라고, 라고 중얼거려봤지만 이곳에서 중얼거림을 그것도 일개 관광객의 중얼거림을 들어줄 리 없었고, 신시가지에 크게 매력을 못느낀 1인은 다시 터덜터덜 걸어와 갈라타다리를 건넜다.
다리를 건너며 이스탄불에 돌아온 기념으로 고등어 케밥을 사먹고, 터키시 커피를 마시고, 시장에 들러 기념품을 좀 고르는 것은 잊지 않았다.
와이파이가 되는 카페에서 커피를 마시며 한동안 늘어져있던 나는 일찌감치 호스텔로 돌아와 긴 낮잠을 잤다.
카파도키아로 떠나기 전 내가 늘 그랬듯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