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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수진 Sep 20. 2018

나를 낡게 만드는 것들

그렇게 살면 평생 낡지 않을 것만 같다

내 안에 파고들지 않는 정보는 앎이 아니며 낡은 나를 넘어뜨리고 다른 나, 타자로서의 나로 변화시키지 않는 만남은 체험이 아니다. - 황현산


200쪽이 넘는 책 한 권을 다 읽는 동안 밑줄 그을만한 문장이 하나도 없을 때, 허무함을 느낀다. 나름 나만의 책 읽는 방법을 터득한 후로는 목차나 첫 번째 챕터 몇 장만 읽어보아도 끝까지 읽어볼 만한 책인지 아닌지 알게 됐다. 여전히 몇 십분 혹은 몇 시간을 투자해놓고 큰 소득이 없어 툴툴거릴 때가 많지만.


책이든 뭐든, 그것이 갖고 있는 실제 정보의 가치나 그것이 만들어지기까지의 역사도 중요하지만, 사실 그것의 본질과 상관없이 받아들이는 사람에 따라 천차만별로 다르게 받아들이기도 한다. 다른 사람들은 영 재미없어하는 영화를 보면서 펑펑 눈물을 흘리고, 정말 괜찮은 사람이라고 소개를 받았는데 막상 만나보니 나는 별 감흥이 없는 것처럼.


나를 감흥시키는 것을 찾아가는 과정 속에는 감흥시키지 못하는 것들에 대한 수많은 실망이 기본 옵션처럼 끼여 있다. 동시에, 나를 감흥시키지 못하는 것을 찾아가는 과정 속에는 흔치않은 반가운 만남이 보너스 옵션처럼 끼여 있다. 다른 사람들이 재미없다고 한 말만 듣고 그 영화를 보지 않았더라면, 꽤 오랫동안 고여있던 눈물을 시원하게 쏟아낼 수 없었을 것이다. 정말 괜찮은 사람이라는 말을 진부한 말로 치부하고 만나지 않았더라면 내가 생각하는 '괜찮고', '안 괜찮고'의 기준을 더 가까이 들여다볼 기회를 놓쳤을 것이다. 기본 옵션과 보너스 옵션을 왔다갔다하며 그렇게 조금씩, 나를 감흥시키는 것과 감흥시키지 못하는 것을 찾아가고 있었던 것이다.


우리는 매일 하루하루 낡아간다. '낡음'은 연약해지거나 쇠하는 것이라기보다는 오히려 더 견고해지고 단단해지는 것 같다. 어제보다 깊어졌을 얼굴의 주름처럼, 내가 가진 습관과 생각은 어제보다 더 무심히 깊어졌을 것이다. 자신의 낡음을 죽을 때까지 그대로 가져갈지 말지는 본인의 선택이기에, 한 가지를 선택하라면 나는 낡음을 깨주는 것을, 사람을, 환경을 찾아나가고 싶다.


나를 이대로 낡게 만드는 것들을 날카롭게 경계하려 한다. 그렇게 살면, 평생 낡지 않을 것만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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