섣부르게 판단하지 말고 정중한 질문을 하자

by 유수진

글쓰기 모임을 시작하기 전에 저 스스로 약속한 것이 하나 있습니다. 판단하지 말자. 어떤 멤버 분이 오시든, 어떤 글을 쓰시든, 얄팍한 유추로 그분을 함부로 판단하지 않겠다는 약속이었죠. 물론 그 약속은 쉽게 깨지기도 했습니다. 규격화된 사회생활에 익숙해진 후로 ‘저 사람은 아마도~’가 머릿속에 수시로 왔다 갔다 했으니까요.


첫 글쓰기 모임의 한 멤버 분 첫인상이 무뚝뚝하셨어요(1차 판단). 남자분이시고 노트북이 아닌 휴대폰으로 글을 쓰시길래 엄청 짧은 글을 쓰실 거라고 예상했죠(2차 판단). 모임 횟수가 거듭될수록 저의 판단이 100% 오판이었음을 깨닫게 됩니다. 그분은 저희 모임에 참여하는 사람들 중 가장 긴 글을 쓰셨어요(오히려 짧게 쓰는 걸 못하시겠다고). 그리고 제 책을 구입해 수많은 페이지의 가장자리를 접어 사진으로 찍어 보내주셨죠. 정말 다정하시지요?


판단과 예상은 한 끗 차이입니다. 솔직히 저도 제가 판단을 한 건지, 예상을 한 건지 헷갈릴 때가 많아요. 그래서 예상도 조심히 해야 합니다. 한 끗 차이로 판단이 될 수 있으니까요. 이렇게 누군가를 판단하는 것은 상대방에게뿐만 아니라 제 자신에게도 별로 좋지 않은 습관입니다. 가장 나쁜 점은, ‘내가 이런 질문을 하면 불쾌해하실 거야’라고 예상할수록 멤버 분과 제 사이에 보이지 않는 벽이 생긴다는 거예요. 함부로 판단하는 것과 질문하는 것을 구분할 줄 몰랐던 거죠. 질문을 해야 해요. 질문을 해야 답을 하고 서로를 알아갈 수 있잖아요.


함부로 판단하지 않는 것을 넘어서는 한 수 위의 예의는, ‘정중한 질문’이라고 생각합니다. 누군가와 의견이 맞지 않아 다툰 적이 있어요. 그 친구는 시간이 지나 굉장히 억울해하며 저에게 ’그래서 그때 너는 어떠냐고 물어봤잖아’라고 했습니다. 본인은 제 의향과 상태가 어떤지 물어봤으니 그걸로 본인의 임무를 다했다고 생각한 것이죠. 그런데 저는 그게 관계와 소통의 의미에서 본인의 임무를 다한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아요. 벽에게도 물어볼 수 있잖아요. 너의 마음은 지금 어떠냐고. 진심으로 상대방의 상태가 궁금하지 않으면서 질문만 한다면 그게 무슨 의미일까요.


글쓰기 모임은 서로 잘 모르는 사람들끼리 오직 ‘글쓰기’라는 공통의 취미로 만나 같이 글을 쓰고 그에 대한 피드백과 생각을 나누는 것이기 때문에 더욱 정중한 질문이 필요합니다. 본인이 쓴 글에 대해 어떤 생각을 갖고 계시는지, 왜 그런 생각을 갖게 되셨는지, 쓰면서 힘들었던 부분은 어떤 부분이셨는지를 많이 여쭤봅니다. 최대한 정중하게. 우리는 그렇게 서로를 판단하지 않고 알아갈 수 있습니다. 그게 제가 생각하는 글쓰기 모임의 룰이자 방향입니다.


그 멤버 분께 휴대폰으로 글을 쓰면 불편하지 않으시냐고 여쭤봤어요. 노트북보다는 휴대폰으로 쓰는 게 더 편하다고, 모임 때문에 노트북을 장만했지만 앞으로 사용할 일은 딱히 없을 것 같다고 하시더군요. 아, 글의 분량과 상관없이 휴대폰으로 글을 쓰는 게 더 편하신 것이었어요. 여쭤보지 않았더라면 몰랐겠지만요.

글까짓거 멤버 분이 보내주신 이토록 다정한 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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