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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동원 Jun 21. 2021

생각대로 생각 말기

어느 겨울 지하철에서

철도를 집어삼키는 겨울바다 같은게 있기도 하잖아


오늘은 바람이 찼다. 요즘은 오락가락하는 날씨 탓에 옷차림을 어떻게 해야 할지 감이  안 잡힌다. 야근을 끝내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이 유독 추웠던 게 오늘의 옷 선택은 실패였는듯하다. 



 용산에서 급행으로 갈아타기 위해 서울역에서 가는  개의 역은 보통 서서 가는 편이다. 어르신분들이 많이 타시기도 하고 서서 가는 게 언제부턴가 편해져서 노래나 들으면서  옆으로 비스듬히 기대어 있는다. 남영역 스크린도어가 닫힐 때쯤 백발이 듬성듬성 있는, 정확히 우리 아빠의 나이대로 보이는 남성이 급하게 지하철에 몸을 욱여넣었다. 낡은 점퍼에 살짝 굽은 어깨, 얼굴에 깊게 둘러진 나이테. 누가 봐도 대한민국 50 남성. 마스크를 쓰지 않은 50대 아빠.


 인상을 썼다. 무례하게도,  몰상식한 남자가 차라리 인상을 찡그린  봐줬으면 하는 좁아터진 속마음불편한 티를 한껏 냈다.



 시국에 마스크도 안 썼으니까 이 정도 눈치는 받아야 하는 것 아닌가? 민폐라는 걸 알고는 있는 건가? 진짜 생각 없는 사람이구나 하는 공격적인 생각들이 따갑게  사람을 찔러댔다. 아마 그분도 느꼈을 것이다. 그렇게 쳐다보는 시선이   눈만이 아니었던 것 같았다. 저런 사람은 대개 뻔뻔할 거야. 인스타에서 봤거든. 저런 사람들은 자기가  잘못하고 있는지도 모를 거야. 혼자서 머릿속으로  남자의 인생을 열심히 재어보던 찰나, 남자는 자신의 낡은 가방을 앞으로 돌리고는 부끄러운 듯, 아니 미안하다는  가방에 얼굴을 파묻고 코와 입을 손으로 가렸다. 지하철에 오르자마자 추운 날씨에 발갛게 상기된 귀와  볼을 어루만지던 따뜻하고 투박한 손은 이내 포승줄처럼 그의 코와 입을 묶었다.


  그건 그가   있는 최대한의 ‘미안함 표시와 사과였고 내가 느낀 건 아주 촘촘하게 직조된 자괴감이었다. 몸 둘 바를 모르겠다는  죄인처럼 고개를 파묻은 남자의 모습.  모습이 나는 왠지 모르게 한참을 아렸다. 누구나 각자의 사정이 있고,  사정을 함부로 판단하는 어른들이 싫었던 시절이 있었는데 어느새 나도 그런 어른이 되고 있었나. 아마  남자는 실수로 마스크를 깜빡했다거나, 오늘같이 바람이 많이 부는 날 마스크를 고쳐 쓰다 날아갔다거나  내가 모르는 어떠한 사정이 있었을 텐데, 나는 뾰족한 생각들로  초만에 그를 몰상식하고 무식한 인간으로 만들어버렸으니 얼마나 부끄러워야 하는 일인지 모르겠다.



팍팍한 일상에 무채색으로는 살지 말자 다짐했던 나는 안녕한지, 언제  이렇게 색을 잃어 마음에 여유가 없어졌는지. 세상을  살아봐야겠다 생각했는데 아직도 나는 한참 멀었고 세상은 이렇게도 어렵다.  일을 글로 짧게나마 남겨두지 않으면 바쁘게 산다는 핑계로  얼마나 많은 무례를 저질러  마음을 스스로 괴롭힐까 하는 염려에 나는 오늘을 기록한다.


  모르는 어떤 삶들에 내 잣대를 대지 말자. 평가하려 들지 말자. 너무 멀지도, 가깝지도 않은 거리에서 그저 바라보고만 있자. 그러다가 어느 정도 온도가 전해지면 그때쯤 손을 들어 인생에 인사를 건네자. 미안함과 자괴감으로 점철되었던 그 남영역과 용산역 사이의 거리를 잊지 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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