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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불에서나온사람 Jul 18. 2022

미술감독과의 인터뷰

[애니메이션 미술 이야기 2]


2022년 7월 14일 (금)
오후 6시
합정 라몽림



(식사를 마치고)



경무: 뭐가 제일 맛있었어요? 저는 바질 들어간 거. 바질을 들이부은 것 같더라고요. 바질 페스토, 막 주먹만 한 통이 만원 훌쩍 넘던데...

세림: 그렇게 비싸요?

경무: 아닌가? 내 기억이 잘 못 됐을 수도 있고.

세희: 와, 아까보다 더 편해졌어요. 하늘이.






세림: 와 너무 좋다.

경무: 내 방 뷰도 이랬으면 좋겠는데!

세희: 열심히 벌어야겠다...

경무: 네... 그럼, 빨리 진행을 해 봅시다.

세림, 세희: 네.






인터뷰어 & 인터뷰이 소개



경무: 안 할 이유 없는 임신(이하 안임신)을 쓰고 연출한 감독입니다. 인터뷰어입니다.


아래 세 분은? 안임신 미술팀 구성원이고, 인터뷰이 입니다.


세희: 미술감독입니다. 원래는 그림책 작가예요.

세림: 미술팀 막내입니다. 배경작화를 주로 맡았어요.

*이슬: 자리는 함께 하지 못했지만, 인터뷰 후반에 거론될 이름으로, 배경 디자이너입니다.


(사전제작 과정 이후, 본 제작에 들어가서는 세 분이 씬을 나눠서 배경 작화를 진행했습니다.)






안임신 미술에 참고한 아티스트가 있나요?




경무: 세희씨가 컬러스크립트를 그릴 때, 벽에, 막, 회화 자료를 붙여놨던 기억이 나요. 그때 내가 알아볼 수 있는 그림은 데이비드 호크니 정도 였는데, 혹시 그때 또 어떤 그림들을 참고했는지 설명해 줄 수 있나요?


세희: 아, 데이비드 호크니 풍경화는 정환이 본가 안동집 컬러를 잡을 때 참고했어요. 오렌지랑 보라의 대비가 할아버지의 광기를 잘 보여준다고 생각했거든요.

세림: 오 정말 그렇네요!



David Hockney / North Yorkshire, 1997 / oil on canvas / 48 x 60 in. (121.9 x 152.4 cm)


안임신 스틸컷 (정환이의 본가)





세림: 그럼, 김삼신 진료실은요?


세희: 진료실은 제가 시나리오를 읽을 때부터 가장 잘 그리고 싶었던 공간이에요. 제가 공포영화 되게 좋아하거든요. 영화 ‘서스페리아’의 붉은색을 쓰고 싶었어요. 벽을 온통 빨갛게 칠하고 나니, 바닥을 보라색으로 좀 눌러줄 필요가 있겠더라고요. 제가 개인적으로 터키쉬 블루도 좋아해서, 포인트 컬러로 넣었죠. 줄 드 발랭크루 그림의 컬러 밸런스를 참고했어요.

세림: 전 콘티만 봤을 때는 병원이 그냥 하얀색일 거라고 생각했어요. 무의식적으로. 그런데 빨간색 배경을 보고선 깜짝 놀랐죠.

경무: 맞아. 무당집 같은 느낌이 나길 원했는데, 저도 그게 빨간색일 거라고는 상상을 못했어요.

세희: 저는 처음부터 레드였어요. 후후..

경무: 놀라긴 했는데, 나쁘지 않았고, 계속 보니까 좋더라고요.



Jules de Balincourt / Valley Pool Party, 2016 / Oil on panel / 24 x 20 in
안임신 스틸컷 (김삼식 박사의 진료실)



경무: 진료실 밖을 나서면, 병원 벽 색이 또 연두색이 잖아요.

세희: 박찬욱 감독 ‘싸이보그지만 괜찮아’ 영화 아세요?

경무: 알죠. 보진 못했지만.

세희: 거기 병원 벽색이 그린이거든요. 그래서 자연스럽게 그린 계열의 벽을 설정했던 것 같아요.

세림: 그럼 동사무소 색깔은 어떻게 핑크가 된 거예요?

세희: 그 경우에는 앤디 딕슨의 그림을 참고했어요.

경무: 장례식 회상 씬도, 저는 세피아톤을 떠올렸었거든요. 세희씨가 주조색을 파란색으로 설정을 해서, 그것도 신선했어요.

세희: 피카소가 친구의 죽음 이후로 파란색으로만 그림을 그렸던 시기가 있잖아요? 청색시대라고. 그래서 저한텐 ‘죽음’ 하면 ‘파란색’이 먼저 떠오르는 것 같아요.




Andy Dixon / Patron's Home (Austin), 2017 / 61" X 50”
안임신 배경 미술 (동사무소 내부)





캐릭터 컬러는 어떻게 잡으셨나요?




세림: 그럼 공간 먼저 설정하신 다음에 캐릭터 컬러를 잡으신건가요?

세희: 그런 셈이죠. 다양한 배경 색에서도 무리 없이 어울리고, 또 눈에 잘 띄는 색으로 설정했어요. 감독님도 일반적인 피부색으로 하기를 원하지 않으셨고요.

경무: 저는 애니메이션 ‘심슨 가족’을 생각했었어요. 우리가 심슨을 보고 공감하거나 눈물짓거나 하진 않잖아요. 주인공을 보고 비웃거나, 풍자에 감탄하는 편이지. 안임신을 보는 사람들도 그렇게 봐줬으면 해요. 그래서 세희씨가 정환이 얼굴을 노란색으로 했을 때 되게 신기했어요.

세희: 아, 정환이 같은 경우는, 뭔가, 방귀를 참는 것 같은 표정이 많았어요.

경무, 세림: 네? 방귀요? 푸하하하하

경무: 아 캐릭터 시트에 그런 표정이 많았던 같아..!

세희: 네. 막 정환이가 진짜 자기 본심을 말 못 하고, 자기가 원하지 않은 상황에 처하면서 끙끙 앓고, 이런 씬들이 많으니까, 저는 방귀가 떠오르더라고요.

세림: 너무 귀여운 생각이에요. 하하하



안임신 스틸컷 (왼쪽부터 순서대로 유진, 정환)



세희: 유진이는 약간 차가우면서도 따뜻한 면이 있는 것 같고. 냉철한 것 같으면서도 여린 면이 있는 것 같아서, 핑크색이 떠올랐던 것 같아요.

세림: 오, 그렇군요. 그러보니 유진의 핑크가 약간 쿨(Cool)한 핑크네요.

세희: 맞아요. 맞아요. 따뜻한 핑크보다는 차가운 핑크. 그게 어울릴 것 같았어요.


경무: 삼신 박사는요? 되게 외계인 같잖아요. 하하

세희: 사실, 진료실을 먼저 설정하고 난 다음에 그 진료실 컬러랑 제일 잘 맞는 걸로 잡았어요.

경무: 그러네요. 그 시뻘건 배경에서 제일 튀는 색이네.

세희: 저희가 삼신 얼굴색으로 좀 고민을 많이 했었잖아요.

경무: 그래요? 전 기억이 안 나요.

세희: 되게 여러 가지 시도를 해봤었는데 연두색이 잘 어울렸던 것 같아요.

세림: 맞아요. 그랬어요.

경무: 나, 모든 걸 잊어버렸어...!

세희: 하하. 그때도 감독님이 관객과 인물 사이에 거리 두기를 원했었어요. 그래서 색을 선정할 때 제일 중점을 뒀던 부분이, 친숙함보다는 어색함을 만들려고 노력을 했던 것 같아요.

경무: 그렇군요. 그러니까 안임신의 컬러는 99%의 치밀한 계산과, 1%의 방귀 유머로 완성된 거군요?

세림, 세희: 하하하하.

경무: 그래요. 잘 알았습니다. 저는 사실, 이런 게 좀 무서운 거예요. 사람들이 영화 다 보고면, “왜 핑크색으로 하신 거예요?” “핑크색이 어떤 걸 상징하나요?” 이런 걸 꼭 물어봐.

세림: 진짜요?

경무: 그럼요. 엄청 많아요. 근데, 그런데서 말 잘 못하면 너무 멋이 없잖아.

세희: 그쵸. 있어 보이게 말해야죠.

경무: 나 지금 벌써 GV에 가 있네. 이렇게 망상만 해서는 안 되는데.

세희: 끌어당기고 있는 겁니다. 상상을 해야 돼요!







수작업과 디지털작업의 차이는?


경무: 세희씨는 그림책 수작업만 했었잖아요. 지금도 기억나요. 면접보러 왔는데, 왕따시만한 판화 작품 들고온거. 근데 어떻게 그렇게 빨리 디지털 작업에 적응했어요?

세희: …성공했다. 잘 속였다..!

세림, 경무: ???

세희: 전혀 능숙하지 않거든요. 프로인 척 성공했어!

세림: 진짜요? 성공했다. 모두를 속였다!

경무: 하하하하. 디지털로 그리는 건 뭐가 다르던가요?

세림: 색을 인공적으로 팍! 세게!! 쓸 수 있는 게 엄청 좋았어요. 왜냐하면 그림책 같은 경우는 출판 과정에서 색이 깎일 수 밖에 없거든요. 근데 애니메이션은 내가 원하는 색을 다 쓸 수 있으니까. 그런 점은 좋은데, 아직 수작업이 좀 더 좋은 것 같아요.

세림: 왜요?

세희: 저는 수작업의 우연성을 가장 중요하게 생각해요. 모노타이프(monotype; 판화 기법) 로 찍어내다보면, 내 의도대로 절대 나오지 않아요. 통제할 수 없어요. 근데 그 맛이 좋아요.

세림: 요즘은 3D 애니메이션도 너무 인공적인 느낌은 배제하는 것 같아요. 오죽하면 ‘2.5D’라고 하겠어요. ‘스파이더맨 뉴 유니버스’도 그렇고.

세희: 그런 게 있어요? 검색해 봐야겠다.

경무: ‘내 몸이 사라졌다’도 2.5D예요.

세희: 오, 네네. 챙겨볼게요.



**안임신은 완전 100퍼센트 2D 애니메이션입니다.






미술팀의 궁합은 어땠나요?



경무: 신이슬 작가가 이 자리에 없어서 아쉽긴 한데, 미술팀 세 분이 어떻게 협업했는지 말해 줄 수 있나요?

세희: 이슬 작가님은 미술팀의 무게 중심이라 생각했어요. 기초 디자인 작업도 미리 다 해놓으셨고, 저는 그냥 컬러만 얹었을 뿐이고요. 제가 오기 전에 먼저 만들어 놓으신 질감이 되게 다양해서, 자연히 풍성해지더라고요. 또, 디테일 장인이시잖아요.

세림: 이슬님은 작화감독이셨어요. 제가 모르고 그냥 넘어갈 뻔 한 것도, 회의 할 때 다 잡아내시더라고요.

경무: 와, 모두가 감독이었네!

세희: 저는 세림씨한테는 작업 스타일을 배웠죠. 일단 전체적으로 빨리 끝내고, 그 다음에 디테일 보완하기. 이게 중요하잖아요. 세림씨가 들어오고나서, 배경 작화 속도가 완전 빨라졌어요. 너무 든든하더라고요.

세림: 세희님이랑은 집 방향이 같아서 퇴근길 메이트였는데, 항상 즐거웠어요.

경무: 그렇군요. 그러니까… 결론적으로 세 분의 궁합은? ^^?

세희, 세림: ... 매..매우 좋았다.^^

경무: 후후후

세희: 근데 정말로, 각자가 딱 필요한 역할을 했던 것 같아요.




가장 기억에 남는 점은?



경무: 거의 마지막인데, 일하면서 가장 기억에 남는 점이 있다면?

세희: 저는 외주 작업을 처음 해봤어요. 그래서 다 이런 줄 알았는데 친구들에게 이야기하면 깜짝 놀라요. 되게 이상적인 작업 환경이더라고요. 나이대 있으신 분들과도 어우러져서 작업하고. 그리고 체계적으로 작업하는 방식도 배웠고요. 그림책도 이렇게 해야겠다.

세림: 저도 원래는 인물 그리기를 좋아하고 배경은 단색으로 치고. 그랬거든요. 그런데 이 일을 하면서는 배경 디테일을 올리고, 여러가지 색을 조합해보면서 많이 배운 것 같아요. 여러 사람들과 회의하고, 의견을 수렴해서 반영하면 확실히 그 결과물이 완전 다르더라고요.

경무: ..성장했군요!

세림: 하하. 그리고 저는 마피아 게임한 것도 너무 좋았어요.

경무: 아하하, 후반에나 그랬잖아요.

세희: 저도 너무 좋았어요. 라이어 게임도 하고.

경무: 사실 저도 그 순간이 가장 즐거웠어요. 근데 그것도 다 여러분이 빨리빨리 배경을 다 그려서, 여유가 있었던 것 같아요.

세희: 저는 제가 항상 느리다고 생각했는데...

세림: 저는 감독님 마음이 여유로워지신 건가?하고 다행이다, 생각했었어요.

경무: 아...그래요? 그런 것 같아. 나 세희씨 처음 왔을 때, 컬러스크립트 내놓으라고 완전 닦달했어요.

세희: 정말, 정말이에요. 원래 한 달 잡았는데, 두달 했거든요.

세림: 또 저는, 우유푸딩이 기억에 남아요.

경무: 엥?

세희: 저두 사실 집에 와서 맨날 자랑했어요. ‘엄마,나 오늘 이거 먹었다~.’ 그러면 엄마가 너 먹으러 거기 다니냐고 놀렸죠.

경무: 아. 먹는 거 중요하죠.

세림: 진짜.

세희: 먹는 거에 진심인 감독을 만나면 이렇게 행복하다.


2021년 연말회식 사진
2021년 연말회식 사진





앞으로의 계획은?



경무: 진짜 마지막 질문. 두 사람의 앞으로의 행보는?

세림: 저는 현재에 집중하는 타입이라.. 일단 지금 참여하고 있는 애니메이션 일을 잘 마무리 하고 싶어요. 내년에는 복학해서 졸업작품도 잘 만들거구요.

경무: 오 세림씨 졸업작품 너무 궁금해요. 파이팅입니다!! 또, 세희씨는?

세희: 저는 지금 만들고 있는 그림책 완성이 목표예요. 힘들기도 하지만, 되게 재미있어요. 이제 내가 어떤 그림을 그리고 싶은지 알게 됐거든요.

경무: 와, 너무 멋있는데?

세희: 이번에 베니스 비엔날레 디렉터가 한 말이 있는데, ‘메시지보다 감각, 상상력, 그리고 환상에 중점을 뒀다.’는 거예요. 어떤 이론, 어떤 개념, 이런 거에 묶이기 보다는 좀 더 그 너머에 있는 감각이나 상상력을 열어주는 본질에 집중하는 게 더 좋은 작업이라는 생각이 들어요.

경무: 맞아. 맞아. 어디 심사받으러 가면, 심사위원들이 맨날 이래요. ‘전달력이 없다.’ ‘이해하기 어렵다.’ 어휴. 뭘 이해를 해! 그냥 보면 되지!!

세희: 맞아. 맞아. 예전에는 그림책을 통해서 어떤 메시지를 전하고 싶은지 고민 했었어요. 이제는 그 자체로 ‘촉각성’이 있는 작업을 하고싶어요.

세림: 와, 찢었다..!

경무: 근데, 사실, 저는... 메시지가 더 중요한 사람이거든요. 안임신 보세요. 거의 프로파간다잖아. 메시지가 강하면 작품이 납작해지고, 촌스러워지는데, 미술이 뻔하지 않다면 그런 점이 좀 보완되지 않을까, 하는 기대가 있어요. 그래서 저는 여러분 같은 사람이 필요해요.

세희: 맞아. 맞아.

경무: 그럼, 오늘 인터뷰는 이쯤에서 마무리 합시다. 혹시라도 제가 또 애니를 만들게 된다면, 그 때 또 함께해 주실 수 있나요?

세희, 세림: 당연하죠!

경무: 흑흑. 감사합니다. 여러분. 조만간 또 만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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