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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불에서나온사람 Sep 09. 2022

음악 감독 섭외는 어떻게 할까

[애니메이션 포스트프로덕션 - 음악(1)]

모름지기 영화감독이라면 미술과 음악에 대한 조예가 아주 깊어야할 것이다. 하지만 나는 (아직) 그렇지가 않다. 그래서 이 제작기의 음악 꼭지에 내가 뭘 쓸 수 있을지 걱정이 깊다. 그렇다고 이제까지 뭘 알고 쓴 것은 아니다. 천둥벌거숭이 감독의 좌충우돌 애니 제작기가 이 글의 취지 아니었던가.




음악감독은 언제 정할까? 시나리오가 마무리 되던 작년 6월, PD님이 음악감독을 누구로 생각하고 있느냐 물어보셨다.


음.. 아무 생각 없는데요.



정말로 아무 생각이 없었다. 글만 써도 머리가 아픈데 음악을 생각할 여력이 없었다. PD님은 예산을 짜려면 음악감독을 미리 정해야하니 후보를 추려보라고 하셨다. 하. 나는 왜 이 나이 먹도록 친한 음악가 한 명 없는 것인가? (없는게 보통이다) 자기 영화에 어울릴 만한 음악 장르를 바로바로 떠올리지 못하는게, 그게 감독인가? (못하는 게 보통이다) 자괴감에 빠졌지만, 금방 털고 일어났다. 난 제작 스케줄을 지켜야 하니까..!




뭘 모르는 사람이 어떤 결정을 해야할 때는 귀납적인 접근이 좋은 것 같다. 우선, 내가 재밌게 본 영화를 추려본다. 그 중에 내 영화와 결이 비슷한 작품을 솎아낸다. 그리고 그 영화를 본다. 본다기 보다, 듣는다고 하는 것이 좋겠다. 그리고 동시에 머릿 속으로는 내 영화를  빠르게 돌려본다. 이 음악이 내 영화의 어떤 씬과 어울릴 것인지 생각하면서.


그렇게 영화를 '들어본' 결과, 낙점된 음악는 드라마 <보건교사 안은영>의 OST였다. 넷플릭스 공개 당시에  6개 에피소드를 한꺼번에 다 몰아보고는 한동안 드라마 주제곡을 흥얼거리고 다녔다. 그 때는 단순히 드라마 팬심에 부르고 다녔던 것인데, 내 영화에 넣으려고보니 김삼신 박사의 메인테마에 딱인 것이 아닌가. 김삼신도 안은영처럼 의료업계에 종사중이고, 업무의 클라이막스에서 '칼'을 쓰니까! 무엇보다 나는 이 드라마 음악의 유머를 잃지 않는 비장함이 좋았다.



삼~신 삼신할미다.
나를 아느냐~ 나는 김삼신~!


<안 할 이유 없는 임신> 스틸컷


<보건교사 안은영>의 음악감독이 누군지는 드라마 방영 당시에도 익히 알고있었다. 영화학교에 다니고서부터는 크레딧을 확인해보는 습관이 생겼기 때문이다. 장영규 음악감독. 당신이 생각하는 그 분, 맞다. <전우치>의 그 분, 밴드 이날치의 그 분. 생각할수록 이 분 말고 대안은 없었다. 전통 민간신앙과 남성임신기술이 공존하는 안임신 세계의 음악을 또 누가 만들 수 있겠는가. 확신은 점점 커져가는데 문제는 따로 있었다.



나같은 쪼렙이 이 분께 어떻게 닿..지?






나: PD님, 혹시 장영규 음악감독과 연결될 만한 줄 있으세요?
PD: ...그 분, 최동훈 감독님 작품 많이 하지 않아요? 최감독님 KAFA 선배잖아.
나: <타짜> 감독님이요? 전 그 분 머리카락도 뵌 적 없는데요.
PD: 학교에 한 번 전화해보는거 어때요?



나: 부장님, 안녕하세요. 혹시 최동훈 감독님 연락처를 알 수 있을까요?
부장님: 무슨 일로?
나: 제가 실은 장영규 음악감독님을 어쩌구 저쩌구 이래서 저래서 이차 저차 쿵짝 쿵짝 덩기덕 쿵더러러러 쿵기덕 쿵더러러러 할 수 있을까 해서요.
부장님: 흐음. 장영규 음악감독이라구?
나: 네. 자앙, 여영, 규우-요.
부장님: 알겠어. 알아보고 연락줄게.
나: 넵..! 부탁드려요!




며칠 지나지 않아 답이 왔다.


최감독님 연락처도 아니고, 장감독님 연락처를 바로? 이렇게 빨리? 자신의 수고에 대한 생색은 일절없이, 이렇게 시크하게 문자 하나만 툭 던진다고? 천애 고아가 갑자기 재벌 친부모를 만나면 이런 느낌일까. 이 학교, 제작비만 주고 영화는 알아서 만들라는 줄 알았는데, 돈보다 더 귀한 걸 제공하는지 미처 몰랐다. 개교 이래 38년동안 차곡차곡 쌓여온 무형의 자산, 영화인 네트워크. 학교에 불평불만만 일삼았던 지난 날을 반성했다.






이제까지 생판 모르는 사람 여럿을 스탭으로 꼬셔왔지만, 이번 건은 규모가 달랐다. 차라리 장영규 감독님 SNS 계정주소를 알았다면 나았을까? 후. 전화부터 덥썩하는 것은 무례해 보일 수도 있으니까, 우선 예고장을 날렸다.




일주일을 기다렸다. 답이 없었다. 이번엔 전화를 걸어보았다. 저녁시간이 무난할 것 같았다. 한 번은 실패했다. 다음날 다시 전화해 보았다. 따르르르르릉. 받았다! 자기소개를 간단히 하고, 자료를 읽어보셨는지 여쭤봤다. 바쁜 일이 있어 읽어보지 못하셨다고 했다. 속으로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일주일간의 무응답이 거절의 뜻은 아닐까 걱정했기 때문이다.


일주일을 기다렸다. 또 답이 없었다. 아, 거절인가? 나는 기획서 내용을 보충하여 다시 전송하고 감독님께 전화를 걸었다. 다시 여쭤보았다. 읽어보셨을까요? 아직 못 읽어보셨다고 했다. 이번에는 안도의 한숨을 쉴 수 없었다. 혹시 이것이 장감독님의 거절방법인 것일까 의심이 됐기 때문이다. 그러나 겉으로는 아무렇지 않은 척, 천천히 읽어보시고 답변달라며 전화를 끊었다.


또 일주일을 기다렸다. 또 답이 없었다. 아, 역시 거절인가? 애초에 오르지 못할 나무를 내가 쳐다본 것인가 싶었다. 이쯤 되면 귀찮게하지 말고 떨어져 나가는 것이 맞는건가? 지금이라도 다른 음악감독을 찾아나서야 하나? 그러나, 어찌됐든 이 지지부진한 매달림의 끝을 보자. 승낙이 됐든 거절이 됐든 확답을 듣자. 다시 감독님께 전화를 걸었다.




나: 감독님 안녕하세요, 노경무입니다.
장감독: 예,예.
나: 혹시 기획서 읽어보셨을까요?
장감독: 예. 할게요.
나: !!!! 정말요? 감사합니다!!! 감독님!!!!
장감독: 제가 바빠서 다른 사람이랑 같이 하려는데, 괜찮나요?
나: 아유, 전 감독님이 발만 담근 물이래도 달게 마실거예요.  괜찮습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감독님!!



음악감독을 찾기 시작한지 딱 두 달만의 일이다.











어떤 사람은 이런 말을 할지도 모르겠습니다.


 뭐야, 그래서 인맥 빨로 섭외했다는거야?



네. 달리 할 말이 없네요. 혹시, <봉준호를 찾아서> 라는 다큐멘터리를 아시나요? 애니메이션을 전공하는 고등학생 세 명이 봉준호 감독을 만나기 위해서 고군분투하는 내용입니다. 이들은 페이스북을 타고, 타고, 타서 홍준표 촬영감독까지는 닿았습니다만, 오랫동안 감감무소식이었죠. 그런데! 이 친구들이 봉감독을 길에서 우연히 만난 겁니다..! 결국 인터뷰까지 따는 데 성공하게 돼요. 극영화도 이런 전개면 작위적이라고 욕을 먹는데 말이죠, 근데 이건 실화입니다. 봉감독은 홍감독으로부터 얘기는 전해 들었고 바빠서 연락을 못하고 있었다 대답합니다. 이 고등학생 친구들의 노고에 밥숟가락을 얹으려는 것은 아니지만, 한 마디만 남길게요.


하늘은 스스로 돕는 자를 돕는다!






다음 꼭지에선 음악에 대해서 더 자세히 썰을 풀어보겠습니다~!

To be continu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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