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년이 넘는 시집살이를 견뎌낸 옥주이모의 이야기.
결혼 후 얼마되지 않아 옥주는 임신을 했다. 딸아이였다. 아들을 바랬던 시어머니는 옥주를 더욱 미워했지만 아이는 너무나 예뻤다. 옥주를 닮아 큰 눈망울과 계란흰자처럼 뽀얀 피부를 가졌다. 천사같은 아이는 잘먹고 잘자고 잘 웃어주었지만 늦게 걷고, 말을 하지 않았다. 연년생으로 둘째를 임신했고 시어머니가 바라던 아들이었다. 유난히 큰 머리통때문에 수차례 죽을고비를 넘기고 품에 안았다. 아들은 아빠를 닮아 코가 길쭉하고 피부가 깜했다. 딸과는 달리 잘 먹지 않고 쉴새없이 보챘다. 하루종일 둘째를 업고 시댁살이를 하느라 첫째를 봐줄 여력이 없었다. 첫째딸은 커다란 곰인형처럼 얌전히 옥주만 보았다. 옥주는 그런 첫째딸에게 마음이 쓰였으나 곁에 두고 살피지 못했다. 또래보다 늦게 걷고 말이 늦어도 언젠간 때가 되면 할거라는 생각으로 불편한 마음을 내려놓았다. 애둘과 시누이 둘, 시어머니와 남편의 뒤치닥거리를 하면서 걱정이나 생각을 할 여력조차없었다. 새벽 여섯시부터 시작되는 일상은 밥, 설겆이, 빨래, 청소의 사이클로 쉬지않고 돌아갔다. 그 안에서 계속 아이 둘을 돌봐야했고 시누이 둘의 떽떽거림과 시어머니의 눈총을 받아냈다. 게다가 술에 취한 남편의 난동이 더해지는 밤이면 옥주의 몸은 깊은 땅굴속으로 가라앉는것만 같았다.
시누이 둘은 속옷한장 자신들 손으로 빨지 않았다. 밥을 차려도 수저, 젓가락 한번 내놓지 않았고 집에선 하루종일 엉덩이만 들었다놨다. 설겆이 통에 손 한번 담구지 않고 자고 일어난 이부자리도 옥주의 손으로 정리됐다. 시누이들은 옥주가 모시는 또 하나의 시어머니였다. 그래도 옥주는 결혼을 후회하지않았다. 결혼 전, 친정에서도 언니오빠들의 설겆이나 빨래 집안일, 동생을 돌보는 일은 오롯이 옥주의 몫이였기 떄문이다. 결혼을 하면 그런 일에서 자유로워질거라는 판타지는 옥주의 머릿속에 애초에 없었다. 불행인지 다행인지 옥주는 자신의 그런 삶에 한번도 이의를 제기해본 적이 없는 사람이었다. '그냥 그러니까 그래야하는 거다'라는 생각으로 자신에게 일어나는 모든 무언가를 문제삼지 않았다. 선택이 없는 옥주의 인생에 갈등이란 건 없었다.
옥주가 인생에서 첫 선택을 하게 된 그 날, 그 일이 일어나기 전까진 말이다.
3화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