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셸 우엘벡 <소립자>의 풍경
문학적 소양을 갖추기란 내게 매우 어려운 것처럼 느껴진다. 하지만 행운은 생각지 않을 때 찾아오기도 하는 법이라, 그 행운의 돌파구를 열어줄 좋은 장소를 알게 되었다. 내게 그 장소는 '피터캣' 북카페였다.
<소립자>라는 소설은 '피터캣'의 사장님을 통해 처음으로 알게 되었다. 그리고 소위 '영업'이라는 것을 당했다. <소립자>에 영업을 당하는 것은 매우 쉽고 자연스럽게 이루어졌다. 사람에 따라 관심분야가 다르게 마련이지만, 난 생물학과 물리학에 어느 정도 관심을 갖고 있었고 <소립자>에는 과학적인 서술들이 전면부에 포진되어 있었다. 출발은 '뉴트리노'처럼 가벼운 마음이었다. 하지만 책의 무게감은 '뉴트리노'보다 00배 무거운 '강입자'라는 것을 인식하게 되었다.
'소립자'의 존재를 인식하기 위해선 거대한 장치가 필요하다. 한 도시를 두르는 수십 Km의 사이클로트론을 이용해 입자를 충돌시켜야 한다. 그 충돌 과정에서 '소립자'들이 튀어나오고, 우리는 충돌의 궤적을 통해 입자들의 존재를 예감한다. 소설 <소립자>를 이해하는 과정 또한 현실의 그것과 별반 다르지 않았다. 미셸과 브뤼노의 이야기를 읽는 내내 내적인 충돌이 일어났다.
소립자의 주인공 중 하나인 미셸 제르진스키는 생물학자이자, 물리학적 배경을 가진 인물로 묘사된다. 그가 가진 과학적 배경지식은 소설의 초반부를 책임지며, 읽는 이로 하여금 몰입감을 선사한다. 작가는 단순히 과학적인 내용들을 의례적, 현학적으로 쓴 것이 아니라 생물학을 깊게 이해하고 있다는 생각조차 들게 만들었다.
현재의 분자 생물학 연구는 창의성이나 상상력 따위를 전혀 요구하지 않는다. 거의 틀에 박힌 일을 기계적으로 행하는 것이라서 굳이 최고급 두뇌를 필요로 하지 않는다. (중략) 그 일에 비하면, DNA를 해독하는 일은 진짜 별 게 아냐. 그냥 해독하고 또 해독해서, 하나의 분자를 밝혀 내고 또 다른 분자로 넘어가는 거야. -p.25
생명의 화학적 토대는 지금 우리가 알고 있는 것과는 전혀 다른 것이 될 수도 있었을 것이다. 생명체의 분자 내에서 탄소와 산소와 질소가 하는 역할을 다른 것들이 맡게 될 수도 있었으리라. -p.53
이러한 과학적 사실에 대한 작가의 폭넓은 통찰은 EPR 역설과 존재론을 결부 짓는 부분에서 정점을 찍는다.
1935년에 아인슈타인과 포돌스키와 로젠이 양자 이론에 대해 반론을 제기한 이래, 처음으로 그것에 대한 완벽한 재반론이 나왔다는 게 학계의 일반적인 견해였다. (중략) 내재적인 속성을 지닌 소립자라는 개념을 포기하면, 우리는 깊디깊은 존재론적 공허 앞에 놓이게 된다. 그렇게 되지 않으려면, 철저한 실증주의를 채택하는 한편, 잠재된 현실이라는 개념을 완전히 포기하고 관찰 가능한 것을 예측하는 수학적 형식주의를 발전시키는 것으로 만족해야 한다. 연구자들의 대부분은 물론 두 번째 가설 쪽으로 결집하였다. -p.170
책 속의 이런 문장들은 문학적 소양이 부족한 나에게도 자극을 주기 충분했다. 하지만 <소립자>의 매력은 이게 전부가 아니었다. 암흑의 핵심은 따로 있었다.
<소립자>는 젊음과 성을 숭배하는 시대를 배경으로 하고 있다. 신은 죽어버렸고, 신을 숭배할지 말지에 대한 선택권조차 없는 세대. 사후세계는 없으며 인간이 불멸을 획득하지 못할지도 모른다는 불확실성은 불안감을 고조시켰고, 기성 종교를 대체할만한 새로운 종교를 찾아 헤매도록 한다.
우리는 젊음을 숭배하고, 사랑을 숭배하고, 자본을 숭배한다. 젊음과 사랑은 아름답지만 가장 쉽게 시들고, 자본은 공고해 보였지만 2007년이 보여주듯 공멸의 위험성을 쉬쉬하고 있다. 남은 희망은 반증 가능성을 가진 합리성의 과학이었다. 통섭적 과학은 다시금 우리를 전일론적 세계로 이끌지도 모른다는 희망 말이다.
하지만 그런 과학조차 세상은 그저 돌아갈 뿐이고, 물리계의 행동을 정확히 예측하는 것은 근본적으로 불가능하다는 코펜하겐 학파의 주장이 승리를 거두었다. 원자는 안정하지 않고, 원자 고유의 상태를 기술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초월적 감각과 우주적 신성함은 다시금 암흑 속으로 사라진다. 이 지점에서 우리는 실존이라는 자취의 방정식을 따라간다.
현대 세계의 온갖 이즘들이 난관에 봉착하고 있다. 과학은 우리에게 개념만 가르칠 뿐이고, 전일적 경험이 아닌 지적이거나 정서적이거나 성적인 경험만 할 뿐이다. 이것을 넘어선 다른 무엇이 존재한다는 의식이 우리를 계속 압박하는 탓에 우리는 불신앙을 결코 편히 받아들일 수 없다. -피터 왓슨, 무신론자의 시대
<소립자>는 다소 재치 있는 에필로그로 마무리된다. 하지만 소설의 결론 자체엔 일종의 모순이 내포되어있다. 생물학자인 미셸 제르진스키는 다양성과 성 선택이 생명을 보존하는 근간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을 것이다. 감수분열과 유성생식은 DNA의 손상을 대차 대조하는 메커니즘인 동시에, 유전적 취약성을 극복하는 중요한 역할을 한다. 후대는 미셸 제르진스키를 통해 낙관적인 전망을 내놓았지만, 역사는 또다시 그들에게 반복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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