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랭이 논에는 어린 모들이 점점 푸른색으로 촘촘해지고 있더라. 노랗게 지천인 꽃들이 개똥풀이라는 K의 말에, 강아지똥풀이라며 아무리 들꽃이라도 성씨를 바꾸면 되느냐고, 개, 씨와 강아지, 씨는 엄연히 다르다는 S의 정정에 함께 웃었단다.
막 여물어진 햇빛을 받으며 감자알이 굵어지는 계절, 먼 길을 마다하지 않았던 것은 좋은 사람들이 거기 있기 때문이었지. 오랜만에 만나도 어제 만난 듯 수다스러워지고 어떤 얘기에도 그저 웃음이 쏟아지는. 행여 말실수를 할까 걱정하지 않아도 되는 그런 사람들... 나이를 먹는다는 건 좋은 사람들이 내 곁에 하나 둘 생기는 것과 같아서 갓 쪄낸 포슬한 감자처럼 뜨끈한 위안이 돼.
그렇게 농담으로 수다로 구불구불 산길을 한참 오르니 작은 건물들이 오밀조밀 자리한 개목사가 있었어. 토마토랑 오이 모종을 심는 중이었다는 스님의 흙투성이 작업복은 오히려 정겹고, 등 뒤로 펼쳐진 방금 전 지나온 시내가 아주 오래전 시간처럼 아득하더라. 과거와 현재, 가까워짐과 멀어짐의 시공간을 찰나에 뛰어넘은 것처럼 말이야.
툭툭 먼지를 털며 맞아주는 초면의 스님은 마치 우리를 기다렸다는 듯 반갑게 다가오는데 금방 내려갈 거라며 일하시라는 지인들 말에 내가 한마디 했단다. 분명히 차도 주실 거라고 얻어먹고 내려가자고.
개목사의 역사를 시조 읊듯 강약중강약약 율 맞춰 말씀해 주시더라. 아들의 눈을 낫게 해 달라 빌던 여인의 정성에 아들은 낫게 되었고 그때부터 흥국사에서 개목사로 이름이 바뀌었다는데 이후로도 기적들이 일어난다고 해. 때때로 어두워지고 마는 내 마음의 눈이 뜨이기를 잠시 기도했단다.
스님의 차방
아니나 다를까 우리에게 차 한잔 대접하겠다며 안으로 안내하는 스님 등뒤에서 맞지, 맑아진 눈빛을 주고받았단다. 손수 내려주시는 커피 향이 오월의 산공기에 스며들고 담장을 사이에 둔 암수 은행나무의 푸른 잎들이 요란하게 빛나더라. 요란한 빛남... 맞아 꼭 소리가 들리는 것만 같은 거야. 어쩌면 저 은행나무들은 시조를 읊는 듯한 스님의 목소리, 산등성이처럼 고요한 커피 향, 석양, 바람으로 인해 조금씩 자란 것은 아니었을까. 그러니 저 은행나무도 성격이 있다면 소탈하고 실없이 웃음 많은 이종 사촌 올케 같지 않을까, 얼마나 샛노랗게 익어갈까, 궁금해졌단다. 낯선 풍경을 만나며 낯섦을 익히고 까탈스러움을 다듬어가는 나처럼 말이야. 사찰을 나오며 처음으로 부처님께 큰절을 올렸단다. 종교는 달라도 마음 설레는 작은 깨달음, 이상하리만치 사찰에만 가면 얻어 마시게 되는 커피와 밥, 계산하지 않아도 되는 여유로움의 값 등등 감사함들의 큰절이었지.
올라갔던 길을 내려오다 보니 올라갈 때 보지 못했던 들꽃들이랑 이팝, 수국, 아카시아, 막 고이기 시작한 열매를 싸 놓은 사과나무들이 초여름을 지나고 있었어.
내려올 때 보이는 것들
보지 못한 것들이 이뿐이겠니? 타인의 마음은 고사이고 내 마음조차도 보지 못하고 살고 있으니 잠깐 한숨이 났지만, 그렇지만 성씨를 바꾸는 작은 실수 끝에 그 꽃의 이름을 아는 일, 기억하는 일, 그렇게 마음이, 눈이 열리는 거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