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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또바기 Jun 25. 2017

두 번째 통조림

상처를 피할 수 없다면 후회하지 않기 위한 선택

난 사실 쿨하지 못하다. 


시원시원하게 답을 잘해서일까, 사람들은 흔히 내가 쿨하다고 생각한다. 어쩌면 내가 쿨해지고 싶어서 노력하는 편일 수도 있겠다. 갈팡질팡하고 고민하느니 그런 시간에 무언갈 하겠다는 주의다. 무리가 없으면 그냥 '네!'하고 대답하고 만다. 슬프거나 서러운 이야길 들어도 내 감정을 들킬 바에 대답을 하고 만다. '네! 괜찮아요!' 사람들은 내 뒤통수에 대고 역시 쿨하다, 성격 좋다고 칭찬을 하지만 개뿔이! 나는 쿨하지 못하다. 그런 날은 꼭 밤에 와서 이불을 뒤집어쓰고 엉엉 울고 만다. 찌질하다,


내가 떠나보낸 사람들의 이야기


세상에 상처를 두 팔 벌려 환영하는 사람은 없을터, 나도 상처받는 건 싫다. 하지만 후회하는 건 더없이 싫다. 짧은 생이지만 살다 보니 몇 번의 이별을 경험했다. 남자 친구와 헤어지기도 했고 사랑하는 가족이 하늘나라로 떠나기도 했다. 이상하게 내가 더없이 좋아하고 사랑했던 상대들은 늘 헤어지면 후련했다. 음 사랑할수록 더 잘 떠날 수 있었다. 상처는 남았지만 그 상처는 거기서 끝나는 상처였다. 그만큼 내가 적당히 다칠 만큼만 하고 끝내면 되는 거였다. 내가 손해보고 있다고 생각해도 내 손을 놔버리면 끝나는 것, 다만 후회는 달랐다. 끝내 내 마음을 붙잡고 미련을 남기고 발목을 잡는 것이기 때문이다. 많이 해본 적도 없지만 후회는 정말 후회였다.

상처 : 피해를 입은 흔적

후회 : 이전의 잘못을 깨치고 뉘우침

음 상처는 흔적이란 결과지만, 후회는 내게 감정노동의 끝나지 않는 과정에 가까운 것이었다.


혼자 하는 건 아니다.


물론 이러한 연유 때문에 누굴 만나든 내 나름의 최선을 다하는 편이다. 그렇다고 눈물의 가치를 안다고, 진심의 가치를 안다고 모두와 잘 지내는 건 아니다. 누군가의 노래 가사처럼 내가 흘린 눈물은 너를 생각하는 마음이고, 네가 흘린 눈물은 나를 생각하는 너의 마음의 크기니까. 둘 다 비슷하다면 그리고 크기에 대한 의심이 사라질만큼 서로 두터운 관계라면 상관없지만- 그게 아니라면 혼자 하는 건 쉽게 상처가 되니까. 이뿐만인가? 표현방법이 다르면 정말 어쩔 수 없고, 나와 함께 살다가도 떠나가기 마련. 그렇게 나는 상처투성이로 늘 애먹으며 끙끙, 내 상처가 세상 최고인양 마음의 근육 키우기를 하고 있을 때- 최근 책을 하나 읽고 무릎을 탁 쳤다.


몇 해 전 키우던 강아지를 잃어버렸습니다. 마당에 그들을 풀어주고 외출을 했습니다. 언제나 외출 전에는 그 애들이 좋아하는 통조림을 하나씩 주곤 했는데 그날 내가 나가려고 하자 강아지 두 마리가 순식간에 그 통조림을 먹어치우고 애타게 나를 바라보았습니다. 평소 나라면 말했을 겁니다. "안 돼! 한 번에 하나씩이야. 이건 규칙이라고." 그러나 그날은 강아지들이 귀엽고 안쓰러워 나가다 말고 돌아와 하나씩을 더 주었습니다. 그날 내가 긴 외출을 한 사이 열린 대문으로 그들이 나갔고 다시는 돌아오지 않았습니다. 그 후로 오래도록 울며 그들을 기다릴 때 내 위안은 겨우 그 두 번째 통조림이었습니다. 그마저 주지 않았더라면 견디기가 너무 힘들었을 겁니다. 그날 이후 삶의 어귀에서 자주 멈칫하며 생각합니다. 언제나 삶에게 두 번째 통조림을 주려고 합니다. 내가 삶을 더 많이 사랑할수록 나는 이 지상을 더 잘 떠날 수 있다는 것을 압니다.


난 며칠 전에도 내 인생에 두 번째 통조림을 줬다. 

앞으로도 몇 번이고 주겠지, 이 모든 게 내가 더 잘 떠날 수 있기 위해서란 씁쓸한 이유지만

상흔은 살아있다는 증거니까.


쿨하지 못해도 괜찮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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