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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또바기 Jul 01. 2017

아카시아 꽃이 지나가고

지금은 봉선화가 필 계절인 걸, 

택시 아저씨가 창을 내리며 말했다, 아카시아꽃이에요 아가씨는 이런 거 모르죠? 서울 아가씨라고 아카시아꽃을 모를까, 초등학교 입학 전 병설유치원을 다녔다. 유치원 뒤로는 아카시아꽃이 많았다. 선생님은 아카시아는 꿀이 맛있다며 먹는 방법을 알려주었고, 나도 아카시아를 들고 쭉쭉 빨며 꿀맛이 난다고 했던 기억이 있다. 그 날은 유난히 아카시아의 하얀 꽃이 밝게 보이던 날이었는데 그래서 내게 오월은 아카시아꽃이 보이던 날이었다. 그런 아카시아가 피어있었다, 으레 알려준 성의를 생각해 네 처음 보네요- 하고 거짓말을 했다. 아저씨는 허허 웃으며 우리 때는 아카시아 꿀도 빨아먹곤 했다고, 하며 어린 시절로 돌아가 이야기를 시작했다. 나는 아저씨의 말을 반쯤 흘려들은 채 창밖으로 지나가는 아카시아를 바라보았다.


언젠가 내 인생이 이렇게 흘러가고 있다고 생각했다. 아카시아가 핀 지도 모르고 지나가는 봄처럼 말이다. 아나운서 준비를 시작했다. 어린 시절 사람들 앞에 나서서 말하는 걸 참 좋아했고, 토론대회 나가서 상을 받기도 할 정도로 언변이 좋았다. 너도나도 나를 볼 때면 아나운서를 해라, 딱이다-라고 했다. 그렇게 나는 나중에 크면 아나운서가 절로 되는 줄 알았다. 운이 좋게 정말 남들이 정해줬던 그 기준에 내가 잘 맞았고 적성에도 잘 맞았다. 대학교도 언론홍보학과로 진학하고 나니, 더 이상 아나운서 준비를 안 할 이유가 없었다. 될 거라고 생각했던 것이라 나는 나를 믿어 의심치 않았다. 그렇게 2년의 시간이 아카시아꽃이 피었는지 졌는지도 모르게 지나갔다. 그동안 나는 경상도 전라도 제주도 할 곳 없이 전국 방방곡곡을 다녔다. 처음엔 지방 방송국의 서류에 합격하기도 어려워 눈물을 흘리며 더 예쁜 사진을 위해 스튜디오를 찾아다니고, 손이 무르도록 같은 자소서를 쓰기도 했다. 그다음엔 그 자리에 합격하기 위해 카메라를 앞에 두고 수도 없이 싸웠다. 뭐가 다른 지도 모르는 아이라인을 다른 사람과 다르게 그리는 방법을 터득하고 있었고, 그게 뭐가 중요할까 싶을 만큼 색조화장품의 차이를 알기 시작했다. 목을 트기 위해 아버지 차에 올라 소리를 벅벅 지르기도 했고, 전달력을 높인답시고 녹음기에 대고 힘껏 목청을 높이기도 했다. 무식하기 짝이 없게 하다 보니 어느 순간 내 목에 피맛이 느껴지기도 했다, 그렇게 연습을 하다 보니 최종 시험에 드나드는 나를 발견했다. 어떤 방법이 어떤 방식이 통했는진 모른다, 여전히 나는 오월이 왔는지 몰랐으니까. 


작년까지 나는 내 자리가 있을까 하는 희망에 떠나는 열차를 탔고, 내 자리는 없었다는 절망에 열차를 탔다. 모두 같은 날 이뤄지기도 했고, 희망과 절망 그 간극이 길기도 했다. 꿈을 갖고 산다는 건 너무 어려운 일이구나, 이러다가 죽겠다 싶을 때 내게도 전파 있는 방송국 아나운서 기회가 주어졌다. 절망의 열차였던 그 자리를 꿈과 희망을 갖고 타기 시작했고, 어느 순간 나의 일주일 일상이 되어버렸다. 그렇게 나는 대구와 서울을 오고 가며 새로운 꿈을 꿨고, 생각보다 빠르게 처음 내가 원하던 처음 시험을 봤던 곳에 와 있었다. 약 2년 전 이곳에 시험을 볼 때 나는 사람들이 내게 날씨를 물어보면 참 좋겠다고 생각했다. 이번 주 내내 장맛비가 언제 오냐는 질문을 들었으니 그 작은 꿈은 그런대로 이뤘다고 생각한다. 아나운서로 1년, 기상캐스터로 1년을 살았다. 그러나 나는 여전히 아카시아꽃이 핀 지도 모르고 7월을 보고 있다.



며칠 전 현재가 딱하다 생각해, 지난날을 돌아보기 위해 써둔 일기장을 무작위로 열어봤다. 그러다가 영화 '와일드'를 봤던 때로 돌아가 보았다. 한때 좋아했던 리즈 위더스푼이 주인공이라 봤던 영화인데, 극 중 이름은 셰릴 스트레이드(작가의 이름이기도 하다)이다. 셰릴 스트레이드는 가난과 폭력, 이혼 등에서 벗어나고자 하지만 엄마의 죽음으로 인해 더 큰 충격을 받고 슬픔과 상처를 극복하기 위해 수 천 킬로미터의 PCT를 걷기로 한다. 2분에 한 번씩 포기하고 싶은 맘이 들기도 하지만 셰릴은 결국 영화 마지막 장면에서 신들의 다리에 도착하고 만다. 아직도 기억나는 건 영화를 다 보고 나서 그녀가 어디에 '도착했느냐'가 아니었다. 영화 중간중간 내 마음을 울렸던 장면은 다른 것이었는데- 한 장면을 꼽으라면 셰릴이 어린 시절 엄마와 '함께했던 장면'이었다. 굉장히 따뜻하고 행복하게 그려졌는데 별 건(?) 아니었다. 단순히 일출과 일몰의 아름다움을 느끼는- 그 따뜻한 햇볕 아래서 하루를 웃으며 보내는 것이었다. 얼마나 장면이 따뜻했는지 내 마음까지 꽉 찼던 기억이 난다.


일출과 일몰은 늘 있는 거란다. 네가 원한다면 언제든지 그 안으로 들어갈 수 있지, 


나는 그런 삶을 살고 싶었다. 일출과 일몰을 매일매일 느끼는 삶, 그게 내 꿈이었다. 그 안에서 자연이 주는 소중함과 가치를 알고, 사랑하는 사람과 삶을 아름답게 낭비하고 싶었다. 그게 내 꿈이었다. 과연 나는 2년 동안 며칠을 그러고 살았을까,



무엇을 선택하든 자책하지 마라, 여기까지 온 것도 다행이다.
지금의 실패 방황을 두려와하지 마. 그 자체가 삶의 자산이다. / 영화 '와일드'


오늘도 작은 손으로 키보드를 두드리고 가끔은 나를 도닥이며 괜찮다고 말한다. 셰릴 스트레이드가 길을 나서며 2분에 한 번씩 포기하고 싶을 때마다 마주치는 쓰레기 같은 현실에도, 결국엔 도달했다는 것이 위로가 되는 하루가 아니다. 그냥 그녀가 2분에 한 번씩 마주치는 현실에서도 일출과 일몰이 있었다는 것, 언제든지 들어갈 수 있는 하루의 소중함이 있다는 것- 감히 내가 잊고 있었던 걸 알았다는 사실이 날 위로하는 하루다.






산수유도 안 핀 것 같은 인생이지만, 일출과 일몰에 집중하다 보면

지금은 봉선화가 필 계절인걸 알게 되겠지. 부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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