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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명수아 Nov 30. 2020

그 시절, 참 쓰기 싫던 일기

-숙제로 했던 일기 쓰기 덕에 지금 글쓰기로 밥 먹고 살지만-

플래너리 오코너는 말하길, 유년 시절을 견뎌 낸 사람이라면 누구나 인생에서 글감을 풍부히 지니고 있다고 했다. 아마도 당신의 유년 시절은 재수 없고 고통스러운 것이었을 수 있겠지만, 그것도 잘 표현하기만 한다면 얼마든지 좋은 소재가 될 수 있다.    -앤 라모트, [쓰기의 감각] 중에서-



초등학교 5학년 때, 담임 선생님은 일기 쓰기를 숙제로 내주셨다. 그게 그렇게 싫었다. '숙제'라는 단어가 주는 무거움도 싫고, 일기에 평가나 채점 같은 게 개입된다는 것도 싫었다. 일기는, 내 일상에 내건 내 마음의 서사다. 거기에 누가 점수를 매길 수 있단 말인지. 일주일치 일기 말미에 '참 잘했어요'라고 찍힌 푸른색 스탬프를 보면서 나는, 선생님이 뭘 잘했다고 하는 건지 가늠하기가 힘들었다. 내 일기에는 엄마, 아빠 말 안 듣고, 만두 한 알 더 먹겠다고 동생이랑 싸우고, 하기 싫은데 남아서 교실 청소는 왜 해야 하냐는 투덜거림이 가감 없이 드러나 있었기 때문이다. 열한 살의 머리라 해야 할 말과 하지 않아도 좋을 말을 명쾌하게 구분 짓지 못한 소치일 것이다.


남의 속도 모르고, 숙제가 된 일기는, 어쨌든 쌓여갔다. '쌓임'을 목적으로 하지 않았는데 저 혼자 쌓여갔다. 수십 년이 지나 더 이상 일기를 숙제로 쓰지 않는 지금이야 나도 '쌓임'의 둔중한 가치를 안다. 그 시절, 나는 어떤 것의 가치를 알지 못한 채 무심히, 한 술 더 떠, 싫어하며 그것을 행위했다. 머지않을 미래에 '후회'는 따 놓은 당상이었다.


끝끝내 일기를 쓰지 않는 아이들이 있었다. 선생님이 정해 준 기한 내에 제출해야 하고, 그리 하지 않을 경우 응분의 대가를 치러야 하는 게 숙제인데도, 그 아이들은 일기를 쓰지 않았다. 그들이 숙제의 의미를 모를 턱은 없었다. 그 아이들은 칠판 앞으로 나와 서서 선생님에게 나무 막대 자로 손바닥을 맞았다. 나무 자가 그 아이들의 손바닥을 내려치고 매 맞는 아이들의 어깨가 뾰족하게 솟구칠 때마다 일기를 쓴 아이들의 어깨도 덩달아 움찔거렸다. 체벌을 온전히 감당하고 제 자리로 돌아가는 아이들을 나는 고개까지 꺾어가며 헤 벌린 입으로 바라보았다. 그들은 내게, 어린 승리자였다. 그들은 손바닥을 맞아가면서까지 내게 몸으로 가르쳐 주었다. 싫으면 안 하는 방법도 있다는 걸. 선생님 말씀 잘 들어야 한다는 걸 머리로는 알아도 마음으로 도저히 수긍 안 되는 게 있을 때는 어린아이에게도 거부할 권리가 있다는 걸. 그 아이들 속에 꼭, 끝단 처리가 레이스로 된 원피스를 즐겨 입던 반장이 끼어 있어서만은 아니었다.


하지만 나는 일기를 계속 쓰는 아이를 고수했다. 하기 싫은 숙제에 대한 거부권을, 그 존재는 깨쳤어도 행사하지는 못했다.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었을 것이다. 수치스럽다기보다는 아플 것 같아 손바닥 맞기도 두려웠고, 뭘 잘했다는 건지는 여전히 선명치 않아도 언제부턴가 '참 잘했어요'에서 묘한 쾌감을 느끼기 시작한 것도 이유였다. 6학년이 되어 나는 더 이상 일기 쓰기를 숙제로 내주지 않는 선생님을 만났지만 일기를 계속 썼다. '참 잘했어요'가 소거된 일기 쓰기는 그만두고 싶어지는 때가 왕왕 있었다. 그럴 때는 내가 '참 잘했어요'를 색연필로 그려 넣었다. 뭘 잘했는지, 알 수 없기는 마찬가지였다. 내가 나한테 뭘 잘했다 하는 게 낯 뜨겁기도 했다. 하지만 이제부터는 아무도 보지 않을 일기였으니 상관없었다. 무슨 말을 해도 괜찮았다. 무슨 말을 해도 괜찮은 일기 쓰기는 꽤 재미있었다. 사춘기가 되면서 남의 앞 길에 소금 뿌리는 악담이나 욕 같은 것도 심심찮게 등장했다. 


5학년 때 숙제로, 참 하기 싫게 시작한 일기 쓰기는 중학교를 지나 고등학교에서 멈췄다. 중학교 때부터 대내외 글쓰기 대회에 멋 모르고 참가했고 늘 작은 상이나마 받았다. 글을 잘 쓴다는 소리는 자주 들었다. 그래서 대학 전공도 글쓰기와 무관하지 않은 것으로 선택되었다. 지금, 나는 글을 써서 밥벌이를 하고 산다. 내게 밥을 먹여주고 있는 '글쓰기'의 시작이자 토대가 초등학교 5학년 때 숙제로, 참 하기 싫게 했던 일기 쓰기였음을 지금에야 깨닫는다. 끝단 처리가 레이스로 된 원피스를 즐겨 입던 반장 아이 따라 절필, 아니 '절 일기'했다면 지금 내가 글 쓰는 사람이 되어 있을지 자신 없다(물론, 그 아이도 어디선가 '의외로' 글을 쓰며 살아가고 있을 수도 있다. 그저 내 경우에 그렇다는 소리다).


-하고 싶지 않아도 해야 될 일이 있는 거야.


어떤 주어진 일이, 특히 '쓰기' 숙제 같은 게 하기 싫다고 내 아이들에게서 몸부림이 나올 때면 나는 이리 말한다. 내 초등학교 5학년 때 일기 쓰기를 떠올리며, 꽤 자신 있는 어조로. 그렇다고 글쓰기가 무조건 좋다고 아이들 등을 떠밀기에는 주저된다. 글쓰기는 몸과 마음과 영혼까지 축나는 노역 중의 노역인 데다, 용케 '성공' 언저리에 간다 해도, 뭔가 편해지기는 커녕 몸과 마음과 영혼을 축내는 강도가 더 높아질 뿐이기에. 글쓰기로 밥 먹고 사는 지금의 나는 글쓰기가 참 버겁다. 도대체가 쓰면 쓸수록 속도는 더뎌지고, 불면은 길어진다. 


엄마로서, 나는 어쩌면 내 아이들이 일기 쓰기에 거부권을 행사하기를 은근히 바라는지도 모르겠다. 

한 손으로는 쓰라고 그 등을 밀고, 또 한 손으로는 적당히 쓰라고 또 그 등을 잡아당긴다. 뭐 어쩌라는 건지.


사십여 년 전, (숙제였던 뭐든) 하루도 빼놓지 않고 1년 365일 일기로 글쓰기를 했던, 열한 살 내게 물어봐야겠다. 






초등 5학년 때 숙제로 썼던 일기가 어쩌면 내 진득하고 욕심 없는 글쓰기의 원동력이었는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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