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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장영진 May 16. 2017

서울을 누가 이렇게 높이 쌓았나

무작정 낮춰야 한다는 건 아니다.

롯데월드 타워, 서울시 송파구 신천동, 롯데그룹


서울시 송파구 신천동에는 자그마치 123층 짜리 랜드마크가 서있다. 지상으로 높이가 555m에 달하는 이 건축물은, 2010년 이래로 6년여의 시간 동안 쌓아올려 만들어졌다. 이 건축물을 짓는 과정은 절대 순탄하지 않았다. 수많은 규제와 제약조건들을 이겨내고 지어졌다. 심지어 공군의 비행루트까지 변경하는 각고의 노력 끝에 완성되었다. 대단한 일이다.




오늘날 서울은 꽤 높은 도시다. 해발고도를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다. 서울에 세워진 인공물, 조형 등을 이야기하는 것이다. 현재 서울은 꽤 높은 고층 건물들로 상당부분 채워져있다. 그리고 이들은 오늘날 서울이 5천만의 우리나라 인구 중 천만 이상이 모여살게 하는 대도시로 만들었다. 밖으로 나가면 미개발지가 남아있음에도, 다수의 인구가 서울 주변에 모여 북적인다. 이 인구를 따라 재화도 서울로 모여왔고, 모인 재화는 좁은 지역에 높이 쌓여왔다.


그런데 서울이 이렇게 높이높이 쌓이는 도시가 된 것은 그리 오래된 일은 아니다. 모두가 주지하다시피 불과 백여년 전만 해도 서울은 높은 도시가 아니었다. 그 당시 아마도 상당히 높은 축에 들었을 경복궁은 높은 곳이라 봐야 아파트 5층 높이가 되지 않는다. 규모가 크다고 하는 다른 건물들도 마찬가지다. 침입을 막는 목적과 상징성 때문에 거대하게 지었을 남대문도 그렇게 높이 쌓여있지 않다. 때문에 지금은 빌딩 숲이 되어버린 남대문 앞에 가면 높이 쌓인 건물들의 위용에 조금 초라해보일 정도로 낮다.


왜 그 이전에는 서울이 그렇게 낮았을까? 기술이 부족해서였을까? 그렇지는 않았을 것 같다. 이미 신라시대에 지어졌다가 현재는 소실된 황룡사지 9층 목탑은 그 높이가 현재 추정되기로 80여 미터에 달한다. 10층 이상의 고층 아파트 높이를 목탑으로 쌓아올릴 수 있는 기술이 현대로부터 조선시대까지의 시간보다 더 오래 전인 삼국시대에 이미 있었다는 말이다. 비록 후대에 조선의 기술이 저평가되는 경향이 있지만, 아무리 그래도 조선의 기술이 신라의 것보다 못했을 것 같지는 않다. 즉, 서울의 성곽이나 건물들이 낮았던 것이 기술의 부족 때문이 아닌, 어떤 의도적인 '디자인'에 의한 것이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서울, 어떻게 디자인할 것인가?


서울이라는 도시의 특색은 무엇일까? 여러 가지가 답이 될 수 있고, 대부분의 그들은 모두가 정답일 것이지만, 개인적으로는 산과 강이 그 답이라고 생각한다. 지구 상엔 한강보다 큰 강도 있고 북한산보다 높은 산도 많지만 서울 같은 대도시에 이렇게 산과 강이 0큰 경우는 드물다. 서울을 도읍으로 정한 것은 풍수지리에 의한 것이었다고 한다. 앞으로 강이 감아 흐르고, 뒤로 산이 받쳐주는 땅. 좁게는 남산과 북악산부터 넓게는 북한산과 청계산, 관악산과 도봉산 등 수많은 산으로 둘러쌓인 도시가 서울이다. 한강이라는 한반도 최대의 강과 그 지류인 청계천이 감아도는 도시이기도 하다.


[심시티 Simcity]라는 게임이 있다. 도시를 계획하고 발전시키는 게임인데, 우리가 그 게임을 하고 있다고 생각해보자. 만약 우리에게 누군가 이렇게 좋은 강과 산이 펼쳐진 지도를 주고 멋진 도시를 디자인해보라고 한다면, 어떤 도시를 디자인하게 될까? 글쎄, 모르긴해도 전문적인 디자이너들이라면 이 강과 산이 숨겨지는 것을 꽤 아까워할 것 같다. 이들은 하나하나가 가치있는 랜드마크 Landmark들이다. 이들이 잘 드러나면서도 곳곳에 조화롭게 인공물들이 섞인다면 근사한 디자인이 되지 않을까 싶다. 디자인이라는 명사 자체는 현대에 생긴 것이지만, 저 먼 조선시대에도 분명히 이러한 생각들을 했을 것이다.


한국화에 담긴 미학이나 공간에 대한 이해, 철학 등을 보아 미루어 짐작해봤을 때 서울이라는 도시를 둘러본 조선 초기의 관료들은 이 도시를 어떻게 가꿔나갈지를 자연물의 배치나 도시의 역할 등을 고려하여 철저하게 계획했을 것이다. 이렇게 북악산과 청계천으로 둘러쌓인 종로 일대를 중심으로 4대문을 만들고 남쪽 한계선을 한강으로, 북쪽 한계선을 북한산 초입으로 하여 한양이라는 계획도시를 건설하였다. 그 뒤로 500여년의 시간동안, 서울은 높아진 적이 없었다.  500년이라는 시간은 그 단어의 길이만큼 짧은 시간이 아니다. 6.25전쟁이 일어난 지도 아직 70년이 되지 않았으며, 우리나라가 일본에 의해 국권을 상실했던 경술국치가 겨우 100년이 살짝 넘었다. 그 5배에 해당하는 시간 동안 서울이라는 도시에 높은 인공물이 세워진 적이 없는 것이다. 조선이라는 나라를 기술적으로 저평가하더라도, 이 긴 기간을 거치면서, 중세를 지나 근대에 접어들면서도 높은 건축물을 지을 능력이 없었다고 보기는 어렵다.


서울에 높은 빌딩들이 들어선 것은 그 10분의 1에 해당하는 시간에 불과한, 약 50여년의 세월이라는 비교적 짧은 시간 동안 이뤄졌다.


1894년의 한양 사진 (위키백과)



서울, 어떻게 발전해 왔는가?



그런데, 과연 서울이 높아지는 과정에서 우리는 어떤 계획과 안배를 가지고 움직였을까? 글쎄, 서울이 막 발전하던 시기는 모두가 정신이 없었다. 우선 일본이 우리 땅을 침범한 36년 동안, 서울이라는 도시에 계획되었던 많은 것들이 붕괴되었다. 그 당시의 일본, 그 중에서도 일본의 '대본영'에게 서울이나 한국이라는 나라는 대륙 진출을 위한 병참기지, 혹은 정화 대상으로 인식되었다. 때문에 어떤 공간은 더 효율적인 군수물자 보급을 위해, 또는 다른 공간은 망국의 말살을 위해 개조되었고 파괴되었다. 당연히 서울이라는 공간이 가지는 어떤 의미나 매력에 관심을 두었을리가 없다. 마찬가지로 개항장이 있던 인천과 부산, 군산 등의 지역들 역시 타의에 의해 개조당했다. 그 당시에 살아계셨던, 모든 역사와 의미를 아는 분들은 이를 안타까워하고 복구하고자 하셨겠지만 물리적인 지배가 계속되면서 점차 정신도 무디어지고, 중요한 것들은 잊혀졌다. 겨우 해방 된 이후 복구에 나서려나 싶었던 그러나 우리 땅은 다시 전쟁의 참화 속에 휩싸였다. 부산까지 피난을 갔다가 회복하는 그 일련의 과정에서 한반도 전역이 전쟁터가 되고, 폭격장이 되었다. 그 후엔 미군정의 신탁통치가 이어지다가 간신히 우리 땅을 되찾았지만 모두가 여유가 없는 상태였다. 당장 살아가는 게 문제인 수많은 사람들이 서울에 모여 땅을 일구고 복구시켰다.


이 과정 속에서 한 가지 안타까운 점이 생겼는데, 우리가 가꿔온, 발전시켜온 것들에 대한 상실, 혹은 불신이 그것이었다. 특히 망국으로서 일본의 침략을 야기하고 이 때문에 우리 국민들을 고생시킨 조선이라는 국가에 그 화살이 많이 돌아갔다. 이는 일제의 강점기 시절에 주입된 교육의 효과도 일정 부분 있다. 망한 나라를 뒤집어 엎은 새로운 지배세력이 가장 일반적으로 하는 것이 망국을 깎아내리고 자신을 높이는 일로, 이는 당연한 것이었다. 그러나 나라가 망할 무렵에 정치적, 사회적 혼란이 있는 것은 당연한 일이고, 지배세력의 부패나 지도자의 오판 또한 자연스러운 것이다. 이들을 비판하더라도 그 전에 가지고 있던 고유의 강점들은 계승하고 더 발전시켜야 할 필요가 있는데, 이를 포용할 여유가 없던 우리는 조선을 부정하고 서구적인, 혹은 일본의 문물을 더 우수한 것으로만 여겨 수용한 측면이 있었다.


이와 같은 배경 속에서, 서울이라는 도시도 외형적으로 외국의 도시들을 따라가려고 많이 노력했다. '한강의 기적'이라고 일컬어지곤 하는 전국민의 경이적인 노력으로, 서울에는 수많은 현대식 마천루들이 들어섰고 깔끔한 외관의 아파트들이 세워졌다. 경쟁적으로 세워지는 아파트들 속에 산은 가려졌고 강은 덮어졌다. 한국식 가옥이나 인공물들은 구태의연한 것으로 배척당하며 축소되었고, 간신히 고궁들이나 성문들만 문화재로 남아 제자리를 지켰다. 난립한 고층 단지들 속에서 서울의 강과 산은, 비록 원체 거대하고 훌륭해서 여전히 그 위용을 과시하고 있기는 하지만 많이 묻히고 만 상태이다.



효율적으로 보이는 것이 비효율적이다.



고층 빌딩들은 높은 효율을 위해서 들어서왔다. 그런데 과연 이들이 효율적일까? 대지면적에 비해 많은 공간을 활용할 수 있으니 얼핏 효율적으로 느껴질지도 모른다. 그러나 투자되는 비용이나 부수적으로 발생하는 사회적 비용을 생각했을 때, 그렇게 매력적이지만도 않은 것이 사실이다. 가장 직접적으로는 이들을 건설하고 사고 파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직접적인 비용들이 있지만, 이들은 따로 이야기할 필요도 없을 것 같다. 그외에 부수적인 손해들을 짚어본다면 크게 아래의 네 가지로 요약된다.


먼저, 이들은 우리의 삶에서 배움의 기회를 빼앗아 간다. 강과 산 대신 빌딩 숲이 보이는 도시 전경은 우리에게서 호연지기를 앗아갔다. 자연과 호흡한다는 것은 생각보다 중요하다. 인간이 5만여년의 유구한 역사 속에서 가장 많은 통찰을 얻어 온 것은 둘도 없이 자연이다. 자연을 관찰하지 못하는 인간의 상상력은 한계가 있으며, 강과 산, 바다에서 숨쉬는 것만큼 큰 꿈을 키워주는 것도 없다. 자연이라는 통찰의 보고를 잃어버리면서 우리 국민이 새로움을 배우는 방법은 학교 교육으로 집중되었고, 이는 획일화라는 부작용을 낳고 있다. 창의력을 키우는 것이 중요하다고 수많은 비용을 할애하면서 정작 가장 쉽게 통찰을 얻을 수 있는 자연과의 접촉을 줄여온 것이다. 직접 만지고, 만들고, 부수는 것을 과거에는 자연을 통해 배우고 실습했는데, 이제는 학습 과정을 통해 공부해야하는 것으로 만들어버렸다.


그리고, 재화의 접근성을 떨어뜨린다. 어떤 땅은 사람들이 몰려 단위면적 내에서 높은 재화를 생산하는 반면, 어떤 땅은 사람들이 없어 재화를 생산하지 못한다. 이것은 자본주의의 자연스러운 현상이기도 하고 땅을 사용하는 사람의 역량에 따라서도 갈라지는 부분이기는 하지만, 강남이나 여의도 등 비정상적으로 많은 사람이 몰리는 구역을 형성하면서 서울 밖의 생태계는 되려 파괴해버린다. 이러한 불균형은 시간이 갈수록 더 심해지는데, 혜택을 누린 사람들이 어느 정도 덕을 본 뒤에 그 땅을 양보하는 것이 아니라 그 땅을 소유하여 독차지하려 하기 때문이다. 높은 빌딩은 그 안에 재화를 가둬두는 독과 같이 작동함으로써 독 주변의 소수의 사람들만 재화를 누릴 수 있게 만든다. 즉, 이들이 통계적으로 서울의 가치를 올릴지 몰라도 실제 수혜자의 수를 보면 오히려 크게 감소시키는 역할을 하고 있다. 이는 크게는 서울 이외 지역의 슬럼Slum화를 야기하며, 작게는 단지 외 지역의 몰락을 이끈다.


독의 크기가 크다면 다수가 혜택을 볼 수 있지만 작아지면 혜택을 볼 수 있는 사람은 줄어든다.


다음으로, 세상에서 손꼽는 개성있는 도시의 상실이다. 서울이라는 도시는, 만약 그 산과 강이 조금만 더 강조된다면 정말 특색있는 도시가 될 것임에 틀림없다. 뉴욕이나 도쿄라도 서울과 같은 거대한 강과 산을 파거나 쌓을 수는 없다. 서울과 같은 거대도시의 한 가운데를 거대한 강이 지나고 수많은 산이 들어서 있는 것은 좀처럼 보기 어렵다. 그야말로 천금을 주고도 살 수 없는 재산인 것이다. 이러한 매력적인 요소들을 빌딩 숲을 조금씩 줄임으로써 더 강조해줄 수 있다면 서울은 그토록 어렵게 만들려고 하는 브랜드를 그대로 얻을 수 있다. 왜 서울이 'I SEOUL U' 인지 설득하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이는 대신 서울의 대도시로서의 위엄과 조화된 압도적인 산과 강을 활용함으로써 서울의 이미지를 각인시킬수 있고, 많은 이들이 찾고자 하는 명소가 될 수 있을 것이다.


마지막으로 상승 일변도 사고의 형성이다. 즉, 높이에 대한 생각이 무조건 높은 것 혹은 큰 것은 우월하다는 생각으로 이어지면서 전국민이 1등이라는 키워드나 특수고, SKY로 대표되는 학벌, 대기업 중심적 문화 등 전반적으로 상승과 경쟁이 과열된 상태가 현재의 우리나라의 모습이다. 이들과 우리가 생활하는 인공물들과는 상관이 없을 것 같지만, 실제로는 큰 상관이 있다. 당장 직접적으로 높음은 위에서 언급한대로 재화를 집중시키는 기능을 하면서 빈부격차를 증폭시키는 부작용을 낳는데, 이는 부촌과 빈촌의 구별을 만들어 심지어 자라나는 아이들에게조차 빈부에 대한 개념과 부에 대한 갈망을 형성한다. 물론 이것만이 직접적으로 상승 일변도적 사고를 형성한다고 볼 수는 없지만, 가장 일차적인 주거환경에서 획일적인 가치를 추구하면서 다양성과 창의성을 이야기하기 어려울 것임은 부정하기 어려운 것도 사실이다.



작은 변화로 가치는 높아진다.



그러나 아쉽게도, 이미 서울은 수많은 사람들의 삶의 터전이며 이를 갑자기 바꾼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며, 설령 그것이 가능하더라도 그렇게 해서는 안 될 일이다. 치아가 덧났다고 해서 무턱대고 빼낸 뒤 다시 박을 수는 없듯이, 옳은 방향을 인식하고 천천히 고쳐나가는 식으로 고쳐나가지 않으면 부작용이 생기기 쉽다.


단지, 서울의 강과 산이 얼마나 소중한 자산인지를 시 정부 차원에서 인지하고, 알리는 것으로 시작하면 된다. 이러한 가치를 알고 알리는 것만으로도 우선 개개인이 사유지를 활용하는 과정에서 한번 더 고민하게 할 수 있으며, 되도록이면 조금이라도 더 서울의 자연자산을 강조하는 방향으로 개선하도록 유도할 수 있다. 자연자산의 이미지를 해칠 정도로 인공적인 빌딩 숲을 세우는 것보다 산과 강이 어울리는 부드러운 건축으로 서울이 채워진다면 서울의 가치를 훨씬 더 높일 수 있을 것임을 알리는 노력이 필요하다.


서울이 조금씩 낮아진다면 그 낮아진 높이만큼의 인적, 물적 자원이 주변 지역으로 퍼지게 된다. 낙수효과나 지방 균등 발전 등은 이로부터 비롯될 수 있다. 실제로 주변에 서울을 떠나고자 하는 욕구를 가진 사람들이 많음에도 떠나는 인구가 많지 않은 것은 이 높은, 서울이라는 일종의 멀티플렉스 Multiflex 안에 많은 편의시설과 복합적 생활 시설이 갖춰져 있기 때문이다. 서울 내부의 높은 빌딩들이 재화의 독으로 작용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서울 자체도 대한민국이라는 시점에서 봤을 때 재화의 독으로 기능하고 있다. 이는 자본주의적인 관점에서 봐도 좋지 않다. 자본주의 이념 속에서 자본의 역할을 흔히 혈액에 비유하곤 하는데, 재화의 독은 자본의 흐름을 막는 존재들로, 우리 몸으로 비유한다면 혈액순환을 막는 종양이나 플라크에 빗댈 수 있다. 이러한 요소들을 줄임으로써 우리 사회의 자본 구조는 더 튼튼해지고 더 많은 사람을 통해 순환될 수 있는 것이다.


또, 우리의 색깔을 만들어 줄 것이다. 단순히 빈 땅을 찾아 최대한 효율적으로 사용할 높은 건물을 올릴게 아니라 그 처한 환경과 생활 양식에 따라 개성있는 건축물을 짓기 시작한다면 더 특색있는 도시를 만들 수 있을 것이다. 현재 건축물들이 어떻게하면 최대한 규제에서 벗어나지 않으면서도 크고 아름다운 단지를 조성할 수 있는지 고민하고 있다면, 앞으로의 건축물들은 주변의 자연환경, 도로 등의 인공환경, 사용 용도, 보여지고자하는 이미지 등을 고려하게 될 수 있다면 지금처럼 개성이 약한 단지촌의 모습이 아닌 우리의 생활 양식에 따른 어떤 특징을 보여줄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그리고 이것이 여러 정부에서 만들려고 애를 썼던 '한국적 브랜드'의 중요한 단서가 될 것이다.



길고 깊은 여유가 행동을 절약한다.



이 글은 단순히 서울의 높이를 낮추자는 이야기만은 아니다. 단지 어떤 기획이나 고민 없이 미개발지를 찾아 똑같은 단지를 복제해 세워놓는 개성없는 작업을 잠시 멈추자는 이야기이다. 이전까지라면 몰라도 이제 우리는 어느 정도 여유를 찾고 있다. 단지를 세우는 일이 집값을 내리거나 실제로 공간이 필요한 사람들에게 공간을 준다면 또 모르겠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않다. 위에도 적었듯이, 집적도가 높아진 땅의 가치는 더 올라갈 수 밖에 없기 때문에 그 땅은 결국 큰 자본을 가진 사람들만 영위할 수 있게 될 뿐이다.


이전까지의 서울이 몰려드는 인구를 수용하기 위해 어쩔수 없이 단지를 선택해왔다면, 이제는 조금 생각하면서 이를 조정하는 편이 좋을 것이라 생각한다. 어차피 저출산 시대가 도래하면서 인구가 줄어든다면 서울도, 서울 외곽도 수요 자체는 줄어들 수 밖에 없다. 단기적인 수익보다 장기적인 계획이 필요할 때이다. 이 땅에 사는 개개인도, 정부도, 건물을 짓는 자본가들도 지금 한번 고민해보는 것이 낭비를 줄일 수 있다.


가치에 대한 정의가 바뀌고 있다. 이전의 가치가 자본적인 가치에 집중되었다면, 이제는 철학적이고 정서적인 가치에 초점을 두는 것이 전 세계적인 움직임이다. 효율적인 단지를 지어 까페와 프랜차이즈를 유치하고 사람들이 복작대며 모여살게 하면 많은 돈을 벌 수도 있고 그 지구의 자본적 가치는 높게 평가될 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 지역을 정말 '가치있다'고 생각할 수 있을까? 우리도 이제 열심히 벌었으니 멋을 좀 부릴 때가 되지 않았을까 한다. 


"이 지역은 이런 유래와 환경을 가지고 있어서 이런 건축물이 지어졌어."


동화 속 이야기가 아니다. 불과 조선시대 때까지만 해도 우리의 삶의 터전에는 이러한 이야기가 넘쳐났고, 아직까지도 다양한 지명에 그 흔적이 남아있다.




프롤로그를 써두고 거의 한 달이 지나 첫 글을 적어보았습니다. 사실 이 전에 이미 여러 편의 글을 적었다가 폐기했습니다. 앞으로의 글의 방향성을 어느 정도 보여줄 글이라고 생각하니, 작성이 참 더디고 어려웠던 것 같습니다. 이 글도 완전히 만족스럽다고는 볼 수 없지만, 우선 시작함으로써 분명해지는 것들이 있다고 믿기에 일단 발행해봅니다. 읽어주시는 모든 분들께 감사하며, 부족한 부분은 지적해주십시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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