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월 2주차_꾸준한 기록이 주는 힘을 충분히 경험하는 요즘
고삐 풀린 망아지마냥 신나게 노느라 늦게 일어나서 간신히 아점을 먹던 주말의 끝에서. 다신 미루지 않으리라 다짐하며 밀린 영어 숙제를 해치우고, 경건한 마음으로 내일 먹을 아침을 준비했다. 배달음식 시켜 먹고 남은 반찬, 하나 남은 동결건조 국 블록, 반쪽 남은 사과, 지난주 냉동시킨 잡곡밥까지.
밀린 과제 끝내고 자느라 두시를 넘겼는데도 연이어 울리는 알람 소리에 반응하고 몸을 일으키니 새벽 다섯 시 반. 피곤하다고 오늘부터 포기하면 내일도 못할 것 같은 조바심이 나를 움직였다. 새벽까지 영어 숙제를 붙잡고 있던 이유도 마찬가지. 무리하면서 나를 혹사시키면 안 되지만, 나와 약속했던 첫 마음을 저버린다면 더는 다음 약속을 잡을 수 없을 것 같았다.
작심삼일이 당연해지고, 계획 세우는 일에만 열심인 나에게. 새해에는 조금 더 나를 믿어보고 싶고, (김신지 작가님의 책 <평일도 인생이니까> 아니면 <좋아하는 걸 좋아하는 게 취미>에서 보았던 문장처럼) 나도 "단단하게 버텨낸 한 발의 힘을 빌어 다음 발을 내딛고 싶다."(22.01.10)
지난 일요일 밤 벼락치기의 여파가 꽤 오래가는지 어제 점심에는 기절하듯 낮잠을 자고, 저녁에는 10시쯤 스르르 잠들고 말았다. 그렇다고 일찍 일어나지도 못했다. 간신히 일어나 냉장고에 뭐가 있나 보았다. 계란 두 알, 채 썰어둔 양배추, 오징어젓갈, 동치미.
손쉬운 간장계란밥을 호다닥 만들고, 반찬들을 꺼내놓으니 꽤나 든든한 아침밥상이 차려졌다. 실패할 리 없는 간장계란밥 한 술에 행복의 입꼬리가 올라갔다. 그 순간도 잠시, 호다닥 밥그릇을 비워내고, 출근 준비로 또다시 호다닥.
요즘 아침밥은 잘 차려먹는 반면, 저녁밥은 부실하게 또는 불량(?)하게 먹고 있다. 점점 불어나는 체중의 압박을 셔츠와 코트 단추들이 간신히 버텨내고 있는데. 당장 운동이 어렵다면 단식은 못해도 조금은 가볍게 먹고, 조금이라도 몸을 움직여 보기로.(22.01.11)
오늘은 벌써 수요일. 지난주와 별반 다를 것 없이 영어 숙제를 미루고, 운동 안 하고, 먹는 것도 줄이지 못하는 건 여전하지만. 그날 먹은 것들은 그날 설거지하고, 아침 차리는 속도가 조금 빨라지고, 지난 벼락치기 덕분인지 영어 숙제에 대한 부담도 조금 덜어냈다.
어제는 엄마의 생신이었고, 본가에 들러 축하해드리고 돌아오는 길에 고추장아찌를 조금 얻어왔다. 부모님이 잘 안 드시는 스팸과 고추참치 통조림도 한 개씩 챙겼다. 냉동밥이 다 떨어져서 자기 전에 흑미밥을 안쳤다.
계획은 잔뜩 세워놓고, 정작 행동으로 옮기는 건 늘 거기서 거기이지만. 지난주와 달리 이번 주에는 조금이나마 나아지고 있고, 아직도 꾸준히 아침밥을 챙겨 먹고 있다는 사실이 주는 보람과 든든함으로 으쌰으쌰 힘내 보는 오늘 아침.(22.01.12)
점점 늘어나는 체중과 죄여 오는 셔츠의 압박에 맞서, 일주일에 이틀 정도는 조금이라도 가벼운 식사를 해보려고 오트밀을 주문했다. 전날 밤 아몬드브리즈에 오트밀을 재워두고, 아침에는 그 위에 냉동 블루베리를 가득 넣었다. 처음이라 양을 가늠할 수 없어 시리얼 먹는 정도로 준비했는데 생각보다 양이 꽤나 많았고 배도 불렀다.
지난 연말에는 예년과 달리 새해에 하고 싶은 것들을 호기롭게 술술 썼고, 3X3 새해 빙고도 만들었다. 빙고 한 줄 지우려면 일분일초도 허투루 쓸 수가 없는데 먼 산 보듯 한없이 게을러지는 청개구리 심보가 되고 말았다. 해가 바뀌면 나도 새롭게 짠하고 달라질지도 모른다는 뜬구름에 또 올라탄 셈이다. 해마다 쳇바퀴 굴러가듯 비슷한 모양새로.
그렇게 나는 또 한 번 일월이라는 시험대에 서 있다. 보름 가까이 아침밥의 시간을 지켜내고 있고, 느릿느릿 나의 속도로 미루거나 아직 손대지 못한 채 곳곳에 널린 것들을 주섬주섬 걷고 있다. 다시금 자세를 가다듬고 반듯하게 개어 제자리에 놓아두는 순간을 수없이 반복해야 한다. 일월이 지나고 나면, 손놀림이 조금은 부드러워지고, 나만의 적당한 속도를 찾을 수 있기를 바라며.(22.01.13)
칼퇴하고 곧장 집으로 와서 한껏 여유 부리던 어젯밤. 오랜만에 요리해 먹고 남은 비엔나 소시지, 파프리카로 내일 아침에 어떻게 먹을까 고민하다 떠오른 쏘야볶음. 이제는 자기 전에 다음날 아침밥 고민하는 게 당연한 일상이 되었어도.
역시나 제시간에 아슬아슬하게 일어나는 건 일 년이 지나도 적응되지 않는다. 그저 무시로 울리는 밀린 알람들을 하나씩 끄는 일만 익숙해졌다. 허나 아무리 시간 없어도 아침 먹는 건 포기할 수 없지. 번갯불에 콩 구워 먹듯 아침밥상 차리는 속도만 빨라진다. 그렇게 탄생한 쏘야볶음이 나쁘지 않아 다행이고.
벌써 절반을 넘긴 아침리추얼은 반환점을 돌고. 피드에 차곡차곡 쌓인 아침밥 게시물이 주는 뿌듯함과 더불어 아직 미뤄둔 계획을 돌아볼 수 있는 여유가 조금 생겼다. 꾸준한 기록이 주는 힘을 충분히 경험하는 요즘, 혼자가 아닌 함께하는 동지들이 밤늦게까지 애쓰며 기록하는 열심과 랜선 너머 곳곳에서 공감해주는 따뜻한 마음들이 더없이 소중해 새삼 감사한 아침 출근길.(22.01.14)
아직도
꾸준히 아침밥을 챙겨 먹고
있다는 사실이 주는
보람과 든든함으로
으쌰으쌰 힘내 보는
오늘 아침
글, 사진 / 나무늘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