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월 1주차_차곡차곡 쌓인 아침밥의 기록이 건네는 말들
연말이라고 신이 나서 마신 술로 인해 골골대던 주말이었다. 본가에 들러 떡국 한 그릇으로 해장하고, 어머니가 싸주신 떡국떡으로 지난밤 한소끔 끓여 놓은 셀프 떡국. 아침에 계란을 풀어 한 그릇 뚝딱하니 오늘 하루의 에너지를 완충한 기분으로 시작하는 새해 첫 출근의 아침이 되었다. 이 마음으로 일월의 순간들을 모으기로.(22.01.03)
고작 새해 첫 주인데, 퇴근하고 마음이 한없이 움츠러들어 아무것도 하지 않은 채 눕고 말았다. 작심삼일도 못 채우고 순식간에 무기력해지는 내가 싫어 무거운 몸을 일으켰다. 내일 아침을 먹기 위해 저녁을 먹기로 마음먹는 요상한 이유로.
냉장고를 열었다. 유통기한이 남았지만 오래전에 사놓은 크림 파스타 소스, 아직 남은 떡국떡을 넣고 정체불명의 요리를 만들었다. 지난밤 한 그릇을 깨끗이 비워 내니 힘이 조금 났지만 긴장이 풀어졌는지 스르르 잠들고 말았다.
오늘 아침, 조금 심심한 것 같아 생각 없이 치킨스톡 한 조각을 투척했다. 이렇게나 짤 줄이야. 한 달치 염분을 먹는 기분에 숟가락을 내려놓고, 동치미 국물만 한 사발 들이켜고 출근하는 아침, 오늘은 어제 밀린 계획들도 차근차근 해나가기로 다짐하고 다시 한번 힘을 내보기로.(22.01.04)
다시 부쩍 추워진 이런 날에는 왜인지 어릴 적 엄마가 끓여주시던 오뚜기 스프가 생각난다. 퇴근하고 집 앞 마트에서 오뚜기 스프를 종류별로 하나씩 집어 드니 부자가 된 기분.
크림스프를 고르고, 흰쌀에 잡곡을 섞어 만든 밥을 짓고, 후식으로 귤과 우유를 꺼내 놓으니 그럴싸한 아침 밥상에 뿌듯한 아침이 되었다. 이게 뭐라고, 새해라 갑작스러운 변화를 기대했던 내게 조금 실망하고 또 조금은 지쳤던 마음을 토닥인다.
따뜻한 스프에 밥을 말아서 후루룩 먹고 나서는 바깥은 영하 9도인데도 그리 춥지 않아 가슴 활짝 펴고 걸어보는 작심삼일의 마지막 날.(22.01.05)
지난밤 풀어둔 계란물에 치즈 한 장을 넣어 계란말이를 만들고, 해동시켜둔 냉동 잡곡밥을 전자레인지에 돌리고, 동결건조 국블럭을 뜨거운 물에 풀고, 엄마의 김치를 꺼내면 오늘의 아침밥 준비 완료.
오늘 생각보다 늦게 일어났지만, 아침밥을 포기할 순 없지. 3년 차 서당개가 풍월을 읊는 동안 3일 만에 아침밥을 뚝딱 차리는 내가 대견하고, 냉장고에 한가득이던 엄마의 김치가 줄어들 기미가 드디어 보인다.
어제는 이틀간 미루던 영어 숙제 중 하루치만 간신히 끝냈고, 운동은 아직 시작도 못했다. 아침밥 먹는 일만 간신히 해내는 것 같지만, 조급해하지 말고 차근차근 한 걸음씩 발을 내딛기로.(22.01.06)
냉장고에서 쿨쿨 잠들어 있던 그릭요거트를 발견. 유통기한이 조금 지나서 혹시 몰라 한 숟갈 떠먹어보니 다행히 괜찮았다. 아침으로 먹기로 마음먹고, 냉장고에서 과일들을 꺼내 먹기 좋게 썰어두었다.
오늘도 역시 조금 늦게 일어났지만, 요거트라 그런지 꽤나 간편하고도 든든한 아침이 되었다. 어제는 유혹을 참지 못해 치킨을 시켰고, 아침에서야 죄책감을 조금이나마 덮었다. 그런 걸로 합시다..
벌써 금요일이고, 다섯 번째 아침밥의 게시물이다. 한 주가 어찌 지나는지도 모르던 내게 차곡차곡 쌓인 아침밥의 기록이 건네는 말들이 있다. 어떤 날엔 의욕이 앞서고, 다음날엔 갑자기 아무것도 하기 싫은 들쭉날쭉한 마음과 기분에도 불구하고 작은 약속 한 가지는 지켰다고. 아직 미뤄둔 일들이 눈에 보이지만, 그것들도 차근차근 하나씩 풀어가면 될 거라고. 거창한 계획들로 마음만 분주했던 한 주간 이만하면 잘 해냈다고.(22.01.07)
한 주가 어찌 지나는지도
모르던 내게
차곡차곡 쌓인 아침밥의 기록이
건네는 말들이 있다.
글, 사진 / 나무늘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