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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무늘보 Feb 07. 2022

프롤로그_오늘의 아침밥

어제의 기억 한 술, 오늘의 다짐 한 술, 정성껏 차린 한 끼


  코로나 때문이라고 변명하기엔 구차한, 그간 꾸준히 불어난 체중과 만성 식도염. 반성하기 딱 좋은 12월이 어김없이 찾아왔고, 때마침 받은 건강검진 결과에서 수치로 드러난 몸 상태는 최고의 동기부여가 되었다. 늘 주고받는 덕담이지만, 새해에는 정말로 '건강'하고 싶었다. 건강을 위해서 누군가는 야식이나 술을 줄일 테고, 또 누군가는 바디 프로필을 찍기 위해 열심히 몸을 만들겠지만, 그저 내가 마음먹은 한 가지는 '아침밥'을 꼬박꼬박 챙겨 먹는 것이었다.


  5년간 타지 생활을 하다가 지난해 본사 발령으로 본가로 돌아왔다. 전보다 통근시간이 세 배로 늘어난 터라 일찍 일어나는 일이 고역이었다. 그 와중에도 아침밥을 거를 순 없었다. 아침밥은 꼭 챙겨 먹어야 한다는 부모님의 일념 하에 아침잠도 줄여야만 했다. 매일 아침, 정체불명의 건강주스와 일정량의 야채를 먹어야 했다. 한 달 정도 지났을까, 그동안 만성처럼 더부룩하던 속이 거짓말처럼 편안해졌다. 타지에서 불규칙한 식습관으로 생긴 증상이었다. '아침밥' 효과를 톡톡히 본 것이다. 하지만 주말까지 이어지는 이른 아침밥 루틴은 괴롭기도 했다.


  다섯 달 뒤 독립을 하게 되었고, 아침밥의 굴레에서 해방되었다. 출근 전 수면시간을 좀 더 확보했고, 출근 후 빵이나 삼각김밥으로 아침을 해결하게 되었다. 사실 몇 십분 더 잔다고 해서 피곤함이 덜해지는 건 아니었고, 아침밥 사 먹는 돈도 만만치 않게 나갔다. 저녁에는 혼자 해 먹다 보니 2인분의 양을 해놓고 아까워 다 먹어치우거나 먹다 남은 걸 냉장고에 오래 방치하다 상하는 일이 다반사였다. 점점 외식을 하는 날도 늘어갔다. 기대에 부응하며 체중은 신기록을 날마다 경신했고, 다시 찾아온 식도염으로 잔기침을 달고 살았다. 어찌 보면 '아침밥'이 다시 떠오른 건 당연한 수순이었다.


  지난해 한 달간 '문토(https://www.munto.kr)'에서 열린 일상 기록모임에 참여했던 적이 있다. 하루를 보내며 발견한 작은 행복의 순간을 기록하는 게 모임의 공통 미션이었다. 한 달간 각자의 기록을 채워나가는 일에 열다섯 명이 함께 했다. 한 주가 지나고, 덧글로 주고받는 따뜻한 말들이 든든한 용기가 되어 한 달간 즐겁게 기록할 수 있었다. 새해에도 '밑미(https://www.nicetomeetme.kr)'에서 비슷한 기록 모임이 있다는 소식을 듣고 얼른 신청했다. 지난번보다 더 많은 스무 명의 인원이 참여했고, 이번에는 각자 기록하고 싶은 주제를 정해야 했다. '오늘의 소중함', '오늘의 딴짓', '오늘의 행복', '오늘의 문장' 등 저마다 다양한 기록서랍들을 만들었다.


기록서랍으로 삼은 인스타 부계정 "오늘의 아침밥"


  나의 기록서랍에는 '오늘의 아침밥'이라는 이름표를 붙였다. 어제의 기억 한 술, 오늘의 다짐 한 술, 정성껏 차린 한 끼로 든든히 하루를 여는 아침의 시간을 만들어보기로 마음먹었다. 사실, 타인에게 아침밥을 보여주는 게 부끄러운 일인지 첫날 기록을 올리고 나서야 깨달았다. 적나라하게 담기는 나의 밥상이 곧 나의 일상이기도 했기 때문이다. 배달시켜 먹고 남은 음식이 반찬으로 올라오고, 똑같은 반찬만 매일같이 등장하고, 엉망진창으로 만든 정체불명의 반찬도 있었다.


  시간이 약인지, 어디에서 온 자신감인지는 몰라도, 무려 한 달간 빼먹지 않고 아침밥 기록을 올렸다. 차곡차곡 쌓인 20개의 아침밥 기록이 내게 준 작은 행복과 용기의 마음들을 여기에 다시금 하나씩 하나씩 풀어내려 한다. 매일 아침 스스로에게 건네는 "좋은 아침"과 더불어 "오늘도 잘 먹겠습니다"로 두 손 모으고.



매일 아침
스스로에게 건네는
 "좋은 아침"과
더불어
"오늘도 잘 먹겠습니다"로
두 손 모으고.





글, 사진 / 나무늘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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