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가 돌아가시고 딱 한 달이 되는 날이었다. 4년간 혼자 생활하시던 집에서 나는 혼자 늦은 점심을 준비했다. 마땅한 직장이 없었기에 집에 있던 것이다. 누군가는 정리할 여유가 있어서 정말 다행이라 했다가 실수라는 것을 알아차리고는 미안하다고 했다. 나는 따로 답하지 않고 끄덕이며 돌아섰다. 그래도 빚이 없어서 다행이니, 재산이 어쩌고 보험이 어쩌고 하는 이야기들을 뒤로하고 집에 들어왔다. 그렇게 딱 한 달이 지난날이었다. 어머니도 사고였는데, 참 기구했다.
새벽 내내 잠을 이루지 못했지만 그런 기억 때문은 아니었다. 안방에 침대도 있었지만 거실에 이불을 깔고 누워서 천장을 바라봤다. 아주 시골이라 풀벌레 소리가 들렸다. 어디선가 불어 들어오는 바람이 얼굴 위로 깔리며 오래된 먼지 냄새를 풍겼다. 지끈거리고 퀴퀴한 아버지의, 나이를 한참 먹은 냄새로 보아 안방에 문이 열려 있었다. 나는 이불을 어깨 위로 끌어올릴 뿐이었다. 집에 오랫동안 있으면서 나름 익숙해졌다고 생각했는데… 이불 끝에서도 비슷한 냄새가 느껴졌다. 그러다가 해가 떠오를 즈음에 잠이 들었고, 늦은 아침에 일어난 것이다.
가을 해가 지긋이 떠있는 점심인데 뒷산에서 습한 바람이 내려왔다. 어제 먹다 남은 밥이 아직 있었지만 반찬이 없었다. 하루에 버스가 세 번 다닐까 말까 한 곳이라 배달은 꿈도 꾸지 않았다. 냉동고를 열어보니 진공 포장된 생선과 언제 들어갔는지 새하얀 돌처럼 굳어 있는 고기도 있었다. 아니, 묵직해서 고기인 줄 알았는데 덩어리 진 밥이었다. 하는 수 없이 생선을 꺼내 들었다. 낮은 나트륨 함량과 바로 구워도 되고 전자레인지도 오케이! 하는 문구 아래에는 투명한 비닐 안에 작은 가자미가 시체처럼 들어 있었다. 김치와 된장국에 생선 하나면 내 입장에서 나름 챙겨 먹는 것이었다. 나는 아버지를 닮아서 맛있는 것보다 배를 채우는 것 정도로만 밥을 먹었고, 요리에는 소질이 없었다.
“어떻게든 살아야지.”
4년 전에 어머니를 먼저 보내신 아버지는 크게 동요하지 않으셨다. 적어도 내게는 그렇게 보였다. 정신없이 울다가 잠들고 퉁퉁 불어 터진 눈으로 밥을 먹던 나와는 정반대였다. 앞으로 문제를 떠올린 것은 아버지가 차려준 밥을 먹을 때였다. 남아있던 반찬과 밥에 된장국을 직접 끓이셨는데 정말 짰다. 국물을 좋아하시던 아버지도 입을 거의 대지 않으실 정도였다. 말없이 밥만 뜨다가 내가 먼저 말했다.
“요리학원 다녀보실래요?”
“역시, 많이 짜긴 하지?”
그제야 잠깐 웃었다. 함께 정리를 하고 요리를 좋아하시던 어머니가 레시피를 남겨놓으신 것이 분명 있을 거라며, 10여분 떨어진 읍내와 더 먼 곳이라도 아버지 혼자 다니실 만한 요리 강좌가 있을 거라며 우리는 분주히 움직였다. 손수 어머니가 정리하신 수첩에는 들깨꽃 튀김이나 궁중 떡갈비처럼 아버지에게는 실현이 불가능할 것들만 적혀 있었다. 군청 홈페이지에서 요리 강좌를 찾았으나 2년 전의 게시물이었고 연락을 직접 해봤으나 받지 않았다. 저녁에 그 국을 다시 먹을 수는 없었다. 결국 우리는 식당으로 향했다.
“밥이 배만 채우면 되는 거지, 항상 맛있는 거 해다 먹으면서 살 수는 없으니. 어떻게든 살아지지 않겠니?”
몇 안 되는 짬뽕 메뉴를 한참 고르다가 결국 나와 같은 것을 주문한 아버지가 슴슴한 표정으로 말했다. 나는 퍽이나 그러시겠다는 말을 삼키며, 혼자 해 먹기 쉬운 것들을 집으로 보내겠다며 뭐가 좋으시냐고 물었다.
“요즘엔 혼자 살면서 간단히 할 수 있는 것들이 많으니까요. 정 안되면 제가 알려드리고요. 그래도 1년 넘게 혼자 살았다고 간단한 것들은 할 줄 알아요.”
당신 본인보다 훨씬 낫다며 웃는 사이 주문한 음식이 나왔다. 해산물 몇 조각과 투명한 양파에 쫄깃한 면발. 매콤한 국물은 우중충한 날씨에 제법 어울렸다. 국물에 밥까지 말아서 깨끗하게 해치운 우리는 돌아오면서 요리책을 한 권 사 왔다. ‘프로 자취러가 되기 위한 첫 번째 요리책’. 저자가 꾸준히 책을 쓴다면 아버지는 훗날 어머니의 레시피를 이용해 진수성찬을 차릴 수 있을 터였다. 부지런하다 못해 일이 없으면 불안해하시는 분이시니 이 정도 책이라면 하루 만에 다 읽으시겠지! 그러나 아버지는 영 시원치 않은 눈빛으로 책을 가만히 보다가 물어보셨다.
“그런데 자취러가 무슨 뜻이니?”
삐, 삐, 삐.
전자레인지를 열자 옅은 수증기와 자욱한 생선 냄새가 진동했다. 손끝으로 비닐을 집어 꺼내니 약간 부풀어 있었고, 가위로 끝을 자르고 공기가 들어가자 김이 새어 나왔다. 여전히 죽은 것이었으나 조금 생기가 돌아서 맛있게 보였다. 2시가 넘도록 아무것도 먹지 않아서 배가 고픈 것도 있었다. 식기세척기에 다소곳이 정리된 접시 중에 하나를 꺼내어 가자미를 올렸다. 마지막으로 수저와 젓가락을 놓고 밥을 뜬 다음 물 한잔을 받는데 정수기와 벽 사이에 책이 몇 권 있었다. 어머니가 남기신 수첩과 첫 번째부터 세 번째까지, 형광색 책갈피가 곳곳에 끼워져 있었다.
하나를 펴 보니 밑줄과 메모가 가득했다. 물인지 양념인지 동그란 얼룩이 작은 가시를 달고 있었다. 마치 오래된 앨범처럼, 색감이 선명한 사진들과 간결하게 표현된 과정들을 하나씩 뜯어보았다. 재료를 미리 재워 둬야 하는 것들은 별표가 쳐져 있었다. 불고기나 잡채를 직접 하셨을 거라 상상이 쉽게 되진 않았지만 직접 하지 않고서 이런 흔적은 남을 수 없었다. 아버지를 닮아 나도 그러했기에.
다시 식탁에 앉으니 밥과 가자미가 이미 식어 있었다. 밥 한 숟가락을 뜨고 생선가시를 바르기 시작했다. 넓적한 몸에 투명하고 기다란 가시들을 바른다고 발랐지만 한 입 할 때마다 입에서 뭔가 걸렸다. 아버지가 어떻게 하셨는지 떠올렸지만 조기와 갈치 같은 녀석만 생각났다. 언제나 생선을 먹을 적이면 뼈를 발라낸 다음 어머니와 내 앞접시에 놓아주셨던 터였다.
“난 됐으니까 당신도 좀 먹어요.”
그러면 아버지는 먹고 있다며 가는 뼈들이 줄지어 늘어선 등지느러미 쪽을 가리켰다. 그러다가 아주 나중에, 내가 몸통 말고 그런 부분만 사다 주는 수가 있다고 웃으면 “우리 아들이 설마 그러겠어” 하시며 몸통을 하나 집어 가셨다. 보통은 자잘한 가시가 많은 내장과 가장자리를 드시다가 어머니와 내가 다 먹고 남으면 그제야 몸통을 하나 드시거나 했기 때문이다.
그런 생각을 하면서도 생선 한 입마다 가시가 하나씩 튀어나왔다. 분명 흰 살만 있었는데 어디서 나온 것인지, 나중에는 숟가락을 놓고 한참 낑낑대며 생선을 파헤쳤다. 식어서 퍼석퍼석 부서지는 살에는 가시가 분명 없었다. 그러나 입에 넣으면 아주 작은 것들이 하나씩 잇몸을 쑤셔서 오물오물하다가 뱉기 일쑤였다. 결국 남은 살은 투명하고 날카로운 가시들과 함께 다 버렸으며 밥도 반이나 남았다.
모든 것을 지저분한 상태로 남겨둘 수는 없었기에, 설거지를 마치고 일어나니 3시가 조금 넘어 있었다. 따로 할 일이 없던 나는 아버지를 프로 자취러로 만들어준 책 세 권을 챙겨서 작은 방으로 갔다. 대학과 취업을 위해 내가 떠난 이후부터 온갖 잡동사니가 쌓인 곳이었다. 책상 아래에 작은 함에서는 5년 전에 무지개다리를 건넌 오공이 사진과 장난감이 들어 있었다. 검은 털에 반짝이는 눈망울과 쉴 새 없이 뛰어다니며 장난을 치던 녀석을 보고 아버지는 오공이라 이름을 붙여주었다. 노즈 워크 담요와 간식을 넣어주면 굴리면서 놀던 공, 손바닥만 한 지퍼백 안에는 회색으로 빛이 바랜 털이 한 움큼. 비를 맞으면 유독 심해지던 오공이 냄새가 먼지와 함께 날리는 것처럼 느껴졌다. 창 밖에는 비가 오려는 듯 어두워진 하늘이 낮게 깔려 있었다.
책장 아래에는 거의 새것 같은 (몇몇은 진짜 펼쳐본 적조차 없는) 전공책이 무게를 잡고 있었다. 아버지가 보셨던 불교 서적과 어머니가 보셨던 여러 수녀님들의 책이 위칸에 반반씩 자리를 나누어 차지했고, 일기가 빼곡히 적혀있을 노트 몇 권에는 연도가 쓰여 있었다. 반투명한 플라스틱 통 안에는 엄청나게 많은 볼펜과 샤프가 보였다. 먼지와 햇빛을 먹어서 노르스름해진 것들은 더 이상 쓸 수 없을 것만 같았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가족사진이 들어있는 앨범이 있었다.
분홍색 장미와 안개꽃들이 하늘색 배경과 잘 어울리는 표지를 넘기자 결혼사진이 보였다. 나와 굉장히 닮은, 나보다 젊었을 아버지 옆에는 아름다운 어머니가 새하얀 드레스를 입고 서 있었다. 살짝 연보라로 바랜 색감과 경직된 모습이었지만 아름다웠다. 벌써 30년도 훨씬 전의 일인데, 아, 귀 밑으로 차오르는 뜨거움을 느끼며 나는 한 장을 넘겼다. 발도장과 눈도 뜨지 못한 아이를 흰 포대에 싸서 안고 있는 사진들. 조금 더 넘기니 병실에서 링거를 꽂고 있는 아기와 많은 사람들이 보였다. 평상과 나무를 뒤로하고 뛰어오는 모습과 바다를 보고 달려 나가는, 그 뒤를 따라가는 어머니. 유치원과 초등학교와 이사하던 날과… 빗방울이 톡톡 두드리는 소리가 들렸고 긴 잠옷 끝은 이미 젖어서 축축했다. 목을 타고 코와 눈가에 번지는 것을 삼키며 앨범을 덮었다. 옆에는 챙겨 왔던 요리책 세 권이 덩그러니 놓여 있었다.
비를 따라 쏟아지는 서늘함에 거실로 나왔다. 베개를 끌어안고 어지럽게 펼쳐진 이불로 몸을 감쌌다. 이제 5시가 조금 넘어가는데 겨울이 돼가는지 벌써 추웠다. 부엌에는 여전히 생선 냄새가 남아 있었고 그보다 슬픈 냄새가 어딘가 열린 문을 통해 바닥으로 퍼졌다. 맵고 시큰하지만 익숙한 냄새였다. 화끈거리는 눈가를 베개에 파묻고 나는 누운 채로 이불을 끌어당길 뿐이었다. 혼자라는 사실은 뼈처럼 가장 깊이 있는 것일진대 원래 이런 느낌이었나? 따갑다 못해 시릴 지경이었다. 비가 점점 거세게 내리치고 바람이 휭휭 소리를 내며 불었다. 나는 웅크리고서 두꺼운 이불을 말아 쥐며 생선가시가 살을 움켜쥐듯 울 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