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틀에 새끼손톱만 한 것이 기어가고 있었다. 생긴 것으로 보아 바퀴벌레 이거나 아주 가까운 친척 정도였다. 베이지색 몸통에는 다갈색으로 가는 줄이 그어져 있었고 넓적한 배와 작은 가슴에 작은 머리, 고개를 조금 돌려 보자 반짝이는 등껍질도 보였다. 내가 보고 있을 거란 생각조차 못하고 유리창을 가로질러 창틀로 들어가는 녀석을 가만히 바라보았다. 카페 앞 작은 공터와 도로를 사람들이 지나고 있었다. 해가 점점 떨어져 가는 10월의 5시 즈음이었다. 장바구니를 들고 집으로 들어가는 이들과 유모차를 끌고 함께 산책을 나온 부부, 볼일을 본 강아지와 뒤처리를 하러 쭈그리고 앉는 남자. 학원을 가는 아이들이 노란색 자그마한 차에서 느릿느릿 쏟아져 나왔고 퇴근하다가 편의점에 들른 사람은 봉지 한가득 무언가를 담고 나왔다.
커피를 한 모금 홀짝이며 나는 부끄러워졌다. 가을에 솟아난 새싹처럼 새삼스러운 것이 아니었다. 떨어지는 낙엽과 익어가는 홍시처럼 자연스러운 것이었으나 내가 외면하던 것, 오직 그뿐이었다. 반대편 창틀로 건너가려는 듯 기어 나와 뽈뽈거리며 발을 놀리는 녀석과 사람들을 보다가 유리창에 비친 내가 얼마나… 바람이 한가득 불며 풀잎들이 이리저리 휩쓸리는 모습을 바라볼 뿐이었다.
카페에 가게 된 것은 점심 나절에 본 브런치 글 때문이었다. 엊그제인가 데이터 센터에 난 화재로 브런치가 먹통이 되었던 것을 기억하고는 새로운 글을 읽으러 빠져 들었다. 그리고 읽히는 글과 인기 있는 글을 보며 질투가 난 것이다. 무릇 내게 없는 것을 부러워하고 그것을 바라며 생기는 부정적인 감정이 질투라고 한다. 한편에서는 원동력이 되어 원하던 것을 쟁취하게 하고, 심해지다 보면 사람을 무기력하게 해 주저앉게 만드는 녀석이다.
여기에는 지극히 주관적인 기준이 있기 마련이다. 지금껏 원하던 재능과 바라던 성공 중에서도 사소한 것들이 눈에 잘 들어오기 마련이다. 그런 글이 눈에 들어왔고 (추천해주는 브런치 알고리즘에 된소리 한 줌을 날리며) 질투에 사로잡힌 나는 눈에 보이는 책들을 다 꺼내어 뒤적거렸다. 그 안에서 원하던 문체와 소재를 찾는다면 나도 그런 글을 쓸 수 있을 것이라, 담백하고 고소하면서도 향긋한 마무리를 남기는 글을 쓰겠노라고! 그리고 널브러진 책들을 언제 다시 정리하냐며 방을 뛰쳐나온 것이었다.
작은 골목을 지나 쌀쌀맞은 바람을 맞고 들어간 카페에서도 이상한 느낌은 지울 수 없었다. 하필 가방에 넣어간 것이 알베르 카뮈의 <이방인>이라 눈에 들어오지도 않았다. 딱 한 시간, 정신없이 글을 쓰면 나아질 것이라며 펼친 노트는 30분째 말끔했다. 그러다가 창문을 지나는 녀석이 보인 것이다. 왼팔로 턱을 괴고 오른손으로 펜을 돌리며 창밖을 바라보며 세상 우울한 표정으로 해가 떨어진 가을 하늘을 보고 있다니, 청승맞기 그지없었다.
“아주 지럴이네.”
차 밑에서 꼬리를 세운 채로 걸어 나오는 고양이가 슬쩍 나를 보더니 말했겠다. 검은 몸에 흰 양말을 신은 녀석을 눈으로 좇았다. 브런치를 다시 켜본 것은 그 녀석이 모서리를 돌아 아예 사라진 뒤였다. 진한 커피 기름의 톡 쏘는 냄새가 옅게 풍겼고 창문으로 쌀랑한 바람이 불어 들었다. 왼팔뚝이 으슬으슬 떨리다가 온 몸으로 퍼져서 발끝을 톡톡 두드렸다. 그것은 질투였고 해가 가라앉아 퍼지는 밤이기도 했다. 나는 부끄러운 마음에 회색 외투를 걸치며 움츠러들었다.
질투하며 내게는 없음을 알아차리는 순간부터 부끄러움은 밤공기처럼 낮게 퍼진다. 지저분한 감정들이 모두 내 것이었음을 되새기면 발목부터 밤이 다가옴을 느끼는 것이다. 아니, 저녁을 먹고 카페에 들른 사람들을 따라 찬 공기가 밀려들어온 탓이 분명했다. 구석에 앉아서 다행이라며 텅 빈 노트에 몇 단어를 쓰고 창문 너머를 바라봤다. 가로등이 하나 둘 켜져서 풀숲은 주황빛으로 물들어 있었다. 바람은 훨씬 조용했지만 8시가 되어가니 창틀 사이로 비집고 들어오는 바람이 선명하게 느껴질 정도였다.
그리고 새끼손톱만 한 것이 한가운데를 지나고 있었다.
갑자기 카페 조명들도 밝게 켜졌다. 바깥에 나돌던 시선은 안쪽에 비치는 내 모습으로, 밤이 되니 안으로 들어왔다. 창문 위의 녀석은 눈 밑에서 목을 따라 어깨로 내려왔고 창틀에서 더 아래로 사라졌다. 간결한 날짜와 부끄러움, 썼다가 끄적거려서 지워버린 단어들을 덮으며 가방을 챙겼다. 결국 책은 한 페이지나 읽었다면 다행이었고 쓴 글은 한 문장도 되지 않았다. 늦게 마신 커피로 잠들지 못할까 걱정을 하며 가방을 챙기고 보니 유리창만큼 차갑게 식은 커피가 한 모금 남아 있었다. 남은 술잔을 털어내듯 마시고는 보도블록을 지나는 녀석, 딱 새끼손톱만 한 그것을 바라봤다. 몇 걸음 떨어진 풀숲 사이로 들어가려는 모양이었다. 가을밤은 누구에게나 춥기 마련일 터였고 적잖이 축축한 곳이라 하더라도 마다할 처지가 아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