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주일에 두 번 정도, 오후 4시 근처에 나는 빵을 사러 가기 좋아했다. 바게트나 식빵에 몇 가지를 섞어 사면 적당했다. 아파트 단지에서 조금 벗어나 있는 그곳은 남편과 아들이 빵을 굽고 아내가 손님을 맞았다. 한 번은 유모차가 들어와 있어서 조용히 빵을 골라야만 했는데, 그런 장면이 좋았다. 매번 갈 때마다 바게트를 사다 보니 사근사근하게 대해 주시는 것도 있었다. 동네 장사를 하다 보면 당연히 그럴 수밖에 없다면서도 손님으로나마 누군가가 나를 기억해준다는 것은 참 기분 좋은 일이니까.
엊그제도 빵을 사서 들어가는 길이었다. 낙엽이 발에 치일 정도로 많은 가을 오후였다. 따사로운 햇살과 적당한 바람에 막 구운 빵 냄새가 크래프트지로 만들어진 봉투에서 올라왔다. 사람이 보이지 않아 적적하긴 하였으나 평온하기 그지없는 풍경. 개천과 말끔히 정리된 잔디밭에 여름 내내 피어있던 백일홍이 지고 난 공원은 그보다 진한 억새와 낙엽이 눈에 띄었다. 자그마하지만 다리 위에는 아파트 사이로 쏟아지는 햇살로 반짝였다.
그렇게 들어가기 전에 우유는 꼭 사야겠다고 생각하며 다리를 건너던 참, 빈 휠체어를 밀며 조금씩 걷는 할머니와 그 옆에서 천천히 따라 걷는 남자가 보였다. 할머니께서 다리가 불편해 보이시는 것으로 보아 원래는 휠체어에 타고 계셨을 것이었다. 구부정한 할머니에 두 배는 되어 보이는 덩치와 모자를 푹 눌러쓴 남자는 아들 정도로 보였다. 할머니 걸음에 맞춰 천천히 따라오는 모습. 그들은 바람에 날리는 낙엽보다 조용하게 움직였다.
먼발치에서 그 모습을 본 나는 애써 아무렇지 않은 척 앞만 보고 걸었다. 휠체어 몸체에 튕긴 햇빛이 반짝, 눈으로 들어온 탓이기도 했다. 나도 모르게 드러나는 시선이 여차하면 누군가에게 상처로 남는다는 사실도 분명히 알았다. 그러나 이상할 정도로 거동이 불편하신 할머니를 보면 마음이 시렸다. 나와 일면식도 없는 타인임에도 목 아래부터 저릿하면서 아주 차가운 것이 스윽 훑어 내려가는 느낌이었다.
마른 가을에 난 산불만큼이나 선명한 감정은 쉽게 옮았고 치솟는 데다가 꺼트리기도 어려운 법이었다. 그것은 슬픔이나 우울감이 아니었고 단순한 오지랖이었으나, 스치는 장면에서 떠올라 하루가 다 가도록 주변을 맴돌았다. 더군다나 열기를 가득 머금은 연기는 시야를 좁게 만들었다. 정말 싫었으나 억지로 막기도 어려운 것이었다.
오래 이어진 그것을 두고 한 때에는 이유를 찾으려 노력했다. 느낌으로만 남아있는 증조부와 유독 예민한 것이라는 둥 아주 다양했으나 어떠한 것도 소용이 없었다. 그냥, 환절기 감기처럼 약 챙겨 먹고 하루 이틀을 푹 쉬어야 한다는 것은 몇 년이나 지나서야 알 수 있었다. 무릇 이유란 나중에 붙는 것이고, 나는 어찌 되었든 흘려보내는 수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질병으로써 나타나는 증상이 아니었기에 가능한 부분도 있었다. 아무쪼록 지금 감정에 집중하면 가라앉을 뿐이니 재빨리 지나쳐야 한다고. 그리고는 곧장 돌아가서 푹 쉬어서 며칠간 잠겨있지는 말아야겠다고 생각할 따름이었다.
다음 날 아침이었나, 목 깊은 곳이 따끔거리다가 눅눅한 기침을 뱉기 시작했다. 대단치 않은 사람임에도 건강만큼은 자부하던 나에게는 날벼락이었다. 이마를 만져보니 열은 심하지 않았는데 귀 아래가 조금 후끈거렸다. 편도가 부었나 보다. 아플 법한 느낌은 틀리는 법이 없다는데 참 얄궂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