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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후 Jan 12. 2023

기일

 동생이 떠나고 2년이 되는, 한 겨울밤을 내달린 버스는 자정이 다 되어가서 터미널에 도착했다. 나는 곧장 바다가 보이는 곳으로 향했다. “가장 가까운 바닷가”라는 말에 택시기사님은 당황하셨는지 마스크를 오물거리셨으나 별다른 말을 하지 않으셨다. 겨울임에도 엊그제 비가 왔는지 택시는 젖은 골목을 지났다. 그리고 곧 큰길에 접어들었다. 가만히 보고 있으면 옅은 잔상을 남기는 가로등을 수십 개 지나고 몇 번 다른 길로 접어들었다. 엉뚱한 목적지를 말했기에 바가지를 씌운다 한들 나는 할 말이 없었다. 고마운 마음조차도 입을 열면 이상한 소리를 할까 참았기에 나는 가만히, 바깥만 바라봤다. 살짝 창문을 내리니 맑은 하늘에 비해서 습한 공기와 짠 내음이 훅 들어왔다. 말랐던 땅과 나무의 흙냄새도 조금 섞여 있었고 작지만 철썩이는 파도 소리도 들렸다. 곧 택시가 멈췄다. 칠천 오백 원이 나왔고 나는 만원 짜리 한 장을 드리며 잔돈은 괜찮다고, 감사하다고 말하며 문을 닫았다. 너무 세게 닫아서 오해했으려나 사사로운 생각이 떠들었다.

 짤막한 바닷가에는 술집 몇 개와 이미 문을 닫은 카페, 모텔들과 두 무리의 사람들이 흐느적거리고 있었다. 탁한 파도가 희게 부서졌으나 사각거리는 발자국이 들릴 정도로 조용히 일었다. 꽤 굵은 모래였고 조개인지 유리인지 작은 알갱이들이 걸음마다 빛을 받아서 반짝였다. 발 바로 밑에는 비닐과 꽁초와 지저분한 것들이 마구 섞여 있었다. 한 발치만 떨어져 있어도 그저 모래사장인데 걸음마다 새로운 것이 눈에 밟혔다. 나는 파도가 들이치는 곳으로 갔다. 매끈해진 모래톱 대신 그곳에는 흰 거품에 온갖 것이 떠다녔다. 더러워서 숨기듯 굴리고 쓸어 담아 가져가는 파도를 보았다. 바다와 파도는 숨기려 애쓰고 있었다. 그건 더럽지 않으니 괜찮다고, 나는 말하지 못했다. 한없이 넓어 보이는 파도도 참다 참다 어느 순간이 지나면 이 모든 것 안고 스스로 멀리 떠나 버릴까. 내가 하나라도 주워 담았으면 어땠을까.

 그랬다면 파도치는 바다를 보고 슬플 일이 없었을까.

     

 뺨을 갈기듯 바로 앞까지 파도가 철썩이며 흰 거품을 남겼다. 추운 날씨에 신발이 젖으면 골치 아플 것이었다. 나는 조금 떨어져서 가로등 가득한 거리로 발걸음을 옮겼다. 냄새와 소리와 빛, 생경한 것들을 보고 있으니 끈질긴 생각들이 조금 잦아들었다. 귀를 치며 목덜미로 파고드는 스산함에 몸을 떨었지만 혼자 있기에 썩 나쁘지 않았다. 가게들과 벤치를 따라 이어지는 길 그 끝에 조촐한 공원, 말끔한 주차장과 자지러지게 웃다가 술병을 넘어트리는 사람들. 빈 유리병 구르는 소리가 허름한 포장마차에서 흘러나왔다.

 왼편에 바다를 끼고 길을 따라 걸었다. 파도가 밀려오는 바다 끝 희미한 경계에는 빨간 불빛이 점점이 들어왔다가 나갔다. 아주 빨갰다. 가로등과 간판과 거리가 너무 밝은 탓에 그것만 보였다. 별 하나 보이지 않는 하늘 가장 낮은 곳, 문득 뻔하다 못해 청승맞아서 실소가 터져 나왔다. 며칠 만에 웃으니 힘이 풀려서 높직한 시멘트 계단에 주저앉았다. 담배꽁초가 널브러진 곳이었다. 그리고 한참을 바라보다가 무릎을 끌어안았다. 모래와 옷과 신발이 서로를 긁었지만 그냥, 그러고 싶었다. 바닷바람이 퍽이나 추웠다.

 “아저씨, 여기서 자면 얼어 죽어요.”

 가방을 톡톡 건드리며 앳된 목소리가 말했다. 그냥 지나가기를 바라며 무릎을 더, 조금은 우는 것처럼 소리 날 정도로 끌어 쥐었다. 혼자 겨울에 밤바다 보며 우는 사람이 한 둘이던가. 얼굴을 파묻은 채로 훌쩍이니 술 냄새, 불 켜는 소리를 따라 한 모금 깊이 쉬는 소리에 담배 냄새도 느껴졌다.

 “아저씨, 아저씨! 하 참, 얼마나 마신 거야?”

 전화를 거는 것인지 톡톡 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혹시 경찰을 부르는 걸까, 그런 번거로운 일은 싫은데, 내버려 두라고 쏘아붙여야 하나, 혼자 있고 싶다고 말하면 너무 처량해 보일까?

 “취한 거 아니에요.”

 나는 결국 기어가는 목소리로 말했다. 조금 울먹였는지도 모르겠다. 그는 오! 감탄하며 다행이라고 연신 말했다.

 “너무 목소리가 작아서 경찰 부르기 직전이었다고요. 아무리 취했어도 사람 얼어 죽게 내버려 둘 수는 없잖아요?”

 쾌활한 목소리와 후, 내뱉는 긴 한숨. 작은 것 짓이기는 소리가 들렸다. 그리고 가방과 어깨 사이에 팔을 툭 걸치며 옆에 걸터앉는 것이다. 나보다 조금 마르거나 비슷한 체격에 목소리만큼 어려 보이는 외모와 반쯤 풀린 눈이 옆에 다가왔다. 순한 눈매와 거친 눈썹이 동생과 참 비슷했다. 동생보다 조금 갸름한 볼과 얇은 입술에 나이도 한 두어 살 더 어려 보였지만 한참 눈을 감고 있어서 그렇게 보였는지도 모른다. 해맑은 건지 스스럼없는 것인지 그는 나를 진작 알던 사람처럼 보고 있었다. 모르던 사이에 무슨 재밌는 일을 겪고 여기까지 왔냐는 식의 그 눈빛에 나는 코를 훌쩍이며 답했다.

 이 밤에 혼자? 혼자 왔죠. 무슨 일이 있어서? 그런 일이 있어요. 차인 건 아니고?

 대답이 없자 그는 지긋이 바라보다가 내 오른 팔뚝을 들어 올렸다. 예상외로 힘이 있어서 그는 나를 훌쩍 일으켜 세웠다. 바지와 외투 사이사이 파고들었던 모래가 소리도 없이 흘러내렸다.

 “추우니까 일단 들어가요. 이 밤에 혼자인 사람끼리 술이나 마시자고요!”

     

 붕 떠버린 표정으로 나는 그의 손에 이끌려 가게로 들어갔다. 그 구도가 썩 익숙하기도 했다. 동생은 자기가 쾌활해서 망정이라며 칙칙한 나를 데리고 술을 마시러 다녔다. 나는 잘 못 노는 게 아니라 안노는 거라고 입을 비죽 내밀었더랬다.

 "그거나 저거나 어떻든 결과는 똑같은데!"

 그러면서 친히 시간을 내준 자신에게 감사하라고 덧붙였다. 하릴없이 사귀고 헤어진 타령 하며 지독한 술주정을 들어주고 놀아주며, 끝에 가서 업어다가 침대에 뉘인 사람은 언제나 나였는데!  

 묵직한 문을 밀자 앙증맞은 방울이 소리를 냈다. 어두운 회식 벽과 노란색 전등이 잘 어울리는 곳이었다. 안쪽에는 작은 바 테이블과 여느 치킨집을 연상시키는 자리 몇 개가 오래돼 보이는 나무 바닥에 덩그러니 있었다. 이래저래 바닷가에 있다고 칵테일을 파는지, 수많은 술병이 바 뒤편에 늘어서 있었고 연인과 친구들로 보이는 한 무리가 구석에 자리를 잡고 있었다. 적당한 노래와 적당한 온기가 퍼졌다. 시끄럽지만 지나치지 않았다. 짙은 나무색 바에는 의자가 딱 세 개 있었다. 그는 나를 가장 왼쪽 자리로 안내했다. 가운데에는 빈 맥주병 몇 개가 줄을 맞춰 서있었다. 그리고 안쪽에는 누가 봐도 술집 사장님처럼 보이는, 그러니까 적당한 풍채와 수염과 그 느낌을 풍기는 사람이 핸드폰을 보고 있었다.

 “맥주 마시죠?”

 그는 대답을 듣지도 않고서 내 것까지 주문했고, 사장은 “또 지나가던 사람을 끌고 왔냐”며 한마디 할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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