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돌을 던지듯 이유를 던졌다. 비록 얼마 되지 않지만 소중한 내 커리어를 지우기 싫다고, 우리 아직 돈이 충분치 않다고. 빚으로는 아이를 키울 수는 없지 않냐고. 그는 잠자코 듣기만 했다. 거대한 종소리가 묵직하게 공간을 메우듯 나는, 우리는 비어있는 방 안에서 서로의 손만 바라봤다. 초저녁 어스름과 나름 인테리어로 꾸민 조명 아래는 드라마에 나올 법한 취조실처럼 좁고 팽팽했다. 약간 검고 길쭉한 그의 손가락은 시간을 재듯 톡톡 까딱거렸다. 나는 애꿎은 손등을 긁다가 마지막 하나 남은 돌을 던졌다.
“그냥, 지금은 좀 아닌 거 같아.”
그래, 그는 숨을 내뱉듯 말했다. 진실을 캐내지 못한 수사관 마냥 일어나는 그 앞에서 나는 죄인이 되어 쪼그라들었다.
“며칠, 집에 좀 다녀올게.”
나는 고개를 숙이고서 울먹였다. 거대한 종소리가 사방에서 울리며 독처럼 퍼졌다. 자박거리며 바닥에 쓸리는 그의 발소리와 어김없이 쿵쿵거리는 윗집, 문을 여닫고 재빠르게 멀어지는 또각또각 하이힐 소리가 이명처럼 들이닥쳤다.
“미안.”
나는 일어서서 곧장 집으로 향했다.
포기에는 이유가 필요했다. 나를 위해서도, 나를 바라보는 모두를 위해서도. 그렇게 생각했다. 신통한 유튜브는 알고리즘의 이름으로 내게 답을 띄웠다. 이유란 무의식에서 내 선택을 합리화하려는 방어 기제라고, 어느 유명한 심리학자가 말했다. 성숙한 어른이 되려면 방어 기제가 어쩌고 저쩌고, 이런 상황에서는 이렇게 해야 하고 저런 건 하면 안 된다고. 버스를 타고 내려가면서까지 이런 이야기를 찾아들어야 하는지. 나는 심리학자가 말하는 어른보다 엄마가 보고 싶었다. 언제쯤 도착하는지, 엄마는 저녁에 먹고 싶은 게 따로 있냐며 카톡을 보내왔다.
“일단 들어와, 모기 들어올라.”
터미널에 도착해서 택시를 잡아탔어도 늦은 저녁 즈음에야 도착했다. 엄마는 어서 들어오라며, 그리고 모기를 내쫓는 듯 손을 저었다. 나는 문이 닫히기도 전에 몸을 내던지듯 엄마를 안았다. 조금 훌쩍였는지도 모른다. 이제는 여느 노인들과 다르지 않게, 시큼한 듯 쿰쿰하지만 익숙하고 또 부드러운 냄새가 엄마 어깨에 놓여 있었다.
오랜만에 내려온 집은 여전했다. 나뭇결보다 주름을 닮은 바닥 장판과 얼마 전에 새로 발라서 붕 떠버린 벽지가 반짝였고, 텔레비전 옆에는 사진들과 성모상이 거실을 내려다보듯 자리를 잡았다. 벌써 조금 바랜 사진들에는 솜털처럼 먼지가 자라 있었다. 엄마는 주섬주섬 반찬통을 꺼내 열었다. 나는 그 사이 식탁 한 구석을 차지하던 약상자, 온갖 영양제와 감기약이 들어있는 바구니를 정리했다.
“위에서는 잘 먹고 다니지?”
깻잎 김치와 콩자반, 처음 보는 나물이 중심에 놓였다. 대충, 어떻게든 먹고살지, 하며 밥그릇을 받았다. 매끈하고 따뜻한 무게감이 참 좋았다. 엄마는 냉장고를 더 뒤적이다가 이내 반대편에 앉았다. 한참 쓰이지 않던 의자라서 그런지, 엄마 무릎에서 난 소리인지 모를 오래된 소리가 들렸다. 무슨 일 있는 건 아니지, 내 얼굴과 손을 찬찬히 뜯어보며 눈빛이 물었다. 나는 알면서도 뜸을 들이듯 젓가락을 들었다. 된장에 버무려진 나물을 뒤적이다가 밥숟갈에 올렸다. 그러나 선명한 눈빛에 나는 입을 열 수밖에 없었다.
“엄마는 임신했을 때 어땠어?”
“어쨌긴, 신기하고 좋고 그랬지.”
짐짓 애가 생기지 않느냐부터 부부생활에 무슨 이변이 있는지, 싸운 건 아닌지 물을까 걱정했다. 아무리 가족이라지만 세대가 다르니까. 그러나 엄마는 더 이상 묻지 않았다. 힘이 들어간 입술과 무거워진 시선. 나는 나도 모르게 잘못한 사람처럼 엄마 얼굴을 바라보지 못했다. 괜히 이건 무슨 나물이야 물었다. 쓰고 조금 짠데 처음 먹어보는 맛이었다. 누구누구가 준 엄나무 순인데 귀한 나물이고, 어디 어디에 좋다더라. 나는 가만히 들으며 한 가닥을 더 집었다.
그리고 한참 밥을 먹었다. 요즘 일은 어떻니, 요리는 잘하느니 하면 나는 그럭저럭이라 얼버무렸다. 오가는 말과 먹고 삼기는 와중에도 나는 어떻게 말해야 하나, 말해도 되는 걸까 싶었다.
내가 남편을 사랑하지 않는 것처럼, 괜히 투정이나 부리는 모습으로 보일까. 아플 것이다. 지금으로 돌아올 수 없을 것이다. 엄마가 될 것이다. 그 뻔한 예상도 하지 못하며 마음이 저리 약해서야, 그런데도 결혼하다니! 어리석고 이기적이라고, 그럴 거면 왜 결혼했느냐 따질 것만 같았다. 나와 그의 결혼에 문제는 전혀 없었고, 모두 잘 될 거라며 웃었던 게 떠올랐다. 아이를 가지고 싶어도 힘들어하는 부부가 많다는데 복에 겨워서… 뒤돌아선 그들의 입에서 이런 말이 나올 것만 같았다.
내가 할 수 있는 건 모든 게 자신의 선택이라고, 각자 사정에 맞게 살아가는 거다. 그리고, 그래도 우리 엄마라면 분명 괜찮다고 말해줄 거라고 되뇔 뿐이었다.
흰 밥에 덩그러니 놓인 나물, 반찬과 엄마 손을 보다가 입을 열었다.
“나, 애 안 낳을까 봐.”
엄마는 말이 없었다.
“엄마, 나…”
뜨겁고 무거운 것이 목덜미부터 차올라 내 말을 잘랐다. 내 잘못인 듯하여 양손에 얼굴을 파묻어 눈을 가렸다. 의자 소리를 지나, 아이고 하며 손과 엄마 냄새가 머리에 닿았다. 아주 어렸던 기억인 양 아득한 목소리였다. 무섭고 슬픈 꿈을 꾼 아이처럼, 정신을 차리고 보니 눈가가 축축했다. 조용히 토닥이며 어르는 손짓과 맥동하는 엄마의 숨은 여전히 그 자리에 있었다.
“우리 딸, 이게 무슨 일 이래니. 괜찮아, 괜찮아.”
눈을 비비다 올려다보니 엄마가 보였다.
밥의 옅은 단맛과 맑은 소금기, 조금 알 수 없는 향내가 감돌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