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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노 Sep 02. 2024

통제할 수 있다는 오만함

누구나 무력하다

  흔히들 자기 주도적인 삶이 행복하다고 말합니다. 자기가 원하는 데로 삶을 이끌어가는 것만큼 즐거운 일은 없을 테니까요. 저는 그렇게 살고자 노력해 왔고 다행히도 꽤나 주도적으로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런데 최근까지 자기 주도적이라는 것의 말 뜻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고 있었던 것 같아요. 원하는 대로 삶을 끌고 가기 위해서 통제할 수 있는 요소가 많아야 한다고 생각했거든요. 문제는 인간의 삶을 이루고 있는 것들은 통제할 수 없는 것들 투성이라는 것에 있었습니다.


  세상은커녕 스스로에 대해서도 잘 몰랐던 학창 시절에는 가진 것이 많이 없었기에 할 수 있는 것들을 늘려가야만 했습니다. 부족한 것이 있다면 채워 나갔고, 그로 인해 해낼 수 있는 것들이 점차 늘어나기 시작했죠. 덕분에 선택권도 늘어나기 시작했습니다. 지금 와서 돌이켜보니 그 당시의 저에게는 선택권이 생겼다는 건 통제할 수 있다는 뜻이기도 했습니다. 주도적인 삶은 매사 최선을 다해 능력을 키워가는 것, 그리고 그 능력을 통해 선택하고 통제할 수 있는 것들을 늘려가는 삶을 의미했었던 것 같아요. 그러다 보니 배우고 싶은 전공, 만나고 싶은 사람, 받고 싶은 대우 등 많은 것들을 노력하면 통제할 수 있다는 믿음을 가지고 있었던 듯합니다. 


  문제는 최근에 터졌습니다. 통제할 수 없는 상황들이 몰려왔고 스트레스를 감당할 수 없었어요. 한두 개였다면 견딜만했을지도 모르겠지만, 일과 사람관계의 대부분에서 통제할 수 없는 요소들을 마주했습니다. 그간 살아오며 어떻게든 상황을 바꾸려고 애써왔었기에 그 요소들에 무의식적으로 집착했고, 밑 빠진 독에 물을 붓는 것처럼 에너지가 바닥나기 시작했습니다. 결국 스트레스로 인해 건강까지 통제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어요. 더 이상 상황을 통제할 수 없었습니다. 더 이상 그 속에서 버텨내고 살아가야 하는 제 자신도 통제할 수 없었어요. 이건 그동안 해왔던 것처럼 무엇인가를 더 잘 해내려고 애쓴다고 해서 해결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었습니다. 공간을 바꾸어 오랜만에 휴가차 방문한 포항에서도 답답함은 사라지지 않았어요.


  그러다 문득 깨달았습니다. 통제할 수 없는 것들을 통제하려 애쓰고 있다는 사실을요. 다른 사람, 환경, 시기 그 무엇도 통제할 수 없었습니다. 생각해 보면 과거 모든 순간들도 통제할 수 없는 것들 투성이었어요. 별다른 문제가 없었던 이유는 운이 따라주었기 때문이었습니다. 통제하고 있는 것들과 조화롭게 맞물려 돌아갔기 때문에 통제할 수 있다고 착각한 거였어요. 최선을 다하면 통제할 수 있는 영역이나 가능성을 늘릴 수 있다 생각했던 것은 그동안의 대단한 착각이었습니다. 저는 오로지 저에 대한 것들만 통제할 수 있었습니다. 사람들에게 영향을 끼쳤거나 그들을 바꾸었던 것이 아니라, 제가 내놓은 것들에 영향을 받기로 제가 아닌 그들이 선택했기 때문이었습니다. 환경이나 외부에 있는 것들을 통제할 수 있었던 것이 아니라, 세상이 최선을 다하며 애쓰고 있던 저에게 운이라는 선물을 주었던 것이었습니다. 통제할 수 있을 거라는 꽤나 오만한 생각에 빠져있었네요. 철저히 무력한 한 명의 인간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닐 뿐인데 말이죠.


  통제할 수 없는 것들을 겸허히 받아들이는 것은 주도적으로 살기를 포기하거나 최선을 다하지 않는 게 아니었습니다. 오히려 최선을 다하기 위해 할 수 있는 것에만 집중하는 행위이자, 자만하지 않을 수 있는 진정한 의미의 겸손이었어요. 시간이 지나며 경험한 것들이 많아질수록, 감사히도 얻어내어 지켜내야 할 것들이 많아질수록 통제할 수 없는 것들도 점차 늘어나는 것 같습니다. 그런 것들만 바라보며 괴로워 하기보다, 온전히 통제할 수 있는 것들에만 집중하는 것이 건강하고도 주도적인 삶이 아닐까 싶습니다. 그렇게 살아가는 것이 너무 좁게 바라보는 것 아닐까, 사실은 통제할 수 있는데 겁먹고 포기하는 것 아닐까 했던 생각을 버려야겠습니다. 그리고 스스로가 온전히 통제할 수 있는 것들에만 집중해야겠어요. 들이마시고 내쉬는 숨, 먹는 음식과 음료, 내뱉는 말과 보이는 표정, 움직이는 손과 발, 느끼는 생각과 감정, 그리고 누구에게나 공평하게 주어진 지금의 시간. 내가 아닌 다른 것들을 통제할 수 있다는 오만함을 버리고 한 명의 무력한 인간으로서, 겸허하고 가벼운 마음으로 살아갈 수 있도록 노력해야겠습니다.


※ 이 글은 영상으로도 만나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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