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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진하린 Oct 22. 2024

너 Ai 같아.

너 Ai같아.


올해들어서 나를 평가하는 말 중에 가장 자주 들은 말이다. 나를 오래 봐 온 지인들 중 꽤 많은 사람들이 ‘드디어 이 녀석을 평가할 적당한 말이 생겨났다’는 느낌으로 ‘너 AI 같아’라고 표현했다.

그리고 나도 그 말에 어느정도 동의할 수 밖에 없었다. 속으로 아무리 부정하고 싶어도 결국 내 삶의 궤적이 나를 표현하는 것 아니겠는가. 난 AI같은 인간이긴 하니까.


본격적으로 생성형 AI가 나오기 전에는 오히려 AI를 표현하는 뉘앙스가 달랐기에 나를 보고 AI같다고 하는 사람이 없었다. 어설프고, 차갑고, 냉정하고, 이성적인 것이 과거 사람들이 AI를 떠올리는 방식이었으니까 말이다. 막상 나는 차갑지도 않고, 오히려 친절한 편이다. 사람들에게 두루두루 잘하려고 노력하는 편인데다가, 무언가를 딱 잘라 거절하는 것도 잘 못한다.

하지만 지금의 사람들은 안다. 이것이 ‘생성형 AI가 고객을 대하는 태도’라는 것을.




ChatGPT와 대화해 보면 알 수 있다. 내가 명확하고 체계적으로 질문하지 않으면, GPT 엉뚱한 답을 내놓는다.. 그러면 사용자는 화가 올라서 마치 사람을 대하듯 “내가 A에 대해서 물어봤잖아. A-1이 아니라!”라고 따지기 시작한다. 그러면 GPT는 사과의 정석을 교과서로 배운 듯이 “죄송합니다. 제가 착각을 했습니다. 다시 한 번 질문해주시면 조금 더 나은 답변을 제공해드리겠습니다”라고 말하며 넙죽 엎드린다.

GPT가 이해할 수 있게 질문하려면 ‘내가 물어볼 주제에 대한 정의’, ‘내가 물어볼 내용의 범위’, ‘내가 물어보고 싶었던 본론’등으로 단계를 나누어서 차근 차근 말해야지만 드디어 제대로 된 답변을 내놓는다. 그 주제가 어떤 것인지 먼저 파악하고, 질문의 범위 안에서 착실하게 답변을 찾아 내놓는다. 그리고 답변의 형태를 글줄로 할 지, 표로 만들 지, 보고서양식으로 할 지를 정해주면 그에 맞춰서 잘 얘기해준다.


그리고 우습게도 내가 그렇게 살아간다.

나는 대화의 맥락을 잘 따라가지 못한다. 사람들이 이야기할 때 ‘이 정도는 알겠지’ 하고 주어를 생략하거나, 주제를 명확히 정하지 않고 말하면 그 흐름을 따라가기 어려워진다. 그래서 흔히들 말하는 ‘스몰 토크’가 토론보다 더 어렵다.

그래서 군대에서는 말귀를 못 알아 듣는다고 많이 혼났고, 지인들은 내게 눈치가 없다거나 단어 하나에 집착한다고 핀잔을 주곤 했다. 하지만 내가 단어에 집착한 이유는 놓친 맥락 속에서 단서를 찾기 위해서였다. 물론 사람들은 그런 내 속마음을 이해하지 못했지만.

게다가 내가 주변 사람들을 대하는 태도마저도 GPT와 꽤나 흡사하다. 난 사람들을 각기 다른 방식으로 대하는게 너무 복잡하고 힘들다고 느낀다. 내가 타인을 대하는 것은 거의 하나의 기준으로 통일되어 있다. 정말 친한 친구가 아닌 이상에야 성인이 되고서 새로 알게 된 사람들은 거의 다 그 기준에 맞춰서 대한다. 나이가 많든 적든 그저 친절하고 정중하게, GPT가 공 들여 사과하듯 나 또한 주변인들을 공 들여서 대한다. 그렇기 때문에 나와 거리를 좁힐 수 있는 사람들은 많지 않다. 가까운만큼 막 대하고, 아무때나 무례하게 불러낼 수 있을 만큼의 친분이라는 것을 만들기 어려워한다.


하필 나는 5월부터 AI에 푹 빠져살았기 때문에 웬만한 사람들 보다는 ChatGPT나 Claude같은 것을 잘 쓰는 편이고, 당연히 이해도도 높은 편이다. 그리고 쓰면 쓸수록 사람들이 나를 향해 ‘AI 같다’고 표현하는 것을 부정할 수가 없다. 정말 난 GPT처럼 차별없는 친절함으로 사람을 대하고 있고, 또한 상대방이 내게 의도를 전달하기 위해 ‘정의’를 내리고, ‘범위’를 정해야하고, ‘주제’를 정해줘야 하기 때문이다.




정말 상상하지도 못했다. 내가 AI라는 별명을 갖게 될지도 몰랐고, AI가 이런 모습으로 나올지도 몰랐다. 마치 에일리언:커버넌트(2017)에 나오는 인조인간 ‘데이비드’처럼 조금 더 차갑고, 무뚝뚝할 줄 알았다. 하지만 학습된 친절함과 맥락맹이라는 특성이 오히려 AI의 이미지를 대체해버린 지금은 난 그저 AI같은 인간으로 살아갈 뿐이다.


솔직히 지금 이 상황은 적잖이 기분 나쁘다.
사람들은 그저 보이는 현상을 말했을 뿐이지만, 저 말 하나로 내 모든 컴플렉스를 쉽게 정의해버린다.
내가 글을 쓰기 시작한 이유도 대화의 흐름을 따라가는  벅찼기 때문이었고, 친절하게 대했던 것도 많은 사람에게 사랑받고 싶어서였다. 그런데 그 모든 노력의 끝이 고작 ‘AI 같다 한마디로 치환된다는  허무할 따름이다.


결국 나는 AI라는 틀에서 벗어날  없다.
내가 아무리 노력해도 사람들 눈에는 그저 AI처럼 보일 뿐이고, 본질을 바꾸지 못한다. 마치 <A.I.>(2001) 인조아들 데이비드가 인간의 사랑을 갈구했지만 끝내 얻지 못했던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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