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글을 배설하는 사람이었다.
이 무슨 천박한 표현인가 싶겠지만, 내가 글을 쓸 때 느끼는 감정의 상태와 방식, 그리고 결과물을 보았을 때는 이 말 만큼이나 효과적인 표현은 없다는 생각이 든다.
난 어릴적부터 사람들과 대화하는게 어려웠다. 지속적으로 말해왔던 주제이지만, 나는 뉘앙스를 포착하기 어려워하고, 순발력이 없으며, 맥락맹이기 때문에 천천히 시간을 두고 글을 쓰는게 대화보다 훨씬 편했다. 그렇기 때문에 글을 쓰기 시작한 거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감정을 세면대에 물을 담듯이 계속 채우다가 특정한 행위로 해소하는 편이다. 세면대 바닥을 눌러 물을 빼는 사람도 있겠지만, 나는 보통 세면대 수도꼭지 바로 아래 있는 물넘침 방지 홀로 빼는 편이다. 감정이 그 때, 그 때 바로바로 해소되는 사람들과 달리 굉장히 오래 묵혀서 청국장 쉰내가 날 때 쯤에 푸는 것이다. 감정의 신진대사가 느리디 느린 나 같은 사람에게 참 어울리는 방식이다.
내게 있어서 물 넘침 방지용 홀은 ‘글 쓰기’라는 행위 그 자체다. 복싱장에서 샌드백을 쳐도, 친구들과 술자리를 해도 해소되지 않는 그 묵은 감정을 털어내기 위해서는 글 쓰기가 꼭 필요하다. 여행지에서 쉴 틈 없이 먹고 나면, 평소와는 다른 묵직한 똥이 구렁이처럼 나올 때 쾌감을 느끼듯, 나는 글을 배설하면서 해묵은 감정을 해소한다. 그러고나면 그래도 한 동안은 멘탈이 정상화 되는 편이다.
그러다보니, 내가 글을 쓸 때는 작정하고 쓸 때보다는, 정말 화장실 가듯이 마음이 급해졌을 때, 더욱 진심이 담기고, 잠재력이 발휘되는 것 같다. 사람들 보기 좋으라고 문장을 다듬고, 애써서 남들을 납득시키려고 하면 점점 글이 어려워지고 마무리하기 싫어진다. 고작 5000자도 안 되는 글을 하루에도 3-4시간씩 뜯어보면서 일주일 가까이 퇴고를 해도 맘에드는 글이 안 나오는 경우를 많이 겪었다. 배설할 때와는 달리 조각을 빚듯 쓰면 항상 그렇게 스스로를 고문하는 글을 쓰게 된다.
물론, 이런 글들은 일반적으로 사람들이 보기에 호불호가 세게 갈리게 될 거라는 사실을 안다. 날 것의 감정과 투박한 문장들. 도대체가 사람이 왜이렇게 음침하냐 싶을 정도로의 깊고 어두운 내면이 드러나서, 나조차도 다시 읽기 싫다. 그리고 이것마저도 배설과 비슷하다. 자기가 싼 근사한 똥을 두고두고 다시 보고 싶어하는 변태는 거의 없지 않겠는가.
모쪼록 브런치에 쓰는 글을 최대한 보기 좋게, 깔끔하게, 사람답게 써보려 했으나 부담이 커져서 글을 안 쓰게 되었을 뿐이다. 작정하고 쓰면 고민이 길어지고, 변명을 늘어놓다보면 1500자로 끝날 것이 3500자가 된다. 그리고 내가 원래 전하고자 했던 감정은 어느새 부수적인 것이 돼서 중요치 않게 되고, 그저 글을 쓰기 위한 기교만을 고민하는 내가 남게 된다.
아무튼 서두에 말했듯 나는 글을 배설하는 사람이라는 것을 인정하려고 한다.
그리고 당연하게도 앞으로는 조금 더 날 것의 글을 많이 올릴 거다. 물론 인생에 나쁜 순간만 있는 것은 아니니까, 행복한 감정도 날 것으로 적을 날도 있지 않을까?하는 기대감을 품고 말이다.
그리고 이건 글을 쉬는 동안 시작하게 된 새로운 창작활동이다.
https://www.instagram.com/underfoot_illusions/
그냥 현실에 없을 법한 미니어처 디오라마가 나오는게 전부인 채널이지만, 가끔 분위기 환기하고 싶을때 보시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