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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질에 집중하게 해주는 AI편집자

생각과 고민이 너무 많아 도무지 내용정리가 안되는 당신에게.

by 진하린

1. 글쓰기가 어렵게 느껴지는 이유.


지난 화에서 얘기했듯, 글을 쓴다는 것은 단순히 문장을 적는 행위가 아니다. 오히려 머릿속에 떠돌던 막연한 생각들을 차근차근 정리하고, 흩어져 있던 지식들을 체계적으로 연결시키는 창조적 과정이다. 때문에 글쓰기란 직업을 불문하고 누구에게나 필요한, 아니 반드시 갖추어야 할 기본적인 기술이라 할 수 있다. 잘 쓰여진 글 하나가 누군가에게 나를 제대로 보여주고, 더 나아가 내 생각을 명확하게 전달하는 결정적 역할을 한다는 점에서 그 중요성은 이루 말할 수 없다.


그런데 어릴 때부터 꾸준히 글을 써오던 나조차도 시간이 흐를수록 글쓰기가 점점 어렵게 느껴지기 시작했다. 어릴 적에는 단지 내가 전달하고자 하는 주제 하나만 뚜렷하게 정리하면 되었기에 글쓰기가 어렵지 않았는데, 점점 나이가 들고 경험이 쌓이면서 상황이 달라졌다. 내가 아는 것이 많아질수록, 또 겪어본 일들이 풍부해질수록 자연스럽게 글을 쓸 때마다 “이 주제에 가장 잘 어울리는 사례는 무엇일까?” 혹은 “방금 내가 쓴 주장에 논리적 허점은 없는 걸까?”라는 의심과 고민이 끊임없이 떠오르게 되었다.


이런 고민들은 글쓰기 과정에 점점 부담으로 작용했다. 마치 단순하고 그 자체로 균형잡힌 요리에 필요이상으로 향신료와 부재료들을 추가하다가 원래의 맛이 가려지는 것처럼, 글 역시 이것저것 신경을 쓰다 보니 어느 순간 본래의 방향성을 잃고 복잡해지기 일쑤였다. 당연히 이런 난잡한 상태를 고치려고 수정하고 퇴고하는 과정이 반복되면 될수록 글을 쓰는 속도는 느려지고, 그만큼 글쓰기에 대한 스트레스도 늘어만 갔다.






2. 머릿속에서 범람하는 사례들. 그러나 주제를 놓쳐선 안 된다.


사실 초안을 작성할 때는 생각이 물 흐르듯 자연스럽게 이어지지만, 막상 본격적으로 사례를 추가하거나 구체적인 묘사를 넣으려고 하면 꼭 벽에 부딪히곤 한다. 분명 처음에는 간결하고 선명한 글을 쓰겠다고 마음먹었는데, 더 적절하고 흥미로운 표현이나 사례가 계속 머릿속에 떠오르면서 오히려 초안보다 더 길고 복잡한 글이 되고 만다. 결국 양만 많아지고 글의 질은 오히려 떨어지는 악순환에 빠지는 것이다.


4E25504A-37D3-4396-9E91-44914E343AFC.png 수많은 사례들을 결국 정리하지 못해서 보류된 글 중의 하나. 나중에 이 사례들을 다른 주제에서 재활용하게 될 날이 올지도 모른다


글을 쓸 때마다 이것저것 고민하고 생각이 많아지는 걸 보면, 솔직히 내가 글솜씨가 부족하다는 걸 인정해야 할 때가 온 건지도 모르겠다. 생각해보면 글에 대해 더 많이 알게 될수록 오히려 글을 완성하기가 더 힘들어지는 아이러니한 상황이다.

물론 보는 눈이 높아져서 신중하게 고치고 퇴고를 반복하면 어느 정도 그럴듯한 글을 만들어내긴 하지만, 정작 중요한 마감일을 지키지 못하면 그 완성도가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이러한 상황은 마치 근력운동을 배우는 과정과 닮아 있다. 처음 벤치프레스를 배울 때, 가슴 근육에만 정확히 힘을 주어야 하는데, 익숙하지 않다 보니 쓸데없이 팔이나 어깨 같은 협응근에 자꾸 힘이 들어간다. 글도 이와 비슷하다. 본래의 주제에 딱 들어맞는 묘사와 사례들만 사용해 이야기를 직관적이면서도 흥미롭게 풀어가야 하는데, 자꾸만 필요 없는 묘사들이 끼어들면서 글 전체의 흐름과 집중력을 떨어뜨리곤 한다.

물론 쓰면 쓸수록 글쓰기 실력은 자연히 늘겠지만, 본업이 작가가 아닌 이상에야 바쁜 일상 속에서 글쓰기에만 모든 시간을 쏟을 수도 없는 노릇이다. 이 때문에 글쓰기에도 효율적인 도움과 전략이 필요하다고 느꼈다.







3. AI편집자를 두자. 실력은 나보다 못할지언정 객관적이니까.


이러한 어려움을 해결하기 위해 AI를 활용하면, 초안 작성부터 사례와 묘사의 적절한 배치까지 복잡한 과정을 체계적으로 지원받을 수 있다. 예를 들어, 나는 글을 짧게 못 쓰는 병이 있는데, 보통 5000자 정도의 글을 쓰려고 계획하면, 다양한 사례들이 한꺼번에 떠오르면서 7000~9000자에 이르는 초안이 나오곤 했다.

떠오르는 모든 사례와 생각들을 무분별하게 늘어놓다 보면, 글은 마치 너무 많은 간판들이 빼곡히 늘어선 도심 거리처럼 혼란스럽고 어수선해져, 독자는 결국 무엇이 핵심인지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게 된다.


글을 쓸 때 가장 피해야 할 일은 중심 주제를 놓치는 것이다. 하나의 글 내에서조차 주제를 못 지키는건, 아무런 묘사 없는 드라이한 글을 쓰는 것보다 나쁘다고 생각한다. 장식이 없고 무미건조해보이는 글은 차라리 투명하게 주제가 보이기라도 하지, 온갖 수식어로 화려하게 치장해봤자 "그래서 하고 싶은 말이 뭔데?"라는 의문이 나오면 그 글은 망한거니까.


나는 이럴 때 AI를 적극 활용한다. 내 머릿속에 너무 많은 생각이 떠올라서 도저히 노선 정리가 되지 않을 때, 핵심 주제를 담은 시놉시스와 함께, 떠오른 사례들을 제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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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제로는 스크린샷보다 3배는 많은 사례들로 뒤죽박죽 뒤엉킨 초안을 쓰곤 한다.


이렇게 쓰여진 내용을 추론모델인 o1이나, o3-mini-high 등에게 보여주면서, 전체 흐름과 사례들을 엮어 하나의 완성된 글이 될 수 있도록 재구성해달라고 부탁을 한다. 비록 한 번에 내가 원하는 완벽한 답이 꼭 나오는 것도 아니고, 토큰량(AI가 한 번에 대답할 수 있는 응답의 길이를 정한다)의 제한으로 인해 다소 요약된 결과물이 나오긴 하지만, 나보다 읽는 속도가 빠르고 객관적이다.

머리가 쌩쌩하게 잘 돌아가고 집중력이 살아있을 때야, 내가 직접 하는 작업이 훨씬 낫다지만, 퇴근후에 머리가 혼탁해진 상황에서 명료한 정신으로 글을 쓸 수 있는 사람은 많지 않을 거다. 그럴 때 AI편집자가 투입되는 것이다.


물론 위의 예시는 독자분들이 알아보기 쉬우라고 [시놉시스]와 [사례 모음]을 깔끔하게 분리해서 썼을 뿐, 보통은 나는 자연스러운 흐름 하에 초안을 한 번에 쭉 써내려가는 편이다. 문제는 그러다보니 종종 문장의 호응이 정돈되지 않은 비문도 쓰이게 되고, 표현 방식만 다를 뿐 내용은 똑같은 중복되는 표현도 발생한다. 그래서 퇴고가 필요한데, 퇴고의 과정을 AI에게 도움받는거라고 생각하면 된다.

보통은 다음의 내용들을 AI에게 부탁하곤 한다.



내가 제공한 초안을 보고 정리해줘. 내가 원하는 사항은 다음과 같아.

초안에서 작성된 내용 중 주제가 겹치거나 반복되는 표현이 들어가는 문단을 찾아서, 하나로 병합

문장과 문단 사이의 호응이 맞지 않는 문제. 화자의 인칭이 바뀌거나, 문장 처음부분과 끝부분의 주장이 달라질 경우 찾아내고, 올바른 구조로 수정

기승전결에 맞춰 글이 메인 주제를 따라서 직관적으로 쓰여지고있는지 최종적으로 체크, 사례들을 올바르게 배치



내가 직접 차근차근 글을 들여다보면서 어색한 부분을 하나하나 고쳐나갈 수도 있겠지만, 내가 아닌 제 3자의 시선에서 재구성 된 글을 보고있다보면, 내가 미처 생각지 못하고 놓친 디테일들을 비교적 쉽게 찾아낼 수 있다.


다음은 실제로 내가 이번 글을 작성할 때, 활용한 사례이다. o3-mini-high를 활용해서 전체적인 시놉시스에 맞춰 사례들을 적당한 곳에 배치해서 글의 흐름을 구성했으며, 그 흐름에 맞춰 묘사들을 사람의 말투에 가깝게 자연스러운 표현들로 다듬는 것은 GPT 4.5를 활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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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제공하는 [시놉시스]와 [사례모음]을 토대로 그럴듯한 요약본을 제공해줬다.
03-09-2025-23.51.41.png 앞서 나온 내용을 가지고 디테일을 더하는 작업이다. 이걸 뼈대로 삼아 글을 진행하면 시간이 많이 절약된다


스크린샷에 쓰여진 내용을 보면 알수 있겠지만, 실제로 이 글 역시 AI의 도움을 받아, 시놉시스와 사례를 명료하게 정리하고 기승전결을 명확히 나누어 시간대비 글의 완성도를 높여가고 있다.

개인적인 판단일 뿐이지만, 나는 AI가 만든 결과물에는 허점이 많다고 생각하고, 그대로 사용하는 것을 원치 않는다. 그렇지만 AI를 통해서 내가 만들려는 작업의 결과물의 퀄리티를 시간대비 더 좋게 만들 수 있다면 사용하는걸 꺼릴 이유도 없다고 본다.

글을 쓴다는 과정은 범람하는 생각을 붙잡아 하나의 주제로 다듬어나가는 과정이고, 그 과정만 단순화시켜도 엄청난 시간을 아낄 수 있다. 나는 잘 짜여진 뼈대를 토대로 글이 맛있어지도록 마무리작업을 신경쓰는데 집중하면 되는거다.








4. 가장 중요한건 결국 본질에 집중하는 것.


좋은 글을 쓰는 일은 정성을 다해 하나의 요리를 완성하는 과정과 참 비슷하다. 파스타라는 음식 하나를 만들 때에도 면과 소스, 들어가는 건더기까지 여러 요소를 신경 써야 하듯, 글 역시 명확한 메인 주제와 이를 받쳐주는 다양한 소주제들, 그리고 적절한 비유와 묘사로 이루어진다. 단순히 재료만 있다고 해서 맛있는 파스타가 되지 않듯이, 글 또한 요소들의 섬세한 균형과 조화가 있어야만 완성도를 갖추게 된다.


글쓰기를 파스타 만들기에 비유해 보면, 주제는 파스타 그 자체다. 예컨대 알리오올리오, 토마토 파스타, 까르보나라 등 다양한 종류의 파스타가 있듯이 같은 주제라도 소주제와 표현방식에 따라 글이 풍성해지고 개성 있게 변화할 수 있다. 파스타의 면을 우리에게 익숙한 스파게티면으로 선택할지, 짤똥한 펜네로 할지 결정하는 과정과 마찬가지로, 글의 소주제나 예시를 선택하는 것도 그 결과물을 크게 좌우한다.

하지만 파스타를 요리할 때 면을 꼭 7분 삶아야 할지, 소금을 얼마나 넣어야 하는지, 올리브 오일의 양은 어느 정도가 적당한지와 같은 세부적인 사항들에 집착하다 보면 본질적인 맛을 잃어버리고 정작 요리의 핵심이 흐려지기 쉽다.


이러한 맥락에서, AI는 요리를 완성한다는 본질적인 목표에 집중할 수 있도록, 세부적인 디테일에 대한 신경을 덜 쓰게 만들어준다. ‘면을 정확히 몇 분 삶아야 하는지’, '올리브유는 엑스트라 버진을 사용해야하는지', ‘소금은 암염이 좋은지, 천일염이 좋은지’와 같은 소소한 부분에서 오는 고민을 과감히 덜어버릴 수 있다.

물론, 모든 디테일을 직접 손으로 처리하지 않으면 안 된다고 생각하는 장인이라면 다른 얘기겠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기본적인 구성요소가 깔끔하게 정리되어 있을 때, 오히려 소스의 풍미를 높이는 법이나 새우, 베이컨, 마늘 같은 건더기 재료들처럼 직접적으로 맛을 크게 좌지우지하는 요소에 집중하는 것이 더욱 효율적일 것이다.


AI의 도움을 받는다는 것은 결국 기본적인 글의 구조와 사례 배치를 AI에게 맡기고 작가는 더욱 창의적인 부분에 집중할 수 있다는 의미다. 이는 단순히 빠르게 글을 완성하는 차원을 넘어, 시간을 아끼고 그 시간 동안 글의 묘사나 표현을 더욱 세밀하게 다듬는 데 집중하는 것이다. 초안을 작성한 후 수없이 글을 퇴고하며 고민하는 시간은 AI에게 맡기고, 인간은 더욱 본질적이고 창의적인 아이디어를 탐구하는 데 집중할 수 있다.

AI의 도움을 받아서라도 머릿속에 있는 창의적이고 멋진 생각들을 더 많이 끄집어내서 더욱 완성도 높고 흥미로운 글들을 창작하는 일이, 오히려 사람이 자신이 가진 잠재력을 더욱 더 많이 끌어낼 수 있는 방법이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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