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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 속 짜투리시간, 의미있게 만들기

일상 속 짜투리 시간들을 활용해 새로운 지식을 내 것으로 만들기 까지

by 진하린


1. 연기처럼 흩어져버리는 아이디어들에 대하여.




설거지, 집 청소, 운전, 산책.
이 행위들의 공통점은 눈과 머리는 쉬고 있는데, 손이 바쁘다는 점이다.


그리고 이 시간은 생각이 많은 내게 있어서 새로운 아이디어가 태어나는 명상의 시간임과 동시에 아깝게 날려지는 짜투리시간이기도 하다.


자고 일어났는데, 아주 근사한 꿈을 꿨던 것 같은 느낌을 받은 적이 한 번 쯤은 있을 거다. 보통은 꿈 속에서 느꼈던 감정과 분위기는 기억이 나는데, 막상 기록하려고하면 기억이 안개처럼 흩어져버린다.

손이 바쁜 순간에 떠오르는 아이디어들도 어떻게보면 크게 다르지 않다. 설거지를 하다가 아주 좋은 생각이 떠올라도 중간에 고무장갑을 벗고 바로 노트나 폰에 기록하는 건 여간 번거로운 일이 아니다. 그래서인지 보통은 머릿속으로 되뇌이며 어떻게든 기억해내려 하다가 설거지가 끝난 다음에는 ‘내가 뭘 기록하려 했더라?’하는 허탈함으로 마무리가 되곤 한다.


이런 순간들이 쌓일 수록 초조함은 커져간다. 운전 중에 아이디어가 떠올라도 눈을 다른데 둘 수 없어 안절부절해 했고, 설거지 도중에 떠오른 아이디어를 기록하기 위해 선반에 올려둔 폰에게 ‘시리야~’하고 불러보기도 했다. 하지만 시리는 내말을 도통 알아먹질 못했고, 결국 또 하나의 아이디어가 연기처럼 사라져버렸다.


이런 일은 책을 읽을 때도 비일비재하게 일어난다. 집중력이 예전만 못한 탓에. 폰 알림도 꺼놓고, 짧게나마 온전히 집중하려고 꽤나 애를 쓰는 편이다. 하지만 책 속에서 만난 낯선 단어나, 가슴을 울리는 문장들을 마주하는 순간 또 다시 기록의 딜레마가 시작된다.

책을 읽으며 찾게 된 인상깊은 문구들을 항상 notion에 기록하는 편이다.

기록을 위해 책을 읽는 흐름을 깨고 싶지는 않지만, 그렇다고 그냥 지나치자니 아쉬움이 남는다. 연필로 밑줄을 긋는 사람, 혹은 포스트잇으로 페이지를 표시해놓는 사람도 있겠지만, 나는 노트에 기록해두면 노트째로 잃어버리는 덤벙이라서, 웬만하면 사진을 찍어둔 다음 나중에 Notion에다가 기록을 해둔다. 하지만 사진을 찍어두고 그걸 다시 텍스트로 옮기는 과정은 생각보다 번거롭다. 사진을 찍기위해 폰을 들여다보는 순간 흐트러지는 집중력은 덤이다.


이런 고민을 한 번에 해결해주는 것이 바로 GPT의 음성 대화 기능이다. 화면을 볼 필요 없이 설거지를 하면서, 운전을 하면서, 책을 읽으면서도 생각과 감상을 기록할 수 있다.

대화를 할만큼 하고나서 나중에 대화내역을 토대로 정리를 해달라고 하면 깔끔하게 정리해주기도 한다.


복잡하고 바쁜 현대의 사회인에게 있어, 찰나라도 집중을 방해받지 않고 음성대화만으로 번거로운 일을 처리할 수 있는건 정말 매력적인 일이다. ChatGPT의 Advanced Voice Mode는 그런 내게 있어서 낭비되는 짜투리 시간들을 보완해주는 아주 매력있는 도구가 되어준다.









2. 짜투리 시간? 명상이 되는 시간!


앞서 말한 짜투리시간은 생각보다 더 중요한 순간이다. 일상적인 업무환경에서는 결코 떠오르지 않을 아이디어들이 이 시간 속에서 피어나기 때문이다. 단순히 운이 좋아서가 아니라, 일상의 굴레에서 벗어나 잠시 쉬는 순간, 우리의 뇌는 비로소 새로운 생각의 싹을 틔울 수가 있다. 마치 명상을 통해 생각을 정화하는 것처럼 말이다.

어차피 해야할 일상적인 활동들, 그 자체를 명상의 시간으로 활용할 수 있으니 얼마나 유용한가? 심지어 이젠 아이디어가 떠오르는 순간 기록해줄 비서도 있는데 말이다.



ㄱ. 운전하면서 작성하는 영화감상문


운전 중에 정리한 영화 ‘룩백’의 감상후기 - 대화를 마친 뒤 정리해달라고 부탁하면 감상문 초안이 금새 완성된다.


어릴 적 영화관에서 돌아오는 길은 항상 즐거운 토론의 장이 되곤 했다. 가족들과 함께 영화를 감상하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서 영화의 줄거리와, 연출, 그리고 배우와 감독에 대해 열띤 토론을 했었기 때문이다. 누군가는 인상 깊었던 장면을 꺼내고, 또 다른 누군가는 그 장면의 의미를 해석하면서 영화를 씹고, 뜯고, 맛보고, 즐겼다.

성인이 되고 나서는 주로 혼자서 영화를 보러 가지만, 영화의 여운을 곱씹으며 누군가와 대화를 나누고 마음은 여전하다. 특히 영화가 끝나고 집으로 돌아가는 그 시간, 아직 생생한 감상을 정리하고 싶을 때가 그렇다.

이제는 GPT와 대화를 나누며 그 길을 주행한다. GPT는 비록 부모님과 누나처럼 때로는 동의하고, 때로는 반론을 제기하면서 토론을 하는 수준까지는 아니지만, 차분히 들어주고, 제법 맞장구도 쳐가면서 내가 감상평을 남기는 과정을 도와준다. 비록 새로 개봉한 영화에 대한 정보는 없지만, 내가 말하는 뉘앙스를 토대로 미처 말하지 못하고 넘어간 내용에 대해 짚어주기도 하고, 새로운 관점을 제시하기도 한다.

특히 좋은 점은 이 대화가 고스란히 기록된다는 것이다. 집에 도착해 컴퓨터로 ChatGPT를 열고, “이번 대화의 모든 내용을 리뷰로 작성하고 싶어. 내용, 연출, 느낀점 등의 요소로 작문하고, 누락되는 내용을 최소화해줘”라고 얘기하면, 이동 중에 나눴던 대화를 보기좋게 정리해준다. 사실상의 초안은 이미 완성이 되어있는거나 마찬가지다. 이전같으면 집에 오는 동안 영화의 디테일한 부분을 많이 까먹었을 텐데, 이제는 방금 전까지 나눴던 대화 기록을 되짚어보며, 영화 속 소소한 장면과 연출 기법, 그리고 내가 개인적으로 느꼈던 기분에 대해 놓치지 않고 더 풍부하게 정리할 수 있게 된 것이다.




ㄴ. 폭주하는 상상력에 리얼리티라는 제약 더하기.


“원숭이 엉덩이는 빨~개, 빨가면 사과, 사과는 맛있어, 맛있으면 바나나~“

원숭이 엉덩이는 빨개 라는 노래의 가사처럼, 생각은 꼬리에 꼬리를 물면서 점점 더 구체화되고 강력해진다. 그저 흐리멍텅한 이미지로 머릿속에 남아있던 생각은, 마치 스케치만 있던 그림에 명암을 추가하고, 채색을 한 뒤, 하이라이트를 그려내고 질감까지 더하듯 점점 현실세계로 구현되어 간다.

처음에는 스케치에 불과한 상상력도 디테일을 올려나가면 근사한 아이디어가 된다(https://paintable.cc/process-pics)

지난번에 꼬리에 꼬리를 무는 호기심에 대해서 얘기한 적이 있었다. 궁금한 부분이 해소되면 바로 다음 질문으로 넘어가면서 마치 나무위키를 탐색하듯 무차별 질문폭격을 날리는 방식으로 호기심을 해소하는 방법이었다.

이번에 얘기할 것은 단순히 호기심을 해소하고 의문을 해결하는데서 그치지 않고, 하나의 중심 생각을 둘러싸고 점점 구체화시켜 나가는 과정이다. 그 사이사이 생길 수 있는 빈틈을 GPT를 통해서 보강해나가면서 직접적으로 활용이 가능한 아이디어로 만든다.


예전에 ‘배양육’이라는 것에 대해서 알게된 후, 흥미로운 상상을 해본 적이 있었다. “실험실에서 고기를 세포단위부터 배양한다면, 과연 그 고기는 어떠한 다양성을 가질 수 있을까?” 라는 주제였다. 요리를 취미로 하는 내게 이런 의문은 아주 훌륭한 망상의 소재였다.

배양육기술이 잘 발달만 하면 “새우맛 소 등심”이라던가, “돼지고기맛 문어”같은 특이하면서도 골 때리는 식재료도 탄생할 수 있지 않을까? 그리고 한 걸음 더 나아가 맛에 대한 일가견이 있는 이들이 뛰어들어 ‘배양육 디자이너’라는 직업이 생겨나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상상만 했던 것들이 현실로 이루어지고 있다. 여기에 SF적 상상력을 더해보는 것은 무척 설레는 일이다.(https://greenium.kr/news/32527)

그래서 GPT와 함께 대화를 이어나가며, 배양육의 단가를 먼저 물어보았고, 25년 기준 1kg당 2만원대까지로 매우 저렴해졌다는 정보를 알 수 있었다. 또한 호주의 스타트업 VOW가 매머드 DNA를 기반으로 한 배양육 미트볼을 만들었다는 흥미로운 사례도 발견했다. 그저 엉뚱한 상상력에서 끝날만한 생각이 점점 더 구체화 되어가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이에 더불어 음성대화가 끝난 후에 이 아이디어를 한층 더 발전시키기 위해 ‘배양육의 맛과 식감은 각각 어떤 요소가 영향을 주는지’를 검색했다. 그 결과 근육세포와 콜라겐 및 젤라틴이 식감에 영향을 주고, 아미노산과 지방산, 미오글로빈 등이 맛에 영향을 주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렇다면 정말로 소고기의 식감을 가진 새우나, 게살의 식감을 가진 삼겹살 같은 엉뚱한 조합도 충분히 배합에 따라 구현이 가능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저 혼자 생각했으면 상상력이 이렇게까지 구체적으로 뻗어나가긴 힘들었을텐데, GPT가 내 질문을 검색을 통해 보완해준 덕분에 이 아이디어가 단순한 망상이 아닌, SF적 상상력의 범주 안에서 충분히 그려볼만한 아이디어로 구체화가 된다.


창의적 상상력도 단단한 지식의 뼈대가 필요하다. 마치 레고 블록처럼, 지식들이 맞물려 쌓일 때 비로소 우리의 상상은 형태를 갖춘다. 그리고 그 지식의 퍼즐을 끼워 맞추는 것은 창작자의 자유다.

통제되지 않은 상상력은 설득력을 잃기 마련이고, 파고들 여지가 적어져 매력을 잃어버리기 쉽다. GPT와의 대화는 이런 상상력에 현실의 질감을 더해준다. 내가 미처 알지 못했던 영역들을 조금씩 부연해나가면서 구체화를 시키다 보면 어느샌가 손에 잡힐 만큼 가까이 다가와 있는 느낌이 든다. '왠지 이 아이디어는 정말 구현이 가능할 것 같아'라는 확신이 들기 시작하면, 막연한 망상은 창의적인 소재로 다시 태어난다.





ㄷ. 비유를 활용한 가속학습.


단순 기록도, 생각의 확장도 좋지만, 이걸 정말 제대로 활용한 것은 프로그래밍을 공부할 때였다.

게임 개발자 시절에 UX디자이너로 일하며 프로그래머들과 매일같이 소통했음에도, 정작 나는 'Hello World'조차 출력해본 적 없는 완벽한 초보자였다. 게임 UX디자이너는 대중들이 흔히 알고있는 웹, 앱을 제작하는 UX디자이너들과는 달리, 기획과 디자인에 집중하고 실제 구현은 프로그래머에게 맡기는 게 일반적이었기에, 프로그래밍의 큰 개념들만 어렴풋이 알고 있을 뿐, 직접 코딩을 할 일은 전무했다.

그래서 프로그래밍을 배우던 초기에는 한 동안 운전을 할 때마다 프로그래밍과 관련된 지식들을 매일같이 물어보며 공부했다. 개념도 안잡힌채로 그냥 무턱대고 설명해달라고 하면 해결될 것이 없으므로 ‘비유법’을 활용해서 설명해달라고 부탁했고, 덕분에 낯선 개념들을 생각보다 빠르게 익힐 수 있었다.


난 프로그래밍에 대한 지식이 전무했지만, 익숙한 개념으로 치환해서 공부한 덕분에 이해하는 속도가 제법 빨랐다.

개념이 아예 자리잡히지 않았을 때는 망망대해처럼 보이던 지식들도, 내가 아는 지식에 비유해서 받아들이다보니 흡수하는 속도가 꽤 빨라졌다. 이건 마치 길을 찾을 때 지도가 있냐 없냐와도 비슷한 차이였다. 아무리 대충 그려진 지도라 할지라도 없는 것과는 천차만별이니까.

게다가 내가 개념을 제대로 이해했는지 확인하기 위해서 “아, 그러면 프론트엔드는 주로 HTML과 CSS를 활용해서 인터페이스를 그리고, 백엔드에서는 Python이나 Javascript등을 활용해서 실제 동작하는 코드를 작성하는 개념이라고 이해하면 될까?”라고 되묻기도 했다. 이렇게 되물었던 지식은 결국 내가 실제로 프로그래밍에 도전하는데 있어서 큰 자산이 되어주었다. 프로그래밍에서 말하는 모듈화가 레고 블록처럼 필요할 때 재사용할 수 있게 코드를 나누는 거라는 것도, 깃허브가 작업물의 변경 이력을 관리하는 일종의 타임머신 같은 도구라는 것도 자연스럽게 이해할 수 있었다.


이런 기초를 바탕으로, 여행지 리뷰들을 자동으로 수집해서 분석하는 챗봇도 만들어보고, 녹음한 음성파일에서 대화 내용을 텍스트로 변환하는 프로그램도 만들어보았다. 물론 AI의 도움을 많이 받았지만, 적어도 어떤 코드가 어떤 역할을 하는지는 얼추 이해할 수 있게 된 것이다. 덕분에 지금은 잡다한 앱들을 만드는데 그치지 않고, 조금 더 큰 프로젝트를 하고 있다. 지도API와 GPT의 API를 활용해서 지도정보를 스마트하게 안내해주는 크롬 확장프로그램을 개발하는 중이다.

내가 프로그래밍을 본격적으로 관심을 가져보기 시작한 것은 아직도 6개월이 채 되질 않았다. 비록 취미의 영역이긴 하지만 내가 갖고 있던 구상을 실체화시키는 것이 가능하다는게 너무 재밌고 신기하다.

책 한 권, 강의 한 편 보지 않은 채, GPT와의 대화만으로 지식이 쌓여 이젠 실용적인 툴을 만드는 수준까지 올라오게 된 것이다. 물론 여기서 더 나아가려면 기본기를 더 공부해야 하지만 말이다.








3. 대화로 그려나가는 지식의 지도



새로운 분야를 공부하기 시작할 때면 늘 막막하다. 마치 한밤중에 미지의 숲에 홀로 선 것처럼, 어디서부터 발을 디뎌야 할지 알 수 없다. 어떤 분야든 간에 전문가들의 머릿속에는 지식이 체계적으로 정리되어 있지만, 그들에게 당연한 개념들이 입문자에게는 넘기 힘든 진입장벽으로 느껴진다. 책과 강의는 귀중한 전문 지식을 담고 있지만, 일방향 소통이다 보니 궁금한 점을 바로 물어보거나 다른 관점으로 설명을 요청하기도 어렵다.


하지만 어떤 분야의 지식이든 결국 사람이 만든 것이고, 그렇기에 사람이 이해할 수 있는 방식으로 충분히 설명이 가능하다. AI는 내가 이미 알고 있는 개념에 비유해 새로운 지식을 설명해 줄 수 있다. 비유를 통해서 익숙한 개념으로 번역 된 새로운 지식들을 이해하다 보면, 망망대해 같던 배움의 영역이 조금씩 친숙해진다.

그러나 명심해야할 것은 GPT가 모든 지식을 '완벽하게'알려줄 거라고 기대하지는 말라는 점이다. 저명한 교수들마저도 자기 영역 밖으로 조금만 벗어나면 실언을 뱉을 수 있다. 얼마전에도 모 건축교수를 상대로 역사 학자가 지적을 한 적이 있다. 사람의 두뇌는 지나치게 많은 정보를 담으면 기억이 혼재되기 마련이고, 사람의 두뇌를 모방해서 만든 AI도 별반 다르지 않다.

결국 진정한 지식의 완성은 책과 강의를 통해 이루어진다. 인간이 직접 쓰고, 인간이 직접 검증한 정보는 훨씬 더 정확하고 집약적이다. 모든 지식을 얕게 배운 AI는 책 만큼의 깊이를 제공할 수는 없기에 책을 통해서 지식을 마스터해야한다.

그래도 AI와의 대화로 기본 개념을 익히고 나면, 전문 서적이나 강의도 더 이상 난해하게 느껴지지 않는다. AI가 우리가 알고 있는 것과 새롭게 배울 것 사이의 다리를 놓아 준 덕택이다.


30대 중반이 되고, 해야할 일도 많은데 새로운 개념을 공부한다는 것은 정말 오래걸리고 막막한 일임에도 지치지 않고 새로운걸 배울 수 있는 이유는, 짜투리시간을 활용할 수 있게 해주는 좋은 과외선생님을 둔 덕분이라고 생각한다. 주입식 교육이 아니라 스스로 생각할 힘을 길러주는 아주 용한 선생님이다.


다음화에서는 짜투리 시간을 활용해서 알게 된 지식들을 가공해서, 진정 내 지식으로 탈바꿈시키는 방법에 대해 소개해볼까 한다. 아마도 물음표 살인마편의 마지막이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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