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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잘딱깔센'을 바라지 마라.

by 진하린



1.사람들이 AI에게 모호한 질문을 던지는 이유



“오빤 내 맘 몰라?”


종종 스케치코미디 등에서 희화화되곤 하는 이 한마디는, 자신의 의도를 명확하게 전달하지 않으면서도 상대방의 이해를 바라는 안일한 태도를 비꼴 때 많이 인용된다.

흥미롭게도 이는 오늘날 AI에게 질문하는 많은 사람들의 태도와도 유사하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AI에게 질문을 하면서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 어떤 맥락과 배경을 갖고 있는지 전혀 공유하지 않는다. 그저 아서 , 끔하게 스있게 해주겠지”라는 막연한 기대감으로 질문을 던진다.

그러나 이건 사실 본인이 뭘 궁금해하는지조차 잘 모르기 때문에 발생하는 현상이기도 하다.



디자이너로서 클라이언트의 의견을 묻다보면, 굉장히 모호하고 피상적인 요구사항을 많이 듣게 되는데, 처음에는 이를 단순히 의사소통의 문제라고 생각했었다. 하지만 여러 외주를 받아보면서 ‘사실은 클라이언트도 자신이 원하는게 무엇인지 정확히 모르는게 아닐까’라는 생각이 점차 강해졌다.

클라이언트들의 머리에는 개념들이 아주 모호한 형태로 둥실둥실 떠다닌다. 모던하고 세련되면서도 동시에 클래식한 기품이 함께 느껴지길 원하기도 하고, 화려한 이미지면서도 의미전달이 확실히 되길 원한다. 그러면서 왜 이런 참신한 아이디어를 사람들이 생각하지 못했을까? 의아해한다.

각 개념들이 시각화할 때 어떤 부분이 시너지를 일으키는지, 어떤 부분이 상충되는지에 대한 것을 따로 훈련해본 적이 없으니까, 일단 요구사항을 던지고 보는거다. 그리고 당연하게도 정제되지 않은 생각은 정제되지 않은 질문을 낳을 수 밖에 없다.


그래서 무슨 말을 하고 싶은 거냐? 결론은 ‘질문하는 법’에 대해서 먼저 개념적으로 짚고 넘어가자는 얘기다. 자기 머릿속에 있는 것도 제대로 모르는데 어떻게 좋은 질문을 할 수 있겠냐는 거다. 생각해보면 한국 사람들은 머릿속의 개념을 시각화하는 것도 서툴고, 질문하는 것도 서툴다. 멍 때리면서 머리를 정리하고 있으면 ‘저 인간 하는 것도 없이 멍때린다’며 바보취급 당하고, 학창시절에 손 들고 질문하면 ‘수업시간 쓸데없이 늘리네’하면서 욕먹고, 회사에서 상사에게 궁금한거 대놓고 물어보면 욕먹을까봐 눈치만 살금살금 보면서 행동하던게 일상 아니었던가?


그러니까 AI에게 질문할때도 자기가 처해왔던 사회적 맥락에서 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맨날 눈치보느라 남들에게 제대로 요청하거나 질문하는 방법도 모르고 스스로에 대한 고찰도 안 해봤으니까.








2. AI 사용자에게 눈치는 쓸모없는 개념이다.




우리는 AI에게 말을 걸 때 종종 중요한 사실을 잊곤 한다. AI는 분명 세상의 수 많은 지식을 학습했지만, 딱 하나 모르는 것이 있다면, 그건 ‘당신’에 대한 신상정보와 맥락이라는 사실 말이다.

생각해보면 우리는 일상에서도 이런 실수를 종종 한다. 회사에서 쓰는 전문용어, 취미 모임에서 쓰는 은어를 다른 지인들한테 써봤다가 어색해진 경험, 한 번쯤은 있지 않은가? 이런 실수를 하지 않으려고 우리는 '눈치’를 본다. 상황에 맞게 말을 골라 쓰고, 때로는 아예 설명을 포기하기도 한다. "어차피 설명해도 이해 못할 텐데" 하면서 말이다.

이런 '눈치'는 사람과의 관계에서는 꽤 유용하다. "목 말라"라는 세 글자만으로도 물 한 잔을 얻어마실 수 있으니까. 눈치 빠른 친구는 이 말만 들어도 "아, 물을 따라줘야겠다"는 생각까지 하게 되는 거다. 하지만 AI는 이런 눈치 게임을 전혀 모른다.


이런게 귀찮다는 생각이 들 수 있다. 우리가 습관적으로 생략하고 있는 그 모든 맥락을 하나하나 설명해줘야 하니까.

당신이 디자이너라면, 먼저 AI에게 "나는 디자이너야"라고 말해줘야 한다. 개발자라면 "나는 개발자고, 이런 문제로 고민하고 있어"라고 설명해야 한다. 분명 AI는 각 직군에 대한 기본 지식은 가지고 있다. 하지만 당신이 그 중 어디에 속하는지는 모른다. 우리가 습관적으로 '눈치껏' 설명을 생략해오던 이 부분을, AI에게만큼은 꼭 짚어주고 넘어가야 하는 거다.


앞서 말했던 "목 말라"를 예시로 왜 구체적인 맥락을 제시하는 것이 필요한지 예를 들어보고자 한다.

"목 말라"라는 말을 하면, 사람은 ‘상대방에게 수분 보충이 필요한 상황이구나’하면서 물을 자연스럽게 따르도록 유도할 수 있다. 그러나 목이 마르다는 것과 물을 따르는 것 모두 엄청 복잡한 세부과정이 들어가있는 일들이고, 그 중에서 ‘물을 따르는 행위’를 다음과 같이 분석해볼 수 있겠다.



‘물을 따르다’

물병이 냉장고에 들어 있고, 물컵이 찬장에 놓여있다. -> 물컵을 테이블 위에 놓고, 냉장고 문을 열어 물병도 꺼낸다.

물병의 뚜껑을 돌려서 물병의 입구를 연 후, 테이블 위에 놓여있는 물컵의 입구쪽에 맞춘다.

물병의 입구가 컵과 맞닿은 상태에서 물병의 각도를 기울여 컵으로 물이 쏟아지게 만든다.


이 외에도 물병의 높이는 컵보다 위여야한다는 조건과, 너무 각도를 심하게 바꾸면 물이 넘친다는 것과 여러가지 주의사항을 생략했는데도 상당히 많은 과정이 필요하다. 상식이라는 명분아래 생략된 조건이 얼마나 많은지 보이는가?



https://youtu.be/cDA3_5982h8?si=fn-wmygXI9lC_BNF

땅콩버터 샌드를 만들면서 아이들에게 프로그래밍 방법을 알려주는 영상. 우리가 당연하게 하는 행동들에 생략된 말들이 얼마나 많은지 느낄 수 있다.



이 과정을 보고나서 그동안 AI에게 해왔던 질문이나 요청을 떠올려보라. 물 따르는 것, 빵에 잼 바르는 것 하나에도 저렇게 많은 과정이 들어가는데, 본인은 AI에게 설명하는 것에 있어서 얼마나 성실했는가? 눈치껏 알아듣기를 바란 적은 없었는가? 그리고, 본인이 요청하는 바에 대해서 본인 스스로는 얼마나 잘 알고 있었는가?








3. 그래서 넌 AI에게 처음부터 명령을 잘 했는가?


그렇지는 않다. 나도 처음에는 이 녀석에게 시시콜콜한 질문 던지는 것부터 시작했다. 사람들 다 그랬듯이 그냥 새롭게 나온 AI도 ‘시리’나 ‘구글 어시스턴트’, '빅스비’같은 유사 AI 수준인줄 알았던 거다. 다른 글에서 서술하겠지만, 나는 취미로 IOT(스마트가구)를 세팅했었고, 그 경험으로 인해 허접한 유사 AI들이 얼마나 말귀를 못알아먹는지 경험으로 알고 있었던 것이다.


이녀석들은 정해진 패턴대로만 작동하기 때문에 ‘불 켜줘’는 알아듣지만 ‘불 켠 뒤에 5분뒤에 TV도 켜줘’같은 문장만 만들어도 이해를 못할 정도로 수준이 낮았다. 마치 강아지한테 손! 앉아! 기다려!는 시킬 수 있어도, ‘잘 거니까 방문닫고 불 끄고 침대위로 올라와’를 시킬 수 없는 것과 비슷한 느낌이었다.

그런 수준낮은 가짜AI에 비해서 새로나온 GPT니 제미나이니 하는 것들이 좋아져봐야 얼마나 더 좋겠나 싶었던 거다.


하지만 시간이 좀 흘러 프로그래머들이 코딩을 AI의 도움을 받아서 한다느니, 데이터를 다루는 사람들이 복잡한 반복 작업을 AI에게 맡겨 빠르게 해결한다느니 하는 것들을 보고, 나도 조금씩 진지하게 받아들이기 시작했다. 바로 내 업무에 사용할 수는 없을지라도 어떻게든 사용하다보면 더 좋은 질문을 하는 방법이 생각날 거라 믿고 열심히 대화를 주고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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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PT와 Claude 둘 다 사용하는 편이지만, 과거 자료가 있어서 Claude예시를 가져왔다.

나 역시 처음에는 내가 비판하는 다른 사람들처럼 허접한 질문부터 했다.

아무래도 내가 원하는 조건이 뚜렷하게 주어지지 않다보니 이것 저것 제시는 많이 해주지만 정작 내가 직접 취해야할 정보는 많이 나오질 않는다. 내가 어디 사는지에 대해서도 AI는 모르기 때문에 부산까지 가는 대중교통 대신에 부산 내 교통시스템을 알려주는 상황도 나오고 말이다.



결국 좋은 질문이란 AI에게 역할을 부여하고, 그 다음에는 내가 원하는 것이 정확히 무엇인지 정의내린 뒤, 목적을 말하는 거다. 그리고 그 목적에 대해서도 최대한 다른 결과가 나오지 않도록 변인을 통제하기 위해서 원하는 조건들을 리스팅 하거나, 대괄호를 쓰는 등의 강조표현을 해서 모호함을 줄이고, 점수할당이라는 꼼수를 쓰기도 한다.

다음은 내가 AI에게 부탁할 때의 기본적인 질문의 형태다. 처음부터 이렇게 길게 질문하진 않았지만, 쓰면 쓸수록 첫 질문의 퀄리티가 중요하다는 것을 깨달아서 점점 자세하게 다듬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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좌 Claude, 우 GPT. 양 쪽 서비스를 다 쓰지만, 어떤 서비스든간에 맥락은 중요하다. 조건이 자세할수록 답변의 품질은 올라간다.


부산여행 사례는 가상으로 만든 사례지만, 우측의 일본여행 관련 자료는 실제로 작년 초에 활용했던 자료다. 덕분에 숙소를 정하는데 들이는 시간을 대폭 줄일 수 있었다. 의도가 뚜렷하고 목적이 확실하며, 내가 뭘 원하는지 명확하게 알고 있을 때, AI는 최적의 결과를 제공한다.

비록 질문할 때 쓰는 과정이 고통스럽더라도 헛방을 몇 번 보고나면, 잘 만들어진 질문 하나가 의미없는 질문 5개보다 낫다는 것을 바로 느낄 것이다.



물론 매번 질문을 이렇게 견고하게 구성하는 것은 쉽지 않다. 나도 꽤 오랫동안 훈련해왔지만 모든 질문을 다 쓰게 되면 500자는 우습게 넘어가는 상황이 나오는 바람에 내 질문에 내가 지칠 때도 있다.

그럴 경우에는 질문을 주거니받거니 하면서 어느정도 맥락을 만든 다음에 대화중에 나온 [조건], [정의]에 대해서 다시한번 상기시켜주면서 질문을 하기도 한다. AI가 한 번에 기억할 수 있는 맥락은 어느정도 한정되어있기에 너무 티키타카가 길어지면 좋지 않지만, 일정 범위 내에서는 굉장히 탁월한 효과를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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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부터 질문할지 막막하면, 어떻게 질문하면 좋을지 물어보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마치 스무고개 놀이를 하듯이 티키타카를 하다가, 마지막에 본론을 꺼내는 느낌으로 진행한다면, 이전보다 훨씬 AI가 괜찮게 반응할 거다. 그리고 방금 내가 주고받은 내용을 통해서 역으로 질문을 구성해달라고 말할 수도 있다.



결국 중요한 점은 AI와 대화할 때 필요한 건 알아서 눈치껏 잘하길 바라지 않는 자세다.

내가 원하는 것이 뭔지 또렷하게 알거나, 알려고 노력하는 자세. 그리고 AI에게 올바른 추론을 맡기기 위해서 추가적인 정보를 제공하려는 성의를 가지고 친절하게 내 조건을 모두 설명해놓으면, AI는 그 조건의 퍼즐들을 잘 짜맞추고 최대한 좋은 결과를 내놓으려고 노력한다.










4. 왜 AI 얘기를 하면서 자꾸 눈치 얘기를 하나?


2024년 한 해 동안, 나는 AI에 대한 잘못된 방향의 기대감과 그로 인해서 실망한 많은 사람들의 평가를 마주쳤다. AI가 할 수 있는 일과 없는 일을 구분하기 힘들어하는 것 자체는 그래도 이해할만 했다. 나도 AI 전문가가 아니고, 초반에 많이 헤맸으니까. 하지만 주변 사람들에게 AI활용법을 공유하기 위해 단톡방도 파보고, 이야기도 나눠보면서 더욱 더 근본적인 부분에 대한 분석을 할 수가 있었다. 사람들이 그냥 질문하는 법 자체를 잘 모른다는 사실 말이다.


그동안 AI 관련된 컨텐츠나 설명서들을 보면서 나도 많이 배웠고 공감하는게 많았지만, 근본적인 물음을 던지는 내용은 거의 없었다. 그래서 내가 첫 화를 이 글로 선정한 것이기도 하다. ‘질문’이란 대체 무엇일까? 그리고 과연 사람들은 AI뿐만 아니라 그저 자기 자신이 뭔가를 궁금해할 때 질문을 제대로 만들 능력이 있는가? 일상 영역에서 부하직원에게, 지인에게, 선생님에게 자신이 궁금해하는 것을 제대로 정돈해서 질문하는 사람의 비율은 얼마나 되는가?

img.png 눈치보여서 질문 하나 제대로 못하는 세상 아니던가(https://uncompress.tistory.com/129)

내가 봐 온 현실은 씁쓸했다. 나는 작은 인디게임팀의 개발자였기 때문에 눈치 볼 필요 없이 동료들과 질문을 주고받으며 성장할 수 있었다.

하지만 다른 회사를 다니는 지인들은 신입 때 본인이 헤매던 것을 까먹었는지, 후배들이 질문하는 걸 “요즘 애들은 알아보려는 노력도 안한다”며 귀찮아하기 일쑤다. 그러면서 본인은 상사 눈치가 보여 질문을 못한다고 하소연한다.

의사소통이 전면적으로 막혀있는 이딴 사회에서 누가 자기 생각을 다듬고 정돈하려고 할까? 그리고 인격이 있는 사람에게도 요구사항을 제대로 전달하지 못하는데 AI라는 비인격체에게는 얼마나 성의없이 질문할까? 근본적으로 태도가 틀려먹었는데 어떻게 활용을 잘 할 수 있을까?


아무튼 이런 근본적인 부분을 이해시키는 것이 고리타분하게 생각될지라도 앞으로 AI를 활용해 많은 일을 하고 싶은 사람이라면, 그리고 정말 AI에 대해서 문외한이라 먼저 고민해본 사람의 의견이 궁금하다면, 앞으로도 쭉 내 일대기를 따라와주시기 바란다. 직접적인 사용법을 공유하는 것도 도움이야 되겠지만, 그런건 이미 나와있는 수 많은 팁들이 있기 때문에 굳이 소개할 생각이 없다.

애초에 AI를 많이 활용하는 직군은 나보다도 빨리 써오기 시작했다. 23년에도 프로그래머들은 많은 코딩문제를 도움받아왔고, 데이터를 활용하는 직군들도 반복작업에 열심히 사용했다. 하지만 데이터가 정량화되지 않는 예체능계열 사람들은 이걸 어떻게 다루어야할지에 대해 개념조차 잡히지 않는 사람들이 상당수일거라 생각한다. 나 또한 그랬으니까.


지루하고 진부하게 생각될지는 몰라도, 이런 근본적인 물음부터 하나씩 해결해나가면서 접근하는 이 방식이야말로 우리 같은 예체능에게는 더 확장성 있는 길이 되리라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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